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칼럼] ‘감사의 분량만큼 행복이 비례한다’
[초대칼럼] ‘감사의 분량만큼 행복이 비례한다’
  • 관리자
  • 승인 2006.09.0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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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 화가 밀레의 대표작인 ‘만종과 이삭줍기’는 자연이 주는 은혜와 일상의 삶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밀레의 이 작품은 자연의 섭리에 대한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고마움을 한 농부가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면서 자연과 수확에 대한 감사를 땅위에서 머리숙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고 행복을 부른다. 스위스 철학자 칼리 힐티(Karl Hilty)는 ‘행복론’에서 행복의 첫째 조건으로 감사를 뽑았다. 감사하면 기쁨이 넘치고 젊어지고 삶의 질이 향상 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감사의 깊이에 달려있다는 의미다.


감사란 이 세상에 생명체로 태어난 본질적인 고마움에서부터 일상의 삶의 일까지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사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생명이 다할 때까지 수많은 은혜를 입고 살아간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좋은 것은 감사하는 마음의 바탕위에 마음의 편안함을 얻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곳에 사랑이 샘솟고 화목의 꽃 피는 이치와 같다.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하나님을 구주로 섬긴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부모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인간답게 사는 길을 걸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감사하기 위해서는 우선 욕심과 탐욕을 버려야 한다.


욕심과 탐욕에 사로잡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누구인가? 바로 나이다. 지금부터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덕으로 삼고 행하는 삶이 되어야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의 에덴동산을 만들 수 있다.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싹트는 날이야말로 세상과 이웃에 대해 머리를 숙이는 날이 될 것이다.

 

자연이 준 은혜에 감사하고, 자연의 섭리에 머리를 숙이고, 일상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인간이 쓰는 말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귀한 말은 ‘감사’라는 말이다. 감사가 있는 곳에 인정이 있고, 웃음이 있고, 사랑이 있고, 내면의 평화가 있고, 소망이 있고, 봉사가 있고,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다. 감사는 메마른 인간생활에 살맛을 주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사람들 중에는 일상의 삶이 행복한 사람도 있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감격은 더욱 감격적이다. 왜 그럴까? 예를 들어 건강한 사람은 건강에 대한 감사를 모르지만 정작 병들었을 때 건강의 고마움을 느낀다.

 

낮에는 촛불의 고마움을 모르지만 캄캄한 밤에는 촛불의 환함을 느낄 수가 있다. 즉 극한(極限)의 어려움 속에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 감격이 더욱 빛을 발한다는 진리다.


행복은 내면에서 나온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내면의 성찰 속에서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고 한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이유나 존재 이유를 알고 ‘사랑과 은혜와 감사의 법칙’으로 인간답게 사는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웃을 일이 많지 않더라도 희망을 꿈꾸며 감사한 일을 마음산책 하다보면 행복의 봇물이 밀려올 것을 확신한다. ‘감사의 분량만큼 행복이 비례한다’는 간디의 말처럼, 일상의 삶에서 매사에 감사를 표하는 행동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만이 삶의 질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정구영 밝은빛웃음치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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