[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노태우 前대통령 ②
[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노태우 前대통령 ②
  • 관리자
  • 승인 2006.08.3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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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감성과 유머 부드러운 정서의 힘 물씬

본지는 우리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대개 장수하는 데 주목하여 은퇴한 노인으로서 겪는 일상의 작은 행복과 세월의 무상함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지면을 마련했습니다. 공과 과가 있겠으나 어차피 전직 대통령들은 우리 역사입니다.


본지는 정치적 평가나 정파적 편향성을 지양하고 전직들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선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간적인 관심사와 삶의 즐거움, 건강생활, 원로로서의 자리 등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지는 나라와 민족에게 불의한 일이나 좋지 않은 역사에 대한 평가와 의의에 대해서는 다음 기획시리즈로 미뤄두고, 기왕의 기획시리즈를 계속하며 ①이승만 ②윤보선 ③박정희 ④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다섯 번째로 노태우 전 대통령 편을 4회 연속 게재합니다. 백세시대 독자 여러분의 ‘건강 노년·문화 노년’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획 취재팀〉


대통령직 퇴임 후에도 우여곡절을 겪지만, 7세 때에 아버지를 여윈 것을 비롯하여 대통령의 지위에 오르기까지 노태우 전 대통령이 겪은 일들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큰 스트레스의 연속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너무 일찍 다음 대통령감으로 지목된 것은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원초적 권력욕과 현실 사이에서 번민과 스트레스의 중압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권 후계자로 낙점하고 뒤를 봐준 친구 전두환 대통령의 우정이 고맙기도 하지만 자존심에 상처받을 수 있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오죽했으면 참고 용서하고 기다린다는 ‘참용기’를 좌우명으로 삼았을까.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을 면할 수도 있다지만 요즘에는 참는 것이 몸에 해롭다는 것은 보통사람들도 아는 의학 상식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스트레스가 많았을 노태우 전 대통령이 건강한 데에는 무슨 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 ‘이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지만 추측은 가능하다. 사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터득한 비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건강하게 사는 경우가 많다.


노태우 대통령도 음악이나 문학, 혹은 운동(스포츠), 웃음 등 취미활동을 하다 보니 몸에 해로운 스트레스가 해소가 되었을 수도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노태우 대통령의 퉁소 연주는 수준급이다. 1988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소년한국일보와 서면으로 회견을 한 자리에서 퉁소 연주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퉁소는 7살 때 여윈 아버님이 남겨주신 겁니다.


처음엔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려고 입에 대었는데, 차츰 익히다 보니 어른이 되어서도 아주 좋아하게 됐어요.


우리 겨레가 오랫동안 가꾸어 온 가락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게 되더군요. 수십 년 불었으니 그저 남들이 들을만한 정도입니다.”


우리 가락 맛 나는 퉁소 솜씨


‘가락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그저 남들이 들을 만한 정도’라는 뜻은 ‘뛰어나다’는 표현의 겸양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들어보면 퉁소 소리는 애간장을 녹이는 슬픈 곡조를 자아낸다. 홀어머니 슬하에서의 외로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한 통소의 가락으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까. 울음도 카타르시스가 되는 법이다. 전회(前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책 읽기를 좋아해서 시간만 나면 책을 읽은 것도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음악, 특히 퉁소와 휘파람 솜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도 극찬을 아끼지 않는 부분. 민정당 대표위원으로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에 나설 후보자가 된 뒤 “盧 후보가 퉁소 잘 불고 휘파람 잘 불고 다재다능한 분입니다”면서 “운동을 못하나, 음악을 못하나, 내가 운이 좋아 먼저 대통령을 했고 이양반이 후보가 됐지만 이 사람이 나보다 몇 십 번 앞선 사람입니다”라고 민정당 관계자들에게 말한 적도 있다.


이 자리에서 노태우 당시 대표위원도 흔히 2인자로 묘사되고 상대적으로 문약한 이미지이지만 이때는 리더로서의 일면을 드러낸다.


“나도 젊었을 때 아이큐 143으로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헤르만 헤세 작품을 2주일 만에 외웠습니다”며 “그러나 범인(凡人)의 지혜를 모으는 게 천재라고 생각합니다”고 했다.


자신의 지적 능력(아이큐)과 통일의지, ‘범인의 지혜를 모은다’는 등의 리더십에 대한 포부를 밝힌 것이다.


그랬으나 며칠 뒤 노태우 대통령은 한 인간으로서 일생에서 겪기 힘든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맞닥뜨린다.


