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20년만에 ‘아파트 경로당’ 문 연 비결…“경로당 개소, 의지와 설득이 중요”
입주 20년만에 ‘아파트 경로당’ 문 연 비결…“경로당 개소, 의지와 설득이 중요”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4.04.08 09:11
  • 호수 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회원 모집 시 야간 방문이 효과적… 추진 기한도 설정

입주자대표회의‧관리사무소 등 우군 만들면 빨리 개소

아파트 경로당은 관심이 많은 주민이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빠른 개소가 가능하다. 사진은 지난 3월 아파트 준공 20년만에 개소식을 개최한 전북 익산시 오페라하우스경로당.
아파트 경로당은 관심이 많은 주민이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빠른 개소가 가능하다. 사진은 지난 3월 아파트 준공 20년만에 개소식을 개최한 전북 익산시 오페라하우스경로당.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회장님, 저희 아파트에도 경로당 좀 만들어주세요.”

10년 전 전북 익산시 부송동 오페라하우스의 일조권 침해 문제에 앞장서며 아파트 내에서 회장님으로 불리던 천성자 어르신은 지난해 말 동네 주민으로부터 이런 부탁을 받았다. 주민의 어머니가 인근 아파트 경로당을 이용하다가 쫓겨나는 모욕을 당했다는 소식과 함께 경로당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평소 경로당 이용에 관심이 없었던 천 어르신은 주민의 간곡한 부탁에 개소를 위한 작업에 나섰고 불과 하루 만에 등록에 필요한 최소 인원인 20명을 모았다. 2004년 아파트가 문을 연지 20년 만에 경로당이 생긴 것이다. 천성자 회장은 “경로당의 필요성을 느끼자마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신도시가 조성되고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택법상 150세대 이상 공동주택을 건설할 때 남녀 공간 분리, 화장실 등 조건을 갖춘 경로당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또 노인복지법상 경로당으로 등록하려면 △회원 20명(읍면은 10명) 이상 △남녀 분리 화장실 △거실·방 등 공용 공간 확보 △거실 면적 20㎡ 이상 등의 기준을 맞춰야 한다. 즉, 아파트에서 의무적으로 경로당 공간을 마련하더라도 회원 20명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경로당 등록을 위해선 주민들이 나서야 하는데 입주자대표나 동대표처럼 주민들이 의무적으로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경로당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주민이 자발적으로 나서야 하는 구조여서 경로당 이용 경험이 없는 입주자가 많은 아파트의 경우 경로당 공간이 비어 있는 채로 수년간 방치되기도 한다.

한 지회 관계자는 “아파트의 경우 입주자들 대부분이 서로를 잘 몰라서 누군가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경로당이 생기기까지 상당 시간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주민 중 누군가가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입주 후 빠른 시일 내 개소도 가능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지난달 개소식을 개최한 충남 태안군 태안평천3단지아파트경로당이다. 2023년 8월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는 12월에 경로당 등록을 마쳤다. 이를 이끈 것은 초대회장을 맡은 박영락 회장이다. 입주 전 살았던 마을 경로당에서 총무를 맡았던 그는 경로당 공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바로 관리사무소를 찾아 경로당 개소를 위해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후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단지 내 게시판에 회원 모집 공고를 게시한 그는 65세 이상이 살고 있는 세대를 일일이 방문해 가입을 독려했다. 그 결과 등록에 필요한 최소인원 20명을 채울 수 있었고 성대한 개소식까지 치렀다. 

박영락 회장은 의지와 함께 중요한 것으로 기한 설정을 꼽았다. 박 회장은 “‘30일 내로 회원을 모으고 60일 내로 등록까지 마친다’처럼 명확하게 기한을 설정하면 거기에 맞춰 일을 진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가입을 요청한다고 해도 무조건 주민들이 경로당에 호의적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실제 회원모집에 주도적으로 나선 임원진은 60대부터 70대 초반 노인들의 냉대에 당황하기도 한다. 또 집을 방문한다고 해도 사람이 없어서 허탕을 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경로당 개소를 주도했던 A회장은 “내가 노인처럼 보이냐며 버럭 화를 내는 것은 기본이고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때 상대의 반응에 대비해 여러 답변을 준비해놓는 것과 방문 시간을 저녁 이후로 하는 것이 회원을 확보할 수 있는 노하우다. 

지난달 오페라하우스경로당 개소식을 성황리에 치른 천성자 회장은 “젊은 노인들은 경로당에 대해 관심이 적지만 아파트 공동체의 발전에는 관심이 많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도 공익을 위해 힘을 보태달라고 하면 참여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또 낮보다는 밤에 방문해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아파트 핵심 관계자를 든든한 우군으로 확보하는 것도 개소식을 앞당기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2019년 11월 경기 화성시 새솔동 금강펜테리움센트럴파크에 입주한 최상길 씨는 단지 내 어르신들의 쉼터 마련을 위해 뜻이 맞는 주민들과 경로당 등록 준비에 나섰다.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등록 준비도 무기한 연기됐다. 그러던 중 지난해 6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료되면서 다시 준비에 박차를 가했지만 회원 모집 단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관리사무소에 노인들이 살고 있는 세대 정보를 요청했지만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것이다. 이때 최상길 씨에게 도움을 준 것은 아파트 통장이었다. 통장이 가진 세대 정보를 활용해 비교적 빠르게 최소 인원 모집에 성공했고 역시 지난 3월 14일 성황리에 개소식을 개최했다. 

특히 우군을 늘리는 것은 경로당 개소의 마지막 단계인 집기 마련에도 큰 도움을 준다. 통상 경로당으로 등록하게 되면 지자체로부터 집기류 구입에 사용할 수 있는 일정금액을 지원받는다. 문제는 이 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때 아파트 핵심 관계자를 우군으로 만들면 추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최상길 회장은 “입주자대표회의, 동대표, 관리사무소, 통장 등 아파트 관계자들을 우군으로 만들면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서 “아파트 관계자들은 본인 일이 늘어나는 거라 달가워하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협조를 요청하면 보다 수월하게 등록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