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선: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 ‘서울식물원’ 설계한 1세대 조경가 정영선 조명
‘정영선: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 ‘서울식물원’ 설계한 1세대 조경가 정영선 조명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4.04.15 13:44
  • 호수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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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숲길’ 등 50년간 참여한 60여개 프로젝트 관련 자료 최초 공개

선조들 미의식 재현해 정원을 꾸민 호암미술관의 ‘희원’ 등 흥미로워

이번 전시에서는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이 50년간 참여했던 프로젝트 관련 자료를 통해 그의 업적을 조명한다. 사진은 이번 전시를 위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조성한 정원의 모습.
이번 전시에서는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이 50년간 참여했던 프로젝트 관련 자료를 통해 그의 업적을 조명한다. 사진은 이번 전시를 위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조성한 정원의 모습.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지난 2019년 개장한 ‘서울식물원’은 공원에 대한 서울 강서구 주민들의 갈증을 풀어주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보다 앞선 2017년, 잊혀진 폐선(廢線)에서 꽃과 나무로 가득 찬 시민들의 산책로로 거듭난 ‘경춘선숲길’도 서울 노원구 주민뿐 아니라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 두 공간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것 외에도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조경가 정영선(83)이 설계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국내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의 활동을 되돌아보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9월 22일까지 진행되는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에서는 1970년대 대학원생 시절부터 현재 진행형인 프로젝트까지 반세기 동안 성실하게 펼쳐 온 조경 활동을 총망라한다. 

특히 전시에서는 60여개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대한 조경가의 아카이브(파스텔‧연필‧수채화‧청사진‧설계도면‧모형‧사진‧영상) 대부분을 최초로 공개한다. 

1961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대 농과대학에 입학한 정영선 조경가는 1973년 서울대 환경대학원이 생기자 1회 신입생으로 등록했다. 뒤이어 1980년 국내에서 여성으로는 최초로 국토개발기술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1987년 조경설계업체 ‘서안’을 설립했고, 지금까지 조경가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2023년에는 세계조경가협회(IFLA)가 조경가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영예상인 ‘제프리 젤리코상’을 국내 최초로 수상했다. 

이번 전시 제목은 신경림의 시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에서 착안했다. 정 조경가에게 조경은 미생물부터 우주까지 생동하는 모든 것을 재료로 삼는 종합과학예술로, 50여년간 땅에 귀를 기울이고 고유 자생종의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 전시는 총 7개의 공간으로 나눠 그의 노력을 살펴본다. 첫 번째 공간인 ‘패러다임의 전환, 지속가능한 역사 쓰기’에서는 ‘탑골공원’ 개선사업(2002) 등을 통해 ‘장소 만들기’의 현장이 된 조경의 사례를 살펴본다. 한국 최초의 근대 공원인 ‘탑골공원’ 개선사업(2002)과 ‘비움의 미’를 강조한 ‘광화문광장’ 재정비(2009), 일제강점기 철길 중 유일하게 조선인의 자체 자본으로 건설된 경춘선을 공원화한 ‘경춘선숲길’(2015~2017) 등 수직에서 수평으로, 채움에서 비움으로 인식을 전환하고 공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조경의 역할을 드러냈던 프로젝트를 만날 수 있다. 

이어지는 ‘세계화 시대, 한국의 도시 경관’은 주요 국제 행사 개최와 더불어 한국을 찾는 세계인에게 선진화된 도시 경관을 보여주기 위해 동원된 사업을 다룬다. ‘아시아선수촌아파트와 아시아공원’(1986), ‘올림픽선수촌아파트’(1988), ‘대전엑스포’(1993) 등 한국의 경제, 문화, 기술적 도약의 기회였던 대형 국가 주도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정원의 재발견’에서는 우리나라 고유의 식재와 경관, 공간 구성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정원을 들여다본다. 이를 잘 보여주는 프로젝트가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의 ‘희원’(1997)이다. 호암미술관 개관 15주년을 기념해 조성된 희원은 넓은 대지 위에 자연에 순응하면서 내재된 원리를 읽어냈던 선조들의 미의식을 재현했다. 석단‧정자‧연못‧담장 등 정원과 건축 요소가 서로 숨겨 주고 드러내는 유연함의 멋이 특징인데, 이로써 살아 숨 쉬는 듯한 공간을 연출했다. 정원 곳곳에는 호암미술관이 수집해 온 신라시대의 석탑을 비롯해, 이름 없는 석공들이 다듬은 불상, 벅수, 석등, 물확 등의 석조물을 놓아, 수집품이 정원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배치했다.

또 ‘조경과 건축의 대화’에서는 조경가와 건축가의 유기적인 협업으로 탄생한 작업들을 살펴본다. 개인 주택의 작은 정원부터 섬 전체의 경관까지 땅의 조건을 읽고 이를 토대로 공간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조경과 건축의 내밀한 상생 작용이 돋보이는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이중 ‘남해 사우스케이프’(2018)는 남해를 조망하는 언덕에 지어진 골프장으로 거대한 자연 경관의 차경(借景), 그리고 그 장소에 남겨진 큰 암반과 암석의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이어가며 독특한 경관과 정원을 구성한 작업이다. 조민석 건축가가 설계한 클럽하우스와 조병수 건축가가 설계한 리조트 사이에 존재하던 거대한 암각 동산을 다듬어 바다를 향한 경관을 열었는데, 인공적으로 깎은 돌 틈에 풀을 심어 마치 바람을 타고 날아온 씨앗이 자란 듯한 자연스러운 환경을 디자인했다.

마지막 공간인 ‘식물, 삶의 토양’에서는 수목원과 식물원, 자연의 치유적 속성이 강조된 명상과 사색의 장소들을 조명한다. 광릉수목원으로 불리던 한국 최초의 ‘국립수목원’(1987) 설계 청사진과 남해의 독특한 기후대의 식생을 담은 ‘완도식물원’(1991) 조감도, 미국 뉴욕주 북부의 허드슨강 상류에 자리한 원불교 명상원인 ‘원다르마센터’(2011)를 구상한 수채 그림, 대지와 식생 현황도 등이 공개된다.

이와 함께 서울관 야외 종친부마당과 전시마당에는 전시를 위한 새로운 정원을 조성했고 배우 한예리가 오디오가이드에 목소리를 재능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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