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의 선비론] 선비의 현대적 9사(思)와 36도(道)
[이동희의 선비론] 선비의 현대적 9사(思)와 36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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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9.0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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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마다 위대한 스승이 강조한 정신은 달랐다. 퇴계 선생은 예(禮)를, 율곡(栗谷)은 성(誠)을 따졌다.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시대가 혼란할 때 우암 송시열(宋時烈)은 지(直)를 으뜸으로 여겼다.

 

그래서 선비는 언제나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성근시보(誠勤是寶)의 정신으로 극기복례(克己復禮)함을 선비의 도(道)로 여겨 왔다.


지난 호에서 선비의 36도 가운데 15개의 도를 약술했다. 이번 호에는 16도부터 36도를 살펴본다.


열여섯, 선비는 염치(廉恥)를 중히 여긴다. 함량미달(含量未達)의 지도자는 안 된다.

 

열일곱, 선비는 언제나 명분(名分)을 따져 행동한다. 현대에도 명분은 실리보다도 중요하다.

 

열여덟, 성실(誠實)을 첫째 덕목으로 삼는다. 성근시보(誠勤是寶)의 윤리성을 존중해야 한다.

 

열아홉,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는다. 언제나 자기 주관으로 신중하게 행동한다.


스물, 부모에게 효도는 모든 행실의 근본이다.

 

스물하나, 내 마음을 미뤄 남을 헤아린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줄 알아야 한다.

 

스물둘, 부모의 원수는 끝까지 갚는다. 부모의 한(恨)은 좋게 풀어 드리자.

 

스물셋, 조상(祖上)을 숭배한다. 우리의 뿌리를 알고 예(禮)로써 자랑스럽게 날개를 달자.

 

스물넷, 일가친척을 극진히 위한다. 우리의 가족주의는 세계에서도 드문 경우다. 그 속에 행복이 있다.

 

스물다섯, 사랑은 가까운 사람부터 단계적으로 베푼다. 이웃사촌도 중요하다.

 

스물여섯, 전통(傳統)을 중히 여긴다. 이념과 냉전의 시대는 끝났다. 전통과 문화의 시대가 왔다.

 

스물일곱,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서 소세(梳洗)하고 의관을 정제하고 한 가지를 해 낸다. 선비의 기상 시간은 인시(寅時), 새벽 4시다. 예를 들면 출근하기 전에 남 몰래 중국어 공부하고 나간다.

 

스물여덟, 집안에서 글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 자녀교육은 선비가정의 생명 줄이다.

 

스물아홉, 천한 직업에 종사하지 않는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사회에 해가되는 일은 삼가라.

 

서른, 가난을 싫어하지 않는다. 가난해도 선비의 삶은 멋있다. 무소유(無所有)의 인생관을 말한다.

 

서른하나, 장사를 하지 않는다. 현대적 기업을 해도 선비 스타일로 공익 속에서 실리를 얻어야 한다.

 

서른 둘, 자기 어려움을 남에게 호소하지 않는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

 

서른 셋, 사랑에서 거처(居處)하고, 안방 출입을 자제한다. 다남녀귀복(多男女貴福)은 가능하다.

 

서른 넷, 감정의 표현에 절도(節度)가 있어야 한다. 선비의 사유(四維), 예(禮), 의(義), 염(廉), 치(恥)를 강조한다.

 

서른다섯, 아무리 화가 나도 아내를 때리지 않는다. 선비는 여권존중과 숙부인(淑夫人)의 권위를 높여줘야 한다.

 

서른여섯, 선비는 도박을 하지 않는다. 주색잡기(酒色雜技)를 멀리 한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의 지도층에 있었던 선비의 구사(九思)와 36도(道)는 옛날 전제군주시대의 낡은 규범이 아니다.

 

바로 오늘날 아니, 21세기에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이러한 규범은 일찍이 우리 몸에 깊숙하게 배어 있는 덕목이다.

 

그것을 오늘날에 맞게 표출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민족의 정신이고 선비의 매너가 되는 것이다. 우리 368 노년시대의 빛나는 동지여! 자신 있게 행동 규범으로 자손들을 교육하자.

이동희 오성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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