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할아버지가 준 자산 / 김동배
[백세시대 금요칼럼] 할아버지가 준 자산 / 김동배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4.06.10 11:23
  • 호수 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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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친구의 형님이 쓴 회고록을 읽고

날짜, 지명, 피란경로까지 묘사한

전쟁참화 속 상세한 기록에 감탄

할아버지의 사랑 듬뿍 받았다는

손녀가 쓴 추억도 큰 감동 줘

친구 형님인 김상택 씨가 쓴 회고록을 재미있게 읽었다. ‘국가를 세 번 바꿔 불렀습니다’이다. 저자가 그동안 써온 글과 그림들을 추려 미수가 되는 작년에 책으로 엮었다. 

미사여구 없이 일기 형식으로 쓴 그 회고록이 특별한 이유는 그의 나이 14세 때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겪은 수많은 고난을 회고하면서, 보통 이런 류의 책과는 좀 달리 70년 전 피란 길에 경험했던 일들에 관해 날짜, 지명, 이동 경로까지 자세히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어제 다녀왔던 길을 묘사하는 것 같았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이리저리 피란 다니기도 버거웠을 텐데 오랜 세월 그것들을 잊지 않은 비상한 기억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비극적 역사의 한복판에서 생사의 줄타기를 하면서 시시때때로 마주한 절박한 순간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아가 성공에 이르게 되었는지 한편의 대서사시를 보는 듯했다.  

16세에 켈로(KLO, 미국 극동군 사령부 소속 첩보‧게릴라 부대) 부대원이 되어 평안도 사투리를 배우고 인민군 군가를 불렀다. 어머니는 그의 생사를 몰라 조그만 증명사진을 방에 붙여놓고 매일 밤 우셨다. 몇 년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다(켈로에서의 활동은 비밀인 모양이다).

전쟁 중 아버지와 여동생을 여의고 어머니와 남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됐다. 전후 정착하는 과정에서 친인척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때로는 몰인정 속에 오직 생존하기 위해 갖은 고초를 다 겪는다.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 전 과정을 반년 만에 마치고, 말할 수 없는 금전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고학과 다름없는 공부를 계속하여 공고를 졸업했다.  

한국 3대 기간 산업체인 한국유리에 입사해 그동안 나름대로 익힌 처세술과 삶의 기로에서 내린 정확한 판단으로 판유리와 자동차 유리 분야의 기술자가 된다. 공고 졸업생으로 입사해 공장장까지 올라가는 동안 야간대학원에 다니면서 형설의 공을 쌓는 등 최고 엔지니어로서의 기술을 익힌다. 

금강유리(KCC)로 전직해 선진외국과 기술제휴를 위한 실무책임자를 거쳐 생산총책임 임원으로 근무하다 35년간의 공장 생활을 마친다. 회사생활 초기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을 때 여러 번 위기의 순간을 맞았으나 그때마다 귀인(貴人)을 만나 운명을 개척한다.

그는 일본 식민지에서 태어나 일본 국가 ‘기미가요’를 불렀고, 해방 후 대한민국 국민으로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다가, 켈로 부대원으로 북한 국가 ‘아침은 빛나라’를 불렀고, 다시 우리가 지금 부르고 있는 애국가를 불렀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통해 주인의식으로 성실히 회사 일을 맡아 자수성가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그의 손녀가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글이다. 손녀가 쓴 글의 전문을 여기에 옮긴다.   

“할아버지의 첫 번째 손녀로 태어나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전국 방방곡곡 유적지, 박물관 관광명소 등을 데리고 다니셨고 도슨트 역할을 하시면서 직접 설명도 해주셨다. 일방적인 설명이 아닌 꾸준히 질문을 던지시어 생각을 하게끔 해 주셨다. 늘 신문지에서 기사를 스크랩해서 오셨고, 일정을 빼곡하게 적어 오셨다. 그 모습에 할아버지가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집중하면서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방학 때만 되면 우리 집에 오셔서 나와 동생을 옆에 앉혀 두시고 스케치북에 방학 기간동안 다녀온 곳을 정리하고 글을 쓸 수 있게끔 지도해 주셨다. 덕분에 선생님들께 칭찬도 많이 받고 상장도 많이 받았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지금까지도 잘 자리잡고 있다. 나는 하나의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고 시작하는 편인데, 대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적극 추천해주지 않으셨다면 미국에 가서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 주신 것들이 현재 나에게 큰 자산으로 남아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할아버지는 특별한 존재이겠지만 나에겐 그 이상인 것 같다. 표현 방식이 서투시고 걱정되는 마음에 가끔 잔소리도 하시지만 그게 다 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취미로 시작하신 글쓰기가 책 출판까지 오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할아버지에게 다시 한 번 존경심이 생긴다. 한편으로는 글로 기록을 남겨두셔서 몰랐던 부분에 대해 알 수 있었고, 훗날 책을 다시 읽으며 추억을 되새길 수 있을 것 같다.”

훌륭한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있는 청년이라면 틀림없이 인생 지도를 잘 그리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고위직을 역임한 내 친구의 성공적인 삶도 인생 멘토인 형님을 닮아 대단한 기억력과 성실을 바탕으로 하여 일구어졌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한국 산업화 시대에 형은 생산 현장에서, 아우는 무역 진흥에 헌신해 국가경제부흥에 공을 세운 형제가 되었으니 하늘에 계신 부모님도 흐뭇해하실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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