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노인의 지갑을 여는 방법 / 신은경
[백세시대 금요칼럼] 노인의 지갑을 여는 방법 / 신은경
  • 신은경 전 차의과대학교 교수
  • 승인 2024.04.01 11:15
  • 호수 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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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전 차의과대학교 교수
신은경 전 차의과대학교 교수

찢어진 타이어 하나 바꾸려다

네 짝 모두 교체하게 된 이유는

타이어점 젊은이의 친절한 태도

선거에서 노인 ‘표’ 얻으려면

진정성 있게 노인들에 다가가라

동해안으로 여행을 갔다가 자동차 타이어가 찢어진 것을 발견했다. 어디에서 그랬는지 오른쪽 앞 바퀴에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며 급히 현지 타이어 가게를 찾았다. 당장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한 짝만 바꾸면 양쪽 균형이 안 맞아서 앞 타이어 두 짝을 함께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눈앞에 ‘3 플러스 1’ 이벤트 광고가 보였다. 두 개 값을 지불하느니, 세 개 값을 내고 네 짝을 모두 교체하는 게 이익이라는 계산을 하게 만든다. 참 절묘한 마케팅이구나 싶었다.

“이미 3만 킬로를 달렸으니 바꿀 때도 되었습니다”라고 젊은 직원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말했다.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니 더 이상 머뭇거릴 문제는 아니라서 내친김에 바퀴 네 개를 모두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다음은 어떤 가격의 타이어를 살지 결정할 순서다. 그 사이 책임자인 젊은 사장이 마치 친구처럼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며 대기실로 들어왔다. 남편이 입고 있는 패딩을 아주 멋지다고 칭찬했나 보다. 두 사람이 아주 싱글벙글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이처럼, 오랜만에 찾아온 손자처럼 이야기보따리를 열기 시작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릴 때 군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부터, 이 가게 자리 월세가 얼마인지, 지난해 매출이 얼마였는지, 한 해 중 장사가 가장 잘 될 때는 어느 달인지, 화제가 끝이 없었다. 혹시 어려서 조부모님과 함께 자랐는지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 손에 자랐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가장 높은 가격의 타이어로 결정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타이어 한 짝을 바꾸러 왔다가 지갑을 열어 큰돈 내고 네 짝을 모두 바꾸게 됐지만 어르신 손님은 크게 섭섭한 표정이 아니었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하도록 설득했을까? 도대체 어떤 점이 나이 든 사람의 지갑을 쉽게 열도록 만들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건 오로지 다정하고 살갑게 손님을 대하는 그 젊은이들의 태도였다. 어르신을 다정하게 대하는 그들의 표정과 말투가 참 기특하고 고마웠다.

시니어들은 요즘 어딜 가나 좋은 대우를 못 받을 때가 많다. 카페에 가서 주문을 하려고 머뭇거리면 턱으로 지시한다. 저기 키오스크를 이용하라고. 소리도 내지 않는다. 카운터에서 아무 일도 안 하고 서 있으면서도 키오스크에 가서 주문을 하라고 한다. 

말로 주문을 받아 준다 해도 어려움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마스크를 쓰고 있거나 빠른 속도로 말하면 어르신들은 알아듣기가 어렵다. 병원에서도, 식당에서도, 찻집에서도, 백화점, 시장에서도, 도처에 어려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시니어들은 나이 들면서 예전만큼 지출할 곳이 그리 많지 않아, 오히려 지갑을 열 여유가 있다. 아주 훌륭한 고객이란 말이다. 어떻게 하면 어르신들이 흔쾌히 지갑을 열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고, 다정함이다. 그냥 기계적인 친절이 아니라 나이든 사람을 불편해 하지 않는 다정함과 자연스러운 친절을 말하는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자란 아이들은 커서도 노인들을 대하는 게 불편하지 않다. 내 할머니, 할아버지와 말해 보았던 경험이 있어 좀 더 발음을 또렷하게 하고, 눈을 쳐다보며 말한다. 입 모양을 또렷하게 하고, 젊은이들끼리 쓰는 표현보다는 좀 더 쉽고 평이한 표현으로 설명할 줄 안다. 

정치의 계절, 선거의 계절이 왔다. 투표의 지갑도 마찬가지다. 나이든 사람은 무조건 보수, 젊은이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진보일 것 같아도 사실 그렇지 않다. 무조건 보수표를 던지는 노인들은 투표하지 말라는 철딱서니 없는 정치인이 아직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말을 한다고 젊은이들이 그를 추종하진 않는다. 나이든 사람들의 마음만 서운하게 할 뿐이다.

노인들의 표 지갑을 열려면 좀 더 다정해지시라.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고, 노인들이 알아듣게 말하라. 젊은이들끼리는 1.5배 속도로 말하다가도, 노인들에겐 조금 천천히, 더 명확하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말하라. 흔쾌히 우리의 지갑을 열어, 기꺼이 소중한 한 표를 지불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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