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면 왜 주눅부터 들까
병원에 가면 왜 주눅부터 들까
  • 연합
  • 승인 2009.12.31 15:14
  • 호수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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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문화의 사회학’ 출간

오늘날 의사와 병원은 사회적 선망과 경외의 대상이다. 그들이 벌어들이는 부(富)가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들에게 없는 권위를 지닌 전문가라는 인식이 강하다.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겨 그들 앞에 나서는 환자들은 일단 주눅이 든다.

데버러 럽턴 호주 찰스스튜어트대학 문화정책학과 교수는 ‘의료문화의 사회학’에서 의료란 한 사회에서 환자와 몸, 건강에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달린 사회문화적 현상이라고 본다. 몸과 질병, 의료 행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한 사회의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라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몸과 질병은 ‘생물학적 실재’로 여겨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몸과 질병을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밀었으며 그를 둘러싼 담론과 이념, 상징을 만들어냈다.

성적 존재로서 몸은 불륜, 동성애 등 금기나 윤리성과 연계돼 정치적 투쟁과 갈등을 일으켜 왔으며, 공중보건이란 단순한 위생 관리가 아니라 개인의 몸을 강제적, 차별적으로 통제하는 사회권력을 뜻한다.

병든 몸 역시 하나의 ‘언어적 은유’다. “그는 에이즈에 걸렸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는 면역력이 약해져 많은 질병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뜻 이상을 상상한다. 그 환자의 도덕적 성향이나 행동 방식 등 ‘인간 유형’을 머릿속에서 멋대로 정해버리는 것이다.

질병에 사회문화적 상징이 담겨 있다면, 의료에도 마찬가지다. 근대화와 함께 과학적 의학이 세를 넓히면서 환자나 민간이 나름대로 질병을 해석하는 일은 위험하다고 여겨졌고 모든 공은 의사에게 넘어갔다.

의료는 일탈을 정상으로 되돌려놓는 행위이므로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와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 신비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어떤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대다수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의료진은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최근 의학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보도나 묘사도 늘었으나 여전히 의사들은 매스미디어에서 대체로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의료가 전문성과 함께 헌신과 희생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권위는 높아지고,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는 모종의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하얀거탑’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회의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것.

의료진도 좋은 환자와 나쁜 환자에 대한 모델을 염두에 둔다는 연구 결과도 이 권력 관계를 보여준다. 의료진은 그 기준으로 ‘환자가 스스로 질병을 일으켰는가’, ‘치료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가’, ‘순응적인가’를 생각한다는 것. 권력 관계가 생겨난 탓에 의료진의 도덕적 판단이 개입하는 셈이다.

저자는 어떤 사회과학적 이론으로 접근해도 의료적 상호작용에 권력 관계와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정되나 “의료가 얼마나 억압적인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며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이 권력작용을 남용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으나 생산적인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는 것.

저자는 다만 의료와 사회문화의 관계를 이해하면 의료를 둘러싼 대안적인 시각을 넓히고 다양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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