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문화 이끄는 유제근(75) 노인지도강사
노인문화 이끄는 유제근(75) 노인지도강사
  • 함문식 기자
  • 승인 2009.10.23 14:38
  • 호수 1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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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지 알아야 한가지 가르쳐”

 

▲ 인천시 검암동 서해그랑블아파트 경로당 회원들이 유 강사의 강연이 끝나고 함께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다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추석에 손자녀들에게 용돈을 줄 때도 그냥 주기보다는 화폐에 그려진 인물이라던지, 역사적 의미에 대해 설명하면 훨씬 의미가 있지요.” 

30여명이 모여 앉은 경로당의 어르신들의 눈이 일제히 집중됐다. 주인공은 매주 3~4차례씩 인천시 서구 지역의 경로당을 순회하면서 강의하는 유제근(75) 강사다.

유 강사가 노인지도강사를 맡아 경로당을 순회하면서 강의를 시작한 것은 3년 전. 서울시 공무원을 퇴직하고 인천 서구 지역으로 내려와 경로당 회장을 7~8년 역임했다. 경로당 노인들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유 강사는 마침 인천 서구에서 모집한 노인지도사에 합격해 지금은 자신의 경로당 뿐 아니라 인근 지역 모든 어르신들을 위해 순회하며 강연을 펼치고 있다.

유 강사는 노인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대한노인회 인천연합회가 주관한 노인지역봉사원 사례발표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든 경로당의 반응이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별다른 문화가 없는 경로당에 화투로 소일하던 노인들은 강사가 파견돼 강연을 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약장사로 오인 받아 냉대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유 어르신의 구수한 입담과 중후한 목소리, 그리고 매번 새로운 주제를 찾아 강연을 준비하는 열정은 오래지 않아 인정받았다.

▲ 3년째 구수한 입담으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유제근(75) 어르신.
오랜 시간 경로당 회장을 지냈던 경험과, 인하대 평생교육원에서 공부한 내용은 강연의 양 날개. 그러나 이것만으로 무료함에 빠져 있는 노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쉽고 친근한 내용의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강연 전날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고.

화투문화로 대변되는 경로당 노인들을 위해 ‘꽃싸움’이라는 의미의 화투 유래를 설명해 주기도 하고, 계절에 따른 건강관리법이라든지, 가족관계의 갈등에 대해 강연과 상담을 진행하면 일순간 어르신들의 눈이 집중된다.

유 어르신의 남다른 열정은 사물을 관찰하는 힘에서 나온다. ‘서정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한 유 어르신은 작은 사물하나, 감정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 ‘틈새’의 의미를 발견하려 애쓴다. 남들이 놓치기 쉬운 것을 보는 ‘눈’이야말로 유 강사가 지닌 큰 장점이다.

3년간 유 강사의 강연을 들었다는 인천 검암동 서해그랑블아파트 경로당 양재은(72)총무는 “그동안 노인지도강사의 강연을 많이 들어봤지만 유 선생님처럼 알기쉽고 우리 주변의 실생활을 속속들이 짚어주는 사람은 없었다”며 “즐거운 강의가 가장 좋은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40여분의 강연을 마치고 경로당을 나서는 유 강사는 “백가지를 알아야 한가지를 가르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경로당에는 전직 교장이셨던 분들이나 학자였던 분들까지 다양한 지식인들도 많기에 매번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즐겁고 재미난 강연을 진행하기 위해 내년에는 마술을 배워 즉석 공연을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함문식 기자 moo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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