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김영삼 前대통령 ④
[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김영삼 前대통령 ④
  • 관리자
  • 승인 2006.09.0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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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독서로 두뇌활동 총기 유지하며 유머 즐겨

본지는 우리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대개 장수하는 데 주목하여 은퇴한 노인으로서 겪는 일상의 작은 행복과 세월의 무상함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지면을 마련했습니다. 공과 과가 있겠으나 어차피 전직 대통령들은 우리 역사입니다.
본지는 정치적 평가나 정파적 편향성을 지양하고 전직들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선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간적인 관심사와 삶의 즐거움, 건강생활, 원로로서의 자리 등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지는 나라와 민족에게 불의한 일이나 좋지 않은 역사에 대한 평가와 의의에 대해서는 다음 기획시리즈로 미뤄두고, 기왕의 기획시리즈를 계속하며 ①이승만 ②윤보선 ③박정희 ④전두환 ⑤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여섯 번째로 김영삼 전 대통령 편을 연속 게재합니다. 백세시대 독자 여러분의 ‘건강 노년·문화 노년’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병로 대기자(작가)〉
 ※사진출처:국가기록원


지난 5·31 지자체 선거 당시 이른바 이미지정치가 도하 매스컴에서 화제가 됐다. 겉으로 포장된 이미지에 현혹되어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 이미지 정치를 우려하는 지적이 많았다. 악의적인 왜곡이나 우연한 사건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경우는 특히 당사자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경우도 그런 부정적 이미지가 씌워져 손해를 본 부분이 있다. 언젠가 기자들과 이야기하는 중에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운동을 좋아하는 건강체질의 김영삼 대통령이니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얘기였다. 지성적인 자부심을 가진 서울대 출신 정치인으로서 할만한 아름다운 겸양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지적인 면에서 경쟁자들보다 뒤지는 것처럼 잘못 이해될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옥스퍼드나 하버드를 나왔대도 학교 졸업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실력이니 자질이니 하는 시비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평생을 우려먹는다. ‘명문대 출신은 뭐가 달라도 달라’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대 출신 프리미엄 못 누려

 

안타깝게도 김 대통령은 그런 프리미엄을 별로 얻지 못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가장 장수한다면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잘못된 세간의 인식 때문에라도 독서를 게을리 할 수 없었을 것 같고 그것이 앞으로 건강과 장수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해본다는 얘기다. 물론 97세인 부친이 아직 정정하니 가족력으로도 대통령들 중에서는 누구보다 장수할 만하다.


“영광은 짧고(5년) 고생은 길었다”고 한 김기수 비서실장의 표현대로, 공부보다는 투쟁하는 야당 지도자로 이미지가 굳어진 것이 크기는 컸던가 보았다. 김 대통령의 참모진에서도 이것을 교정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

 

‘인간 김영삼’, ‘당당한 지도자 김영삼’ 등 김 대통령 책들마다 그 점을 해명하고 있다. 자질론 시비가 일어난 데 대해 ‘신동아’ 1992년 10월호에 작가 이문열 씨가 쓴 기사를 빌어 전말을 살짝 소개하기도 했다. 1980년 계엄하에서 김 대통령의 정치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퍼뜨린 말이었다는 것이다.


‘당당한 지도자 김영삼’에 따르면 “사춘기 시절, 영삼 군은 한때 작가가 되려고 꿈군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광수(李光洙)의 ‘흙’이나 ‘사랑’, 그리고 도스토에프스키의 ‘죄와 벌’이나 톨스토이의 ‘부활’ 등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물론 이런 얘기들을 정색을 하고 중언부언 하지는 않는다. 가볍게 터치를 하고 지나간다. 서울대출신이었기에 망정이지, 정말로 그것이 약점이었더라면 상도동 캠프 사람들이 책으로 수십 권은 만들어내 변명하고 홍보했을 사안이다.


냉정하게 보자. 김 대통령은 우리나라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기록을 갖고 있다. 그를 발탁한 사람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한 창랑 장택상과 유석 조병옥 박사였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철학박사인 조병옥이 김영삼 청년을 늘 가까이 두고 싶어 했을 때는 뭔가 있었지 않았겠는가. 학식이나 인품의 진실은 억지로 포장되지 않는다. 몇 마디 대화만으로도 드러난다.


‘인간 김영삼’에 의하면 당시 서울대에 우리나라 현대학계를 풍미한 석학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대학 1학년 때 그가 수강한 과목은 헌법, 정치학개론 등 정치학 관련 8개 과목이었다. 2~3학년 때에는 국가론, 비교정부론, 정치학강독, 의회제도론 등에 심취했다.

