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오래된 것이 좋다”
[백세시대 / 세상읽기] “오래된 것이 좋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4.04.22 10:16
  • 호수 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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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오래된 것이 좋다”. 

필자는 인생의 주요 길목마다 오래된 곳에 머물렀다. 필자가 졸업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곳이다.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신문사에서 20년 넘게 근무했다. 그리고 현재 몸담고 있는 ‘백세시대’ 역시 노인신문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오래된 것은 좋은 것 같다. 한 자리에 오래 존재했다는 건 그동안의 별의별 시간과 사변(事變)을 감내해낸 역량이 있다는 증거이고, 그만큼의 이력과 경륜, 노하우가 쌓였다는 얘기다. 

오래된 곳에서 훈련을 받은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70 가까운 나이에 동료, 선후배 기자 대부분이 일선에서 물러난 이 시간에도 현장에서 뛰고 있다. 

백세시대가 2024년 4월 15일로 창간 18주년을 맞았다. 2006년 4월 대한노인회 안필준 회장(1932 ~2009년)의 제안을 받아 창간해 전국 5만5000곳 경로당에 1년간 무료로 보냈고, 유가지로 전환하기까지 10년간의 적자 속에서도 지회를 위한 기부약속을 지켜왔으며, 좋은 신문 ‘백세시대’를 위해 지금까지 한 호도 거르지 않고 정성을 기울여 발간해오고 있다. 

백세시대는 인터넷 포털 다음과 네이버에 검색되는 유일한 노인신문이기도 하다. 

백세시대는 ‘제대로 만드는 신문’이라는 평가를 받곤 한다. 외형·내실이 빈약한 군소신문들이 ‘자동화 작업’으로 신문을 만드는 반면 백세시대는 여전히 ‘수동화 작업’으로 신문을 제작하기 때문이다. 자동화란 인터넷에서 베껴 내는 것을 말하고, 수동화란 일일이 현장 취재를 통해 기사를 생산해낸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지회의 각종 소식을 모은 ‘로컬뉴스’조차 지회에서 보내온 자료를 그대로 싣는 법이 없다. 담당자가 지회에 전화를 걸어 행사 장소와 날짜, 참석 인원, 인사말 등을 확인하고, 추가하고, 수정하는 세세한 과정을 거친다. 이 때문에 완벽한 행사 기사를 접한 지회로선 신뢰감을 갖기 마련이다. “행사 소식을 보냈으니 잘 내달라”, “우리 기사가 빠진 것 같은데 다음에 꼭 넣어 달라” 같은 요청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백세시대’라는 신문 제호 역시 ‘시대상을 반영한 적절한 제호’라는 평가를 받는다. 제호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날 편집국에 제호 공모 소식이 올라왔다. 1000만 노인 인구, 100세 장수 등 시대를 반영하는 새로운 제호를 찾는다는 것이다. 상금도 붙었다. 당시 제호는 ‘노년시대신문’이었다.

필자는 매주 대한노인회 각급 회장과 사회 저명인사를 만나 인터뷰를 해오고 있다. 2013년 7월에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로부터 상업차관을 얻을 때 통역을 담당했던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을 만났다. 백 원장은 “제호가 시대에 뒤쳐졌다”며 “백세시대신문, 이런 식으로 바꾸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필자는 회사로 돌아와 백 원장이 제시한 제호 그대로 응모했다. 응모 제호가 백세시대 발행인의 코드와 맞아 신문이 빠진 ‘백세시대’로 결정돼 난생 처음 당첨금을 손에 쥐기도 했다. 

백세시대가 무명의 인사를 하루아침에 유명인으로 만든 일화가 있다. 필자는 원로시인 김남조 선생(1927~2023년)을 인터뷰한 계기로 돌아가실 때까지 댁으로 백세시대를 보내드렸다. 김 시인은 지면 전체를 숙독하고 소감도 전해주던 자상한 어른이었다. 

2015년 1월 어느 날, “90세 넘은 잘 아는 철학과 교수가 계신데 인터뷰할 만 한 분”이라고 소개했다. 요즘 상종가를 올리는 김형석(104) 연세대 명예교수였다. 김 교수에게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하자 선뜻 응해주었고, 약속 장소에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 며칠 후 언론과 방송 등에서 김 교수의 연락처를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이후로 지면과 방송에서 김 교수를 자주 접하게 됐다. 

인물 인터뷰를 통해 만난 각계각층의 인사 가운데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1928~2022년)가 한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김 교수는 품격 있는 노인의 삶과 관련해 “오늘 이 시대를 살면서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가져야 해요. 그런 정신 못가지면 쓸모가 없지요.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에 희망을 안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아요. 미국에 붙을까, 중국에 붙을까 이따위 소리나 하고 있고”라고 했다.

‘오래된 사람’의 목소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이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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