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늘도 탑골공원공원으로 간다”
“난 오늘도 탑골공원공원으로 간다”
  • 조경숙
  • 승인 2006.08.17 2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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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너머 아직도 끼니 걱정하는 노인 많아

“나이 들어 집에 있으면 빨리 늙어… 일 없이 집에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제 자식들 눈치 보이고 못할 짓이여….”

 

박모(68·금천구 독산동)씨는 1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종로2가에 있는 탑골공원에 나온다.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도 만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기 위해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늘 출근하는 마음으로 탑골공원에 나오겠다는 그는 팔각정 낮은 계단에 앉아 말동무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겨울. 기자는 서울 종로2가에 있는 탑골공원을 들렀다.

탑골공원 초입, 삼일문 앞에는 말끔한 양복을 입은 두세명의 노인들이 구두를 닦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구두를 닦은 노인은 금세 옆 노인과 통성명을 한다.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과는 금세 친구가 된다. 아침인데도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어느 집이 맛있는지 서로 알고 있는 맛 집 이야기를 한다. 그 옆에 작은 판자를 펴놓고 담배를 팔고 있는 아줌마는 한 노인과 연신 웃고 있다. 

문화재 보호 측면에서 탑골공원 내 음식물 반입이 금지된 뒤 많은 노인들은 종묘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많은 노인들이 있던 자리에는 몇몇의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나뭇가지 사이로 햇볕이 드는 곳에 자리잡은 노인 몇 명이 신문을 읽고 있었다. 한 노인은 새우깡을 부셔 비둘기 무리를 불러 모으고 그것을 신기한양 쳐다보고 있는 몇몇의 사람들이 심드렁하게 앉아 있었다.

팔각정 낮은 계단 코끝에 돋보기안경을 걸치고 신문을 읽고 있는 한 노인은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네?”
“어르신 불이 없으신가요? 제가 붙여 드릴까요?”
“허, 젊은이 귀신이네 어떻게 알았어? 말동무라도 생기면 빌리려고 했는데…”
“어르신 날씨가 쌀쌀한데 일찍 나오셨네요. 감기 드시겠어요.”
“감기는 무슨, 이렇게 매일 나오는 것이 운동이지, 아직 건강해…”
“어르신 혼자이신가요?”
“아녀, 매일 나오는 친구가 있는데 오늘 안보이네….”
“어르신 집도 있고 주위에 노인정도 있을 텐데 왜 이렇게 아침부터 여기에 나오셨어요?”
“집에 있으면 불편해. 손주들 눈치도 보이고…. 그리고 집에 있으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하게 돼, 여기에 나오면 친구들도 사귀고, 맛난 것도 사먹고 여기에 나오는 것이 편해서 나오지”

4년째 탑골공원에 나오는 김모(65·일산)씨는 탑골공원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때 내가 살아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집에 있으면 누구하나 말시키는 사람도 없고 동네 노인정도 여기만 못하다고 한다.

김모씨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햇볕이 원각사지십층석탑 안쪽까지 들어왔다. 그 볕을 따라 노인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막 신문을 깔고 자리를 잡고 있는 박모(68·금천구 독산동)씨는 염색을 해서 그런지 아직도 젊어 보였다.

“어르신 젊어 보이시네요?”
“허, 그렇게 봐주니 고맙네”
“어르신 일찍부터 공원에 나오셨네요?”
“내 하루 일과여, 여기다 매일 출근 도장을 찍어 부러.”
“공원에 왜 나오시나요?”
“왜 나오냐고? 친구들 만나러 나오제. 집에 있으면 자식들 눈치보이고 빨리 늙어, 좀더 살라면 바지런히 움직여야제, 안 그런가?”
“특별히 탑골공원을 찾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뭐 이유랄 것이 있나, 집에 있으면 할일도 없고…. 여기 나오면 외롭지는 않지, 친구들도 사귀고 같이 막걸리라도 한잔 하고 좋잖아! 그리고 여기 오는 사람들 모두가 심심하고 외롭고 해서 나오는 거지 별 이유 없어.”
“친구들 사귀시고 약주하시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시겠네요?”
“아녀, 5천원이면 7백원짜리 담배 한갑사고, 3천원짜리 국밥에 소주한병 할 수 있어. 그리고 지하철은 무료니까 돈은 안들고…. 어려운 노인네들 보려면 담 넘어 원각사 찾아가서 그 분들 얘기 좀 들어봐. 아직도 끼니 때문에 걱정하는 노인들이 많아, 그 사람들 보면 나도 맘이 안좋아.”

“담 너머는 아직도 한끼 소중한 노인 많아”

기자는 박모씨의 말을 듣고 담장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도 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옷가지를 팔고 있는 노인과 멈춰진 시계를 작은 판자위에 진열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3,000원짜리 국밥집 커다란 솥에서 구수한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2,500원짜리 간판을 크게 내다 걸은 이발소 주인은 장사 준비로 한창 바쁜 모습이다. 어디서 왔는지 노인들에게 신발 광고 전단지를 억지로 손에 쥐어준 한 여자는 잰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멀리서 ‘원각사 무료급식소’라는 2층 창문이 보일 즈음, 낮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모습의 노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멀쩡한 옷을 입은, 구두에 광을 내고 점심을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노인들은 없었다.

 

무료 급식을 하고 있는 원각사를 따라 볕도 안 드는 담벼락에 노인들이 따닥따닥 줄지어 앉아 있었다. 무료 급식을 기다리기 위해 아침부터 줄지어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쌀쌀한 바람을 서로의 몸으로 힘겹게 받아내고 있었다.

김모(75·영등포)씨는 맨 뒷줄에 앉아 목에 거는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어르신 안 추우세요?”
“춥지, 왜 안 추워. 그래도 하루 한 끼 먹는 건데 참아야지….”
“어르신 집이 없으신가요?”
“있지. 그런데 잠만 자러가…. 자식들이 돈도 안주고 나가라고 해서 이렇게 동냥 비슷하게 연명해….”
“왜 자식들이…?”
“이제 죽으라는 거지, 살 만큼 살았으니…. 그래도 자식들 원망은 안해. 그놈들도 어려우니까 그렇겠지 뭐….”

김모씨의 자식들은 모두 3명으로 2명은 지방에 살고 있으며, 영등포에 살고 있는 자식은 작은 회사에 근무한다고 했다. 그런데 왜 자식들은 김모씨를 부양하지 않으려고 하는 걸까?


원각사 보리 스님은 “하루 한끼로 때우는 노인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하루평균 200명 정도의 노인들에게 급식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오는 대부분의 노인들이 가족에게서 버림받거나 밖으로 내몰린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보리 스님은 “장소가 협소해 더 많은 노인들께 음식을 제공 못하는 것이 아쉽다”며 “이들을 우리와는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고 함께 안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점심 때가 되어도 담장 안쪽에는 볕이 들지 않았다. 노인들은 원각사로 줄을 지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무성영화에 나올법한 잡화상 너머로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단 몇 걸음 차이로 시간이 다른 세상인 듯. 원각사 주변 시간은 노인들 걸음마냥 천천히 아주 느리게 흐리고 있었다. 

“내가 정말 탑골공원에 오는 이유를 알고 싶다고? 늙으면 제일 힘든 게 외로움이야. 외롭다고 느끼면 정말 죽고 싶거든. 여기 사람들이 대부분이 외로워서 나왔다고 보면 맞을 거야. 여기 오면 최소한 외롭지는 않거든….”

 

이름을 끝내 말하지 않았던 한 노인의 말이다.

조경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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