 

거기다 김 대통령의 졸업 논문은 ‘칸트에 관한 소고(小考)’였다. 철학을 전공과목으로 공부했다는 것만으로도 조병옥 박사가 측근으로 두고 싶어할만 했다. 연구자료가 풍부한 지금도 칸트는 철학과 학생들에게 난이도 높은 연구 대상으로 꼽힌다.


‘꼬마동지 대장동지’라는 책에 따르면 1980년대 초반 두 차례의 가택 연금 당시 김 대통령은 하루의 상당시간을  정원에서 산책을 하며 보내고, 다시 또 상당한 시간을 책을 읽고 붓글씨를 썼다고 한다. 김 대통령을 곁에서 지켜본 다른 측근들의 책에도 물론 이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김영삼 대통령이 그만큼 두뇌활동을 꾸준히 해왔다는 반증이다.


최근에 두뇌활동, 혹은 문화적인 활동은 무엇이었는지 김기수 비서실장에게 물어보았다.
“바쁘시지만 독서 등 읽을 것이 많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싶어 하시니 당연히 많이 읽으시지요.”


시력이 좋아 읽는 데 어려움이 없고 즐긴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김영삼 대통령이 건강하고, 총기가 있는 이유도 이런 데 있지 않나 싶다. 날마다 읽을거리를 읽어 두뇌를 회전시키고 적당히 운동을 하는 것은 기본적인 건강상식.

 

독서는 취미 서예는 조예

 

 

여기에 서예 같은 고상한 취미를 즐기는 것도 건강하게 장수하는 하나의 비결이 될 듯싶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대개 장수하는데, 대통령들 대부분이 붓글씨 취미가 있다. 나름대로 자기만의 필체를 가진 대통령도 여럿 있다.

 

김 대통령의 글씨도 물론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대통령의 필체를 웃는 말 삼아 ‘대도무문체’라고 하기도 한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글을 유독 많이 썼기 때문이다. 이 필체는 중국의 서예 대가들도 강인한 힘이 느껴진다고 인정할 정도.


퇴임 후인 2000년, 중국의 허난(河南)성 한원비림(翰園碑林)을 방문하여 장쩌민 주석과 회동을 하고, ‘동방문화 예술보고(東方文化 藝術寶庫)’란 휘호를 선물하여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한원비림측은 감사의 뜻으로 김 대통령의 흉상을 제작하여 보내오기도 했다.

 

이 흉상은 지금 거제도 생가에 전시되고 있다. 김기수 비서실장은 “이런 인연으로 중국의 서예 관련 손님이 오면 상도동을 반드시 들렀다 갑니다”라고 한다. 2005년 서울 서예비엔날레의 명예 대회장을 맡기도 하는 등 우리나라 서예 발전을 위해서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퇴임 후 재미있게 감상한 예술작품은 무엇이 있을까. 김기수 비서실장은 “얼른 생각나는 대로 꼽아본다면서 ‘버티칼 리미트’, ‘마마미아’. ‘서편제’ 등을 보신 것으로 기억됩니다. 하여간 시간이 나는 대로 감상하십니다”라고 했다. 일정정도 비용이 들어가지만 영화나 공연예술 감상도 노년세대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필요한 일인 듯 싶다.


운동 좋아하는 김영삼 대통령이므로 기질적으로 승부욕도 있다. 어느 초등학교에 일일교사로 참석해서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고 하여 한때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러니 김 대통령 연배의 노년세대라면 흔히 즐기는 고스톱 같은 화투놀이나 장기·바둑을 즐길까?


“안타깝게도 상도동에는 그런 잡기가 없습니다.”

김기수 비서실장은 선을 그었다. 대통령 스스로도 하지 않지만, 상도동의 스텝들도 화투나 당구, 바둑, 장기 같이 자잘한 승부가 오가는 잡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두 사람이 모이면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셋이나 다섯이 모이면 둘러앉아 화투를 펼치는 우리나라 보통사람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김기수 비서실장은 “물론, 각하께서도 젊어서는 장기도 두고 바둑도 잘 두셨답니다. 그러나 큰일 할 사람이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끊으셨습니다.”고 말했다. “유머나 농담도 아주 좋아하십니다. 배드민턴을 치거나 산에 다니면서 화기애애하게 웃으시는 기회도 많지요.”
잘 웃는 것도 김영삼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 중의 하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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