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비견됐던 프랑스의 천재화가 ‘뷔페’ 조명
피카소와 비견됐던 프랑스의 천재화가 ‘뷔페’ 조명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4.05.13 15:12
  • 호수 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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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베르나르 뷔페-천재의 빛:광대의 그림자’ 전

‘20세기 마지막 구상화가’로 극찬 받아… 4미터 넘는 대형작 120여점

전후의 불안 담은 ‘광대의 얼굴’, 대형 유화 ‘단테의 지옥…’ 등 눈길

이번 전시에서는 ‘피카소의 대항마’라 불리던 프랑스의 화가 베르나르 뷔페의 예술 세계를 조명한다. 사진은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그의 대표작인 ‘광대의 얼굴'
이번 전시에서는 ‘피카소의 대항마’라 불리던 프랑스의 화가 베르나르 뷔페의 예술 세계를 조명한다. 사진은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그의 대표작인 ‘광대의 얼굴'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베르나르 뷔페(1928~1999)는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피카소의 대항마’로 불릴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도 “내가 인정하는 프랑스 회화의 마지막 거장은 베르나르 뷔페”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1958년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지성과 감성의 문인 프랑수아주 사강 등과 함께 뉴욕타임즈에서 ‘프랑스의 가장 뛰어난 젊은 재능 5인’으로 선정했고, 레지옹 도뇌르 문화훈장을 2번이나 받은 프랑스의 마지막 구상 회화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피카소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베르나르 뷔페의 예술 세계를 재조명하는 전시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9월 10일까지 진행되는 ‘베르나르 뷔페-천재의 빛: 광대의 그림자’ 전에서는 4미터가 넘는 압도적인 크기의 대형 작품들을 포함해 삽화, 판화, 잉크 드로잉, 수채화 등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넘나드는 뷔페의 작품 120여점을 만나 볼 수 있다.

뷔페는 혼돈의 시대에 태어나 일찍이 천재로 인정받은 화가였다. 15세 어린 나이에 국립 고등 미술학교에 특례로 입학할 정도로 그림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당시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를 뒤흔든 2차 세계대전에 휘말려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당장 먹을 것을 구하기 조차 어려웠고 캔버스나 물감 같은 재료도 마찬가지였다. 이로 인해 그는 작품 속에 삭막하고 쓸쓸한 풍경과 메마른 사람들, 좌절의 초상을 그림으로 녹여냈다. 황량했지만 자유로웠던 세상에서 뷔페는 최소한의 색상으로 구축한 자신만의 화풍을 캔버스에 풀어낸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평생 8000여점을 남길 정도로 방대한 예술 세계를 구축한 그의 작품을 총 7개의 공간으로 나눠 소개한다. 

이중 ‘천재의 빛’ 공간에서는 뷔페가 그린 인물화를 선보인다. 그는 ‘나는 무엇이며, 어떻게 존재하는지’ 실존적 질문을 탐구하며 이를 인물화로 표현했다. 그렇게 탄생한 ‘방 안의 벌거벗은 남자’(1948), ‘광녀-모자 쓴 여인들’(1970) 등은 영혼이 사라진 듯 초점 없는 눈동자, 기이하게 길쭉하게 늘어난 신체로 인물을 표현하면서 전후(戰後) 인간의 불안과 피폐함을 담아내고 있다.

또 ‘광대의 그림자’에서는 뷔페가 오랜 시간 사랑한 주제였던 광대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이중 ‘광대의 얼굴’(1955)이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은 어두운 푸른색 배경에 우울하고 쓸쓸한 표정의 광대를 그려넣었다. 광대는 전후의 공허·불안·분노·고통을 표현하는 그의 상징이 됐다. 뷔페의 광대 그림은 전쟁의 아픔과 트라우마로부터 회복을 염원하는 프랑스인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힘을 발휘했다. 그는 광대를 반복적으로 그린 이유에 대해 “광대는 온갖 변장과 희화화로 자신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가로 4미터가 넘는 대형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다섯 번째 공간인 ‘인간의 조건-문학, 종교, 신화’이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중 지옥편을 표현한 폭 430㎝의 대형 유화인 ‘단테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은 지옥에서 가장 깊숙한 곳의 얼음 호수에 갇힌 자들의 고통을 차가운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단테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
‘단테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역시 뷔페가 즐겨 그린 작품이었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뚜렷한 목표 의식과 확고한 의지가 있었으며, 좌절하는 법이 없었다. 이런 점은 추상미술이 주류를 이룰 때에도 자신만의 구상회화를 고집스럽게 그려나간 뷔페와 닮았다.

이외에도 전시에서는 뷔페와 40년을 함께했던 아내이자 예술적 동료였던 아나벨을 그린 그림과 아나벨의 책과 음반 표지 등도 볼 수 있다. 아나벨과 뷔페는 서로의 상처와 우울 등을 공감하며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줬다. 뷔페는 가수이자 배우, 작가였던 아나벨의 책과 음반 표지 그림을 그렸고, 아나벨은 뷔페의 전시회를 위한 서문을 써주었다.

또 뷔페가 여행을 다니며 그린,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밖의 다른 도시 풍경화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1997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린 어두운 그림들도 눈에 띈다. 임종을 앞두고 6개월간 작업한 ‘죽음’ 연작 24점을 통해 뷔페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감정의 변화를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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