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광복회장 “개천절을 건국기념일로 하는데 대한노인회가 호응하고 같이 해주길”
­­­이종찬 광복회장 “개천절을 건국기념일로 하는데 대한노인회가 호응하고 같이 해주길”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4.05.17 15:31
  • 호수 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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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편향·내부갈등으로 분란 겪던 광복회 정상화시켜…‘무보수’ 선언

요즘 노인 체력 예전과 달라… 노인 나이 70세로 상향, 정년도 늘려야

[백세시대=오현주 기자] “광복회가 (건국 기념일 만드는)학술회의를 할 예정인데 대한노인회의 호응을 얻어 같이 했으면 좋겠다.”

5월 13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이종찬(88) 광복회장이 하는 말이다. 이 회장에게 “대한노인회의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와 광복회가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이 뭐가 있을까”라고 묻자 이 같이 답변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에 ‘개천절을 건국 기념일로 하자’는 주장을 했다. 당시 이 회장은 “지금으로부터 4356년 전 한민족 최초로 세워진 국가 고조선이 우리나라”라며 “내년부터 매년 10월 3일(개천절)을 건국 기념일로 기리는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이날 ‘백세시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 대한민국의 원년(元年)”이라는 말도 했다. 

광복회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및 그 유족·후손들이 1965년에 결성한 단체이다. 이 회장은 경기고와 육사를 나왔다. 11·12·13·14대 국회의원, 정무장관, 국정원장 등을 지냈다. 2023년 6월에 제23대 광복회장에 취임했다. 전 재산을 팔아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1867~1932)의 손자로, 임시정부의 마지막 거점인 중국 충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초대 부통령을 지낸 성재 이시영(1869~1953)이 그의 종조부이다. 

-광복회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광복회 회원은 8500여명이다. 단체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중 생존한 이는 6~7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몸이 불편해 활동하는 이는 한두 분 정도다. 여기도 2세 체제로 들어섰고, 평균연령이 75세다.”

-‘개천절을 건국 기념일로 하자’는 주장의 근거는.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민족 중 하나이다. 대한독립선언에 선언 날짜로 ‘단군기원 4252년 2월’, 3·1 독립선언에 ‘조선건국 4252년 3월 1일’로 돼 있다. 중국 상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음력 10월 3일을 ‘건국기원절’이란 이름으로 기념하기도 했다. 개천절을 건국절로 하자는 것은 내 아이디어가 아닌 임시정부에서 이미 결정한 것이다.”

이 회장은 “우리의 반만년 역사가 실재했다는 것은 중국의 모택동과 주은래가 생전에 한 말에도 나타나 있다”며 주은래의 말을 인용했다. 

주은래 총리는 “예로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중국 역사학자들은 대국주의 관점에서 고대사까지 왜곡했고, 조선족은 기자의 후손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워 평양에서 그 유적을 찾아 증명하려고까지 했다. 이것은 역사 왜곡”이라고 말했다. 

-광복회장 취임 직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는 정부의 형태만 변화했을 뿐 나라는 계속돼 왔다. 1919년 임시 정부 이전은 왕정으로 독립운동도 왕정 차원에서 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도 건국이 아닌 정부 수립이다. 이승만 대통령 취임사에도, 첫 관보에도 ‘대한민국 30년’으로 돼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연호를 제대로 사용한 것이다. 독립을 선언하고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한 1919년을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은 ‘대한민국 30년’이 되고, 2024년인 현재는 ‘대한민국 106년’이 되는 것이다.”

-1948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나.

“그 이전에는 나라가 없었다는 말이 되므로 일제의 식민지 수탈행위를 정당화하게 된다. 독도 역시 일본 땅이 된다. 위안부에 대해서도 우리가 말할 자격이 없어진다. 일본 국민이 일본 국민을 혹사한 것이니까. 더욱이 독립운동의 역사는 허사가 되며, 안중근과 윤봉길은 테러범이 된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 모금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정식 정부의 초대 대통령을 모시는 게 얼마나 명예로운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해주길 희망한다. 그러나 공과 사를 다 같이 담아야 한다.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 기념관에도 ‘워터게이트’ 사건이 전시돼 있다. 자랑스러운 것만 전시해놓고 잘못한 경우는 전부 감춰버리면 기념관의 수준이 떨어질 것이다.”

-이승만에 대한 개인적 평가는.

“중국 천안문 광장에 사진이 걸려 있는 마오쩌둥의 생애에 대해 덩샤오핑은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 했다. 이승만은 ‘공팔과이’(功八過二)라 해도 인색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대해선.

“홍 장군은 (일제 때) 연해주에서 무장투쟁을 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해 편의상 소련공산당에 가담했던 것이다. 카자흐스탄에 있는 10만명의 고려인들이 ‘홍범도를 공산당으로 몰면 우리도 공산당원이다’, ‘우리가 받은 훈장을 다 반납하겠다’고까지 했다.”

-일본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이라면.

“조부는 일본 사람에 의해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그들의 고문으로 몸을 잘 쓰지 못했다. 국회의원 하는 동안 일본 대사가 여는 일본 국경일 기념행사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제가 사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아버지가 사시미, 유부초밥을 입에 대지 못하게 했다(웃음). 그 만큼 원한이 있다.”  

-광복회가 한 동안 몸살을 앓았다.

“전임 회장의 정치 편향을 비롯 무리한 수익사업 등으로 적자가 쌓여 거의 파산 직전이었다. 내부적으로 고소·고발이 남발했고, 1년에 네 번이나 회장이 바뀌기도 했다. 제가 온 후로는 수익사업을 하지 못하게 했고, 직원도 공채를 통해 뽑았다. 부채 청산 시까지 무보수 명예직을 선언하자 임원들도 제 뜻에 공감하고 뜻을 같이 했다. 이제는 분란이 사라졌고, 정상화 됐다.”

-정치 경력 중 기억에 남는 일은.

“정보원장 시절, IMF 사태로 은행이 통폐합 될 때 농·축·수협도 통합시키자는 말이 나왔다. 중앙에선 됐지만 지방은 어려웠다. 지방 지부장들의 자신 있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통폐합을 도와드리겠다고 하자, 대통령이 잠시 숙고하더니 ‘우리가 그런 거 하지 않으려고 여기에 와 있지 않나요?’ 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땀이 나더라. 그 방법은 민주적이지 않다는 뜻이었다.” 

-고령화·저출산 문제 극복 방법은.

“우리의 대가족제도가 깨지면서 저출산 현상이 생겼다. 우리는 어머니가 한 집에서 사셨다. 어머니가 모기장 안에 손주를 재우면서 밤새도록 부채질 하는 모습을 봤다. 요즘 딱 내외만 살게 돼 있는 아파트에서 노인이 있을 공간이 사라져버려 손주를 돌봐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게 됐다는 얘기다.”

-다시 대가족제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일종의 전환기인데, 어른을 공경하지 않은데서 저출산이 온다고 본다. 아파트 설계 시 노인이 거주할 수 있도록 사랑채 같은 걸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이는 사랑으로 돌봐야지 돈 받고 봐주는 게 아니다. 우리 전통인 대가족제의 미덕을 살려야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이가 주위에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도 심각한 문제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요즘 75세 노인도 산을 잘 오를 정도로 체력이 좋다”며 “노인 나이를 70세로 상향하고, 정년을 늘리고, 노인 일자리도 확대해 초고령 사회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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