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나비, 테헤란로 빌딩숲을 날다.
장자의 나비, 테헤란로 빌딩숲을 날다.
  • 함문식 기자
  • 승인 2009.11.11 17:39
  • 호수 1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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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한의원 정성채 원장

 

▲ 장자한의원 정성채(56·왼쪽), 동양당한의원 이지향(55)원장.

산업혁명 이후 서양의료계는 전문분과별로 분화된 발전을 모색해 왔다. 그 결과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다양한 치료법이 개발돼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서양의학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각 진료과를 통합해 총체적인 인체의 조화와 면역체계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

특히 노년층의 경우 두 가지 이상의 만성복합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이런 통합의료시스템은 더욱 절실한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통합적인 치료에 있어 한의학이 매우 뛰어난 특장점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수천년을 이어 내려온 전통의학은 이미 인체를 하나의 우주로 보는 세계관을 가지고 자연에 합일하는 치유철학을 수립했다는 견해다.

이에 대해 다양한 질환유발인자를 가진 현대인에게 전통적인 한의학의 철학으로 접근해 본질과 원리를 모태로 하는 치유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의사가 있다. 최근 강남 테헤란로에 대구 동양당 한의원의 분원인 ‘장자 한의원’을 개원하고, ‘치료’가 아닌 ‘치유’의 길을 가겠노라고 천명한 정성채(56) 원장이다. 정 원장을 만나 그의 독특한 치유철학을 들어봤다.



▶ 인테리어가 참 인상적입니다
우리의 삶이 깃든 ‘공간’은 또 하나의 ‘몸’입니다. 이곳에 한의원을 개원한 의도에서 본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공간입니다. 기존의 병원 인테리어가 진료자 중심의 효율성을 중시했다면, 이 공간은 환자의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하기를 바랐습니다. 과거 의료시스템이 미비했을 때는 의사가 한명의 환자라도 더 보는 것이 가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공간에서나마 한명의 환자라도 제대로 된 치유의 효과를 누리게 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전통 한옥의 툇마루와 목조건축의 짜맞춤은 ‘어울림’의 효과를 냅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목조건축이나 가구를 만들 때 쇠못을 쓰지 않았습니다. 쇠못을 만들 줄 몰라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쇠의 성질과 나무의 성질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틈이 벌어지고, 썩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나무 못을 쓰게 되면 천년이 지나도 단단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바로 ‘조화’의 힘입니다.

이 공간에서 제가 진료하는 환자들은 바로 이런 조화와 어울림을 통해 몸의 나쁜 기운을 몰아내게 됩니다. 진료자와 환자의 개념이 아니라 ‘나’라는 우주와 ‘너’라는 우주가 만나 서로의 에너지를 교환하고, 부족한 것과 넘치는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있어 질병이란 공존해야 할 것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야 할 자리를 찾지 못하기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 원장실 옆에 자리한 다실. 정 원장은 이곳에서 지인들과 담소도 하고, 때론 환자와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치유를 나누기도 한다.
▶ 강남 한복판에 개원하시게 된 계기는?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풍요롭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시입니다. 특히 강남 테헤란로는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곳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급자탑을 쌓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저 뿐 아니라 불문진(不問診)을 해 온 한의라면 사람들의 표정이나 태도, 행동 등을 보면 대충 이 사람이 어떤 불편함이 있겠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신비주의니 도사니 하며 비아냥거릴 지 모르지만, 이는 한의학의 오랜 한 분야입니다. 만물제동(萬物齊同). 내가 상대방이 되어 보면, 상대방의 질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다양한 질환을 앓고 있기에 주변에 이런 저런 ‘클리닉’도 많습니다. ‘이 분야에서 우리가 최고다’ ‘우리는 이 분야에서 특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광고는 환자에게 정보제공한다는 취지는 있겠으나, 진지한 의료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질환의 기저 원리를 파악하고, 본질적인 치료를 해야 하는데, 대증요법에만 의존하다보니 끊임없이 병을 달고 삽니다. 하나를 치료하면 다른 하나가 고장나는 식으로 말이지요.

강남역 테헤란로를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人間), 다시 말하면 사람 사이의 관계적 가치는 외면한 채 살아갑니다. 개인(人) 으로서 고립된 섬과 같이 살다보니 막힌 것을 뚫어낼 대상이 없고,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개체들이 서로에게 과중한 중압감만을 심어주고 있는 셈이지요.

이 곳에서 하나의 휴식을 뿌리내릴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치유의 개념이 퍼져 나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서구에서 의료의 개념이 치료(Treatment)에서 치유(Healing)의 개념으로 옮겨가고 있듯이 산업사회의 첨단을 걷고 있는 테헤란 로에 작은 쉼터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사실 꼭 이곳을 고집해 온 것은 아닙니다. 이곳 도심에서 수많은 의료기관이 개․폐업 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평소 아는 지인이 치료를 받으러 대구까지 내려 오기 힘들다며 서울에 분원을 내라고 설득한 끝에 지인의 건물인 이 자리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시절인연이란 말도 있듯이 이곳에 제가 자리를 잡게 된 것도 더 큰 우주적 관점으로 본다면 의미가 있어 그리 된 것이겠지요.

▲ 장자한의원의 인테리어에는 일체의 화학약품을사용하지 않았다. 공사한지 열흘 남짓 지난 병원 내부에는 머리아픈 화학약품 냄새 대신 은은한 나무와 감초향만 감돌았다.

▶ 철학이 확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의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저는 전남 출신입니다.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졸업 후에 특별외무고시를 치렀습니다. 수석합격이었으나, 최종면접이 우연히도 1980년 5월이었습니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출신지역만으로도 공무원 임용이 거부될 수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무수한 방황을 했지요.

