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칼럼]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선택하는 과정이다
[금요 칼럼]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선택하는 과정이다
  • 관리자
  • 승인 2009.09.25 14:29
  • 호수 1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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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사람을 구성하는 수천 억 개의 세포 내에는 세포마다 적어도 만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생체분자들이 직경 10μ정도의 비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렇게 복잡한 공간 내에서 생체분자들이 어느 누구와 만나서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 결국은 생명현상을 결정하고 삶의 질을 좌우하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생체분자들이 반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분자와의 친화도가 중요하고, 서로간의 농도적 비율이 매우 중요하다. 분자들 간의 친화도가 결정되는 요인은 우선 분자의 입체적 생김새이며, 그러한 형태 중 나오고 들어간 부위에 위치한 원자들의 전자를 주고받을 수 있는 특성들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가 잘 맞아 서로 반응하는 분자들의 짝 사이에 가장 밀접한 접촉을 할 수 있을 때 분자간의 친화도가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만난 분자들은 서로 헤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적절한 상대를 만나면, 서로 헤어지는 확률(해리상수 dissociation constant)이 일천조(10의 15승) 분의 하나일 정도까지 작아져 만나면 한사코 헤어지지 못하는 분자들도 있다. 이러한 분자들의 만남은 생체 반응이 일어나게 하고, 그 결과 여러 가지 생체현상이 초래된다. 따라서 이러한 분자간의 상호친화도는 결국 이들 간의 반응지속시간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에 못지않게 분자들의 반응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반응 물질간의 상대적 농도비다. 특히 반응의 평형을 이뤄야 하는 일반 효소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상대비의 조절은 절대적이다. 에너지 소모 없이 손쉽게 반응의 평형을 초래하는 일반 평형효소에게는 반응물질과 생성물의 농도비가 반응의 방향뿐만 아니라 속도를 결정하는 데도 관건이 된다.

물질을 직접 변환시키는 효소의 경우 뿐 아니라, 생체내 여러 가지 반응을 촉발하는 신호전달체계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신경전달물질간의 상호비, 호르몬간의 상호비, 세포기능조절 물질간의 상호비가 바로 생체반응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생체반응이 이와 같이 상대적인 생김새라든가 상대적 농도비에 의해 조절된다는 특성은 생명체와 무생물간의 근원적 차이점이기도 하다. 생명현상에서는 본질적으로 절대라는 개념을 피하고 있다.

살아가는 과정에 접하게 되는 수많은 환경적 자극에 대해 이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 생체는 적절한 친화도를 유지하기 위한 분자의 구조적 변화도 서슴치 않으며 바람직한 상대비를 유지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친화도가 높으면 상대적 농도비는 작아도 되고, 친화도가 낮으면 그 대신 농도비를 높여야만 반응이 이뤄진다. 절대량이 아닌 상대적 관계가 소중하다-살아가는 과정에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인간관계도 결국은 상대적 판단에 의해 선택해 나가야 하는 게 운명이 아닐까? 이것만이 오로지라는 개념보다는 결국은 ‘이것이냐 저것이냐’(entweder oder) 망설이다가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삶의 과정을 이미 생체에서는 분자의 수준에서 예고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생체내 반응물질들 간의 친화도와 상대비가 갖는 참 뜻은 무엇인가? 친화도와 상대적 비에 의한 생체반응과 생명현상의 제어과정은 본질적으로 깊은 곳에서 분자들 간의 경쟁을 요구하고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생체분자 뿐만 아니라, 각종 세포의 활동, 심지어 수정 과정에서의 정자의 활동에서도 경쟁이 요구되고 있다.

상대적 우위-바로 그것이 생명의 특성이다. 하나의 반응과 현상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분자들 간의 경쟁을 통한 스크리닝(screening, 특정 유전자 또는 개체만 고르는 과정-편집자 註)과 제어를 생명체는 요구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경쟁으로부터 생존이 결정되고, 적자생존의 생물진화가 가능해 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은 서로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가장 적절한 반응조합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생명활동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생명체의 상호경쟁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중단될 수가 없다. 이미 분자의 수준에서 이러한 상호경쟁을 통한 선택이 없어진다면 생명활동은 정지되고 말듯, 개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능동적인 선택을 통한 상호경쟁은 피할 수 없는 삶의 길이다. 이러한 생명사회에서의 상호경쟁이 궁극적으로 삶이라는 큰 목적 하에서 합법적으로 용인될 수 있을 때 삶은 더욱 아름답게 비춰지고 당당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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