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65] 조선의 헌법 ‘경국대전’(經國大典) “임신한 노비 산기에 한 달, 산후 50일 휴가”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65] 조선의 헌법 ‘경국대전’(經國大典) “임신한 노비 산기에 한 달, 산후 50일 휴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4.04.08 13:51
  • 호수 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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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가 지시하고 성종 때 완성 약25년 걸려… 육전(六典), 319개 법조문  

세무 비리 공무원 사망 시 가족 재산도 몰수… 관리 뽑을 때 지역별 안배도

경국대전. 총 319개 법조항의 육전(六典)으로 구성됐다.	사진=연합뉴스
경국대전. 총 319개 법조항의 육전(六典)으로 구성됐다. 사진=연합뉴스

[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조선 시대라고 해서 임금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의 헌법’ 경국대전(經國大典)의 법조항에 의거해 나라를 다스렸다. 예컨대 사람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사형수에 대해 ‘삼심제’를 규정하고, 최종심에서 국왕이 직접 재판을 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자녀의 균분 상속이다. 성리학의 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조선은 성문법에 의해 정교하게 짜여진 ‘법치국가’였던 것이다.

경국대전은 세조(조선 제7대 왕· 1417~1468년)에서 출발해 성종(조선 제9대 왕·1457~1495년)대에 완성됐다. 하나의 법전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진 세조는 육전상정소(六典詳定所)를 세워 국가 역량을 집중해 법전 편찬에 착수했다. 

세조의 죽음으로 잠시 중단됐던 이 작업을 성종이 물려받아 1482년에 수정작업을 거쳐 1485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궁중 여성 품계를 맨 처음 수록

경국대전은 이전·호전·예전·형전·병전·공전의 육전(六典) 체제로, 총 319개 법조문으로 구성돼 있다. 

이전(吏典)은 29개의 항목으로, 내명부(內命婦)·외명부(外命婦)의 조직과 품계, 중앙과 지방의 관서 조직과 관직·관품 체계, 문신 관료의 임용과 인사 행정에 관련된 규정이 들어있다. 사망 문관에 대한 추증(追增)·시호(諡號), 휴가, 관원 간의 상피(相避), 향리(鄕吏) 등에 관한 내용도 수록돼 있다. 

첫 부분에 빈(嬪·정일품) 이하 귀인, 소의, 숙의, 소용 등 후궁들의 품계와 상궁 등 궁중 전문직 여성들의 품계가 기록된 점이 눈에 띈다. 그것은 왕과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이었다. 

호전(戶典)은 30개 항목으로, 국가의 재정 운영과 관련된 각종 제도의 내용을 수록했다. 호적과 토지 제도, 조세 제도에 관한 내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예전(禮典)은 61개 항목으로, 학교 제도와 과거제에 관한 내용, 오복제(五服制)에 근거한 친족 제도, 국가와 왕실의 각종 의례, 대명(代明) 및 대일(對日)·대여진(對女眞) 외교 의례 등에 관한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병전(兵典)은 51개 항목으로, 중앙의 무반(武班) 관서들의 조직과 직무, 지방 군사 조직, 무과에 관한 각종 규정, 무반 관료에 대한 인사 행정, 군역 제도 등에 관한 내용을 실었다.

형전(刑典)은 28개 항목으로, 각종 소송 및 재판의 절차, 여러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 내용 등이 수록됐다. 노비에 관한 각종 규정들도 있고, 부록으로 노비 소송에 관한 내용이 추가됐다.

공전(工典)은 14개 항목으로, 도로와 교량에 관한 규정, 궁궐·관청·도성·역참(驛站) 등 각종 건물의 관리와 보수에 관한 규정을 수록했다.

경국대전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가 노비의 출산 휴가에 관한 내용이다. “입역(立役·군역이나 노역에 이바지하는 일)을 하고 있는 비가 산기에 당하여 한 달, 산후에 50일 휴가를 준다. 그 남편은 산후에 15일을 준다”라는 규정이 있다. 매매 대상인 노비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한 것이다. 

◇첩의 자손은 과거에 응시 못해

예전의 제과에는 과거 응시를 원천적으로 금지한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다. 

“죄를 범하여 영구히 인용할 수 없게 된 자, 장리(뇌물을 받은 관리)의 아들, 재가하여 실행한 부녀의 아들 및 손자, 서얼 자손은 문과, 진사 시험에 응시하지 못한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관리의 자식들도 공무원이 될 수 없도록 한 법을 오늘날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지금보다는 우리 사회가 훨씬 깨끗해질 것이다.

경국대전은 지역 안배까지 세심하게 살폈다. 과거 응시의 초시 합격자의 경우 인구 비례로 지역별 합격자 수를 배정했다. 예전의 문과 초시 규정에는 240인의 합격자 수에 대해 관시 50인, 한성시 40인 이외에 향시로 경기 30인, 충청도와 전라도 각 25인, 경상도 30인, 강원도·평안도 각 15인, 황해도·영안도(함경도) 각 10인 등을 뽑을 것을 규정했다. 생원과 진사 시험에도 이 방침이 적용돼 초시 합격자 700인에 대해서는 지역 안배를, 복시는 성적순으로 뽑았다. 

의대 정원을 정할 때 경국대전의 선발 규정을 참조했더라면 오늘날 ‘의료 파업’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호전에는 세무 비리 공무원에 대한 재산 몰수 규정도 있다. 백성이 세금으로 내는 쌀이나 곡식을 중간에 가로챈 자는 비록 본인이 죽어도 그의 아내와 자식에게 재산이 있으면 강제로 받아낼 수 있게 했다. 

형전의 ‘분경금지법’(奔競禁止法·조선시대 하급관리가 상급관리의 집을 방문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법)도 지혜로운 법 중 하나다. “분경하는 자는 장 100대, 유배 3000리에 처한다”고 규정해 권문세가에 드나들면서 정치적 로비를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조선이 기록 문화를 꽃피운 것도 경국대전 덕분이다. 예전의 ‘장문서’ 항목에는 “춘추관의 시정기와 승정원 문서는 3년마다 인쇄하여 융문루(隆文樓·경복궁 근정전 동쪽 회랑 2층의 누각)와 융무루에 보관하고, 의정부·홍문관·성균관·춘추관과 여러 도의 으뜸이 되는 고을에 각 1건씩 보관한다”라고 돼 있다. 

이 법으로 국가 기록물 보존의 전통이 이어졌고, 그 결과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세계기록유산 11건을 보유한 국가가 된 것이다. 2022년 6월 23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경국대전이 국가지정 보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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