그러다가 우연히 모 대학 한의학과 모집공고를 봤습니다. 사회를 위한 나의 역할, 나의 자아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일이 바로 한의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안의 내력도 무시하지 못하겠지요. 외증조부는 화남장이란 호를 쓰신 호남의 저명한 유의(儒醫)셨습니다. 작은 외조부도 영광에서 한의(漢醫)로 유명하셨지요. 그러나 한의학을 시작하면서도 그 큰 뜻은 잘 모른 채 시작했습니다.

1995년, 한 의식개발프로그램에서 이지향(55) 선생을 만난 것은 그런 점에서 운명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길은 이지향 선생을 만나서 부부의 연을 맺게 됨으로써 비로소 하나로 완전해졌습니다. 작고하셨지만, 제 장인어른인 이선동(李先東․1908~1993) 어르신은 영남지방에서 신의로 추앙받는 분이셨습니다.

수십년이 넘은 동양당한의원과 제 선조의 의료철학을 이어받아 이지향 선생과 제가 이어가고 있습니다. 호남은 침, 영남은 약이라 말합니다. 영남지방은 훌륭한 약재가 많고, 호남지방은 침술이 뛰어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보완하면서 표리(表裏)와 같이 전통 한의학의 뿌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 현대 한의학을 바라보는 관점은?
사실 현재 배출되는 한의사중에는 한의를 전공하면서도 양의의 체계와 사고를 답습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어려서부터 서양식의 사고와 교육체계를 따라 성장한 학생들이 진학해 대한의학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분석적이고 실증적인 서구적 인과관계로 한의학을 분석하는데는 유용할 지 모르지만, 동양철학을 근간으로 하는 한의학의 큰 철학적 원리를 깨닫는 데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한의학이 우주론적인 본연의 의미를 되찾으려면 지금 서양의학의 분류법을 따르는 것보다 한의학의 원리와 접근방식을 따라야 하는데, 한의가 양의의 기준을 다르다보니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한복에 칠피구두를 신은 것처럼 어색하게만 보이게 됨니다. 갈수록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젊은 이들이 외면하고, 심지어 공격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서양의학이 실증을 바탕으로 기계적, 생화학적 의학에 중점을 두고 발전해 왔다면 한의학은 정신과 기의 영역으로 더 천착해야 합니다. 사실 한의학에서 과를 나누고 분야를 분류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몸 전체의 조화를 추구해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치료를 놔두고 왜 그 몸의 일부분에만 효과를 본다고 광고하는 치료법을 쓴다는 말입니까.
물론 각자의 역할이 있겠지요. 제 말은 하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 정성채 원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정원장은 환자의 고통과 내가 하나가 되었을 때 참다운 치료, 즉 치유가 이뤄진다고 말한다.
▶ 그동안 진료에 임하면서 기억에 남는 환자를 꼽는다면
많은 환자들이 있지요. 기억에 남는 분으로 이지향 선생의 은사 사모님이 생각납니다. 남다른 사제지간의 정을 나눈 분인데, 그만 소장암, 복강암이 퍼져서 서울의 유명 의료원에서 여생이 1개월 남았다는 판정을 받고, 통증 없이 남은 시간만이라도 버티게 해달라며 찾아오셨었습니다. 이 선생과 나는 말 그대로 은사의 입장이 돼서 성심껏 진료를 했습니다.

그런데 1달이 남았다던 은사께서는 몇 개월에 걸친 침과 탕재 치료를 통해 좋아지셨습니다. 뱃속에 덩어리는 아직 남아 있지만, 침을 맞으면 작아지고, 몇 주 지나면 커지고 하는 식으로 7년째 행복하게 지내시면서 저희와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이 때부터 저는 확신을 가지고 암에 침 치료를 도입하게 됐습니다. 서양의학은 질환을 공격해 싸우는 것이지만, 한의학은 인체 안의 자연치유능력을 극대화 하는 것입니다. 암세포가 몸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도록 유도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한의학에서는 정신의 영역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은 우리 몸의 건강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또 한 예로는 20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두 번씩 찾아주시는 환경미화원이 계십니다. 몸이 불편하면 불편함을 치료하고, 특별히 아프지 않아도 보약이라도 지어가시는 분입니다. 한결같은 믿음입니다. 이런 분들이 제가 모셔야 할 또 하나의 우주인 셈이지요.

▶ 노인치료에 있어 한방치료가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무엇보다 지금 서양의학의 분과체제가 문제입니다. 얼마 전 복지부 발표도 있었지만, 다양한 만성복합질환을 가지고 계신 어르신들은 심하면 하루에 알약을 한사발 가까이 드시는 분도 계십니다. 질환보다 오히려 약이 걱정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통상적으로 노인들은 오랜 사용으로 인해 장기나 관절 등이 약해져 있기도 하고, 면역력이 저하돼 있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노인들의 경우 한 증상에 대한 치료보다는 종합적으로 신체적 기능을 회복시키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이 선행돼야 합니다. 몸의 자율신경을 회복시키지 않은 채 단지 약의 힘으로 증상을 다스리는 것은 미봉책일 뿐입니다.

노화학자 중 어떤 분은 몸을 제대로 사용하면 인간의 수명은 현재의 100세가 아니라 200세도 거뜬히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자연스러움을 배제한 인위적인 처방이 보편적인 수명을 늘려놓기는 했지만, 모든 사람들을 평준화 시켜버려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 수 있는 사람들까지 가능성을 닫아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100세를 산다고 하지만, 건강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건강하고 활기 가득한 노년, 이것이야말로 장수노년시대를 사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입니다.

함문식 기자 moo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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