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녀 양육에 노부모 등골 휜다
손자녀 양육에 노부모 등골 휜다
  • 이미정 기자
  • 승인 2009.10.15 11:33
  • 호수 1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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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 요구하고 보육시설 이용 등 모색해야
▲ 최근 맞벌이 부부 또는 이혼 가정이 증가하면서 손자 손녀를 맡아 기르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비가 오는 데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놀기를 고집하는 손자를 위해 할머니가 자전거에 우산을 매단 채 밀어주고 있다.
본지가 맞벌이 부부 또는 이혼가정의 증가에 따라 손자녀 양육을 책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고충을 지적한 이래 어떠한 방식으로든 양육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젊은 세대가 자녀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김영순(67)씨는 2년 전부터 외손녀 육아를 맡고 있다. 남편과 사별한 뒤 딸집에 들어가 살면서 손녀를 맡아 키운다. 출판사에 다니는 딸의 퇴근시간은 평균 10시. 밤늦게 퇴근하는 딸이 안쓰럽다가도 온 종일 손녀에게 매달려 있는 자신을 보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에 빠져들곤 한다.

김씨는 “복지관도 나가고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싶지만 손녀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꿈도 꾸지 못 한다”며 “남편 뒷바라지하고 자식만 출가시키면 편안하게 살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숙제가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박석희(67·경기 화성)씨는 최근 사업에 실패한 아들을 대신해 손녀 양육을 떠맡은 뒤 지병인 관절염이 도졌다. 갓 돌을 지난 손녀를 돌보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5남매를 업어 키우던 20대를 생각해 손녀를 맡겠다고 장담했지만 일주일도 되기 전에 팔목이 쑤시고 어깨가 결리기 시작했다.

박씨는 “손녀를 들춰 업고 아파트 놀이터를 수 시간씩 걷다보니 지병인 관절염이 도져 밤마다 잠을 설친다”며 “하지만 고생하는 아들내외에게 아프다는 내색조차 못한다”고 말했다.

이행자(65·충남 서천)씨는 6개월 전부터 다섯 살과 세 살 된 두 손자를 키운다. 아들이 며느리와 이혼을 하면서 손자들을 떠안게 됐다.

두 손자가 오면서 생활비도 만만치 않게 늘었다. 가끔씩 아들이 용돈을 보내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의 옷과 장난감을 구입하는데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엔 어림도 없다.

이씨는 “아들의 빠듯한 살림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돈을 부쳐달라는 말도 못하고 속만 끊인다”며 “하루빨리 아들이 안정돼 두 손자를 데려갔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당하게 노동의 대가를 외치는 어르신도 있다. 충남 대천에 사는 서복순(62)씨는 외손자 둘을 돌보고 매달 100만원을 받는다. 자신의 일상생활을 포기하면서 손자를 양육하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 할 대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씨는 “내 삶의 일부를 포기하고 손자를 돌보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대가를 요구했다”며 “그러지 않았다면 다른 자식들도 육아를 부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녀들에게 육아에 대한 경제적인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할 것과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등 상호 보완적인 방법을 찾으라고 강조한다.

서울시 어르신상담센터 김명림 실장은 “노후에도 계속되는 육아로 자녀들과 갈등을 겪는 어르신들을 종
종 볼 수 있다”며 “어르신들이 노년기에 자신만의 생활을 즐기고 싶은 욕구는 매우 강하지만 자녀를 위해 손자녀 양육이란 또 다른 희생을 선택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손자녀 양육에 따른 어렵고 힘든 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경제적인 대가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며 “또 보육시설을 이용해 육아문제를 분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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