역사적인 ‘6·29선언’을 하는 것이다. 6·29선언의 골자는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 1988년 2월 평화적 정권이양’ ‘대통령 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 보장’ 등 시민·학생과 야당의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으로 다 된 밥솥을 엎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렇게 떠밀려서 선거법을 바꾸고 치르는 선거에서 기득권 세력이 이기는 것은 역사적으로 극히 드문 일이다. 본 시리즈 전두환 대통령 편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바둑판을 자주 쓸어버리는 것은 성격 나빠지고 실력도 늘지 않는다”며 군 동원 필요성이 제기됐었음을 시사한 바도 있다.


교양 있는 유머와 해학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다는 말끝에 “6·29 선언을 하기 전날 밤을 새우면서 고뇌어린 결단을 할 때에도 그 분을 생각했습니다”며 “선언을 하는 날 아침에는 붓글씨로 ‘必死卽生’(필사즉생)이라는 그 분의 말씀을 써놓고 발표장으로 나갔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발표를 한 후 현충사에 들러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따르겠노라고 맹세했다”고 한다. 한국의 역사에서는 아름다운 장면이지만 대통령 당선을 예약해 놓은 사람으로서는 죽는 것보다 괴로웠을 것이다.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제5공화국 출범 과정의 문제들로 곤경에 처한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6·29선언’은 역사다.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니 ‘선언’의 아이디어가 전두환 전대통령에게서 나왔는지 노태우 대통령에게서 나왔는지는 본 지면의 몫이 아니다.


급격한 사회변혁, 혹은 혁명적인 상황으로 전개됐을 것이 결과적으로 연착륙할 수 있었던 데 대한 국가와 민족 차원에서의 선악 평가 역시 본 지면에서는 논외로 한다. 대통령의 건강과 장수를 다루기로 한 본 지면의 기획 의도는 거기까지다.


그러나 어쨌든 기득권을 버리고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한 것은 노태우 당시 민정당 후보의 선의였다. 성공적인 올림픽,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 등 사회 분위기와 한미관계 등 국제정치 환경이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다 해도 그 선의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혈압이 약간 불안정한 것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나이로 75세가 된 지금까지 노태우 대통령이 건강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를 발견한다. 억눌러 오는 스트레스, 극심한 고통을 잊거나 이겨내는 데 예술적 취향과 독서 등은 좋은 수단이 됐으리라는 것이다.


마음이 정화되니 몸도 건강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해보는 것이다. 거기다 하나를 덧붙이면, 노태우 대통령이 교양적으로 유머러스하다는 점이다. 가벼운 농담이 아니라 교양이 있게 사람을 웃게 만들고 본인도 웃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재임 중인 1992년 부시 대통령(현 조지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이 방문했을 때 “베이커 국무장관 내외와 테니스 시합을 한 적이 있는데 장관이 (부시)대통령 각하의 선전을 위해 나의 최근 테니스 실력과 청와대 코트의 특성 등에 대해 사전 브리핑을 하지는 않았는지요 ”라고 하는 식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어록을 보면 독서를 많이 한 인문학적 소양이 잘 드러나 있다. 헝가리 대통령과 만찬을 할 때에는 “나도 젊은 시절에는 문학에 심취하여 동서양의 고전들과 현대문학 작품들을 즐겨 읽곤 했습니다”며 “그 바람에 대통령 후보시절 공개토론에서 언론인들로부터 헤르만 헤세 등의 시 구절을 암송해 내라는 주문을 받고 다시 기억하느라고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1992년 회갑연 자리에서는 “과거에는 ‘인생 칠십 고래희’이나 지금은 ‘인생육십 청춘래’라고 하지만 내 생각에도 내 몸과 마음이 다 청춘입니다”며 “그래서 오늘 이 행사도 회갑연이 아니라 성년식입니다. 이제 내 나이 회갑 지나 겨우 한 살입니다”며 좌중에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본지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도 “요즘 노인이 어디 있습니까  70을 넘어도 젊은 사람들 하는 것을 다 하고 사는데…”라고 하기도 했다.


실제로 노태우 대통령이 컴퓨터로 이메일을 손수 챙기고,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는 등의 ‘노티즌’이기도 하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기도 한다.


익명의 아이디로 바둑을 두기 때문에 그가 노태우대통령인지도 모른 채 바둑 애호가 누군가는 바둑을 두어봤을 것이다. 물론 어쩌다 하는 일이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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