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초고령 사회에서 알아야 할 환자의 권리 / 김광일
[백세시대 금요칼럼] 초고령 사회에서 알아야 할 환자의 권리 / 김광일
  •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
  • 승인 2024.05.13 11:07
  • 호수 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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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

환자는 자신의 질병상태를 비롯

치료법‧부작용에 대해 알권리와

‘동의’ 여부 결정권 갖고 있어

하지만 대부분 행사되지 않아

의사‧환자 모두 인식의 전환 필요

의정갈등으로 인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 교수들이 입원환자 진료를 위해 순번을 정해 야간 당직근무를 하고 있다. 20년 만에 야간 당직근무를 하게 되니 근무의 여파로 다음 날 정상적인 진료가 힘들다고 느끼게 된다. 하루빨리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라지만 잘 해결될 수 있는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막막한 마음이 든다. 

당직근무를 하면서 다른 진료과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고령 환자 중에 자신의 병 상태와 현재 진료 중인 치료 내용, 그리고 향후 예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분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인병내과에서는 환자분께 가능한 모든 검사 결과에 대해 설명드리고 앞으로 받을 치료 방법의 이득과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안내한 후 환자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치료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하루 100명 이상의 외래 환자 진료를 해야 하는 대학병원의 특성상 모든 진료과에서 이와 같은 진료를 진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현실을 고려해도 고령의 환자들이 자신의 상태와 현재 치료받는 내용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환자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우리나라 의료법에서는 ‘환자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환자의 권리와 의무는 의료기관 인증 평가를 받아야 하는 병원의 의료진들은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환자의 권리로는 ‘진료받을 권리, 알 권리 및 자기 결정권, 비밀을 보호받을 권리, 상담ᆞ조정을 신청할 권리’가 있고, 의무로는 ‘의료인에 대한 신뢰ᆞ존중 의무, 부정한 방법으로 진료를 받지 않을 의무’가 있다. 

이 중 ‘알 권리 및 자기결정권’이란 환자가 담당 의사‧간호사 등으로부터 질병 상태, 치료 방법, 부작용 등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자세히 물어볼 수 있으며, 이에 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말한다. 당연한 내용인데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을 고려할 때 환자의 알권리와 자기 결정권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검사나 시술 또는 수술이 예정된 경우에는 해당 내용에 대해 설명하는 정해진 양식이 있기 때문에 의사가 동의서를 받기 위해 환자 및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지만, 치매나 암, 심혈관질환 등 앞으로 환자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질환을 진단받고 치료법을 정해야 하는 시점에서 환자의 알 권리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어렵다. 

이는 의료진만의 문제는 아니고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도 쉽지 않다. 환자와 가족들에게 검사 결과와 앞으로 받을 수 있는 치료 방법에 대해 설명드리고 나서 환자와 가족들이 어떠한 치료 방법을 더 선호하는지에 대해 질문하면 많은 경우 환자들이 나는 잘 모르니 전문가인 교수님이 정해주면 따르겠다고 한다. 

또한 환자분들이 가지는 궁금증은 앞으로 어떠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 보다 “왜 나에게 이 병이 왜 생겼는가”하는 질문이나 검사 및 진단에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닌지에 집착하는 경우도 많아 효율적인 상담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한다. 

의사-환자 관계는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인 관계였다. 즉, 의사가 결정하고 환자는 이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이었다. 의과대학 학생 실습 때 교수님이 진료 보는 외래 진료실 참관을 하다보면, 환자들은 거의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의사가 정해주는 치료법을 따라야 하고, 성실하게 약을 복용하지 않았거나 검사를 하지 않았을 때는 혼나는 모습을 보곤 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져야 하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 진료를 해야만 하는 여건상 환자-의사 관계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고 의사의 결정사항이 환자에게 전달되는 일방향 통로만 지속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환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인 알 권리 및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그리고 치료과정에서 중요한 가치가 어떻게 영향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전문가인 의료진과 상담을 통해 치료의 목표와 과정을 명확하게 정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의정사태로 인해 환자의 진료받을 권리를 누리기 어려운 여건이 하루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며, 진료 과정에서 알 권리와 자기결정권이 충분하게 반영되는 진료가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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