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 회장
[남기고 싶은 이야기] 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 회장
  • 관리자
  • 승인 2006.09.02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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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People Technology)의 明匠(명장)이 되자

70세 어느 청년의 꿈 ①

미켈란젤로가 일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조각가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로마의 바티칸궁전을 방문했을 때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들을 보고 감동했던 것은 필자만의 체험은 아니었으리라.


누군가가 미켈란젤로에게 물었다. 어떻게 베드로과 다윗 상과 같은 불후의 조각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느냐고.

 

미켈란젤로는 답했다. “조각하고자 하는 대리석 속에 이미 베드로와 다윗의 상이 각각 존재하고 있다는 상상을하고 필요 없는 부분 즉, 베드로상과 다윗상을 가리고 있는 부분들을 쪼아낸 뒤 원래 존재하고 있던 것을 꺼내었을 뿐이다.”


이미 존재하고, 앞으로 영원히 존재할 조각상이 누군가에 의해 드러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을 자기가 도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종교지도자나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기를 찾는 ‘순례자’라고 한다. 1972년 처음으로 로마에 가서 바티칸궁전을 찾아가 몇 단계의 관문을 거쳐 맨 위층까지 올랐던 기억이 난다. 그 때 필자는 30대의 청년이었음에도 정상까지 오르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다른 곳도 돌아봐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와 함께 힘든 계단을 오르고 있던 독일인 70대 할머니들에게 자극을 받아 다행히도 정상까지 오르게 됐다.

 

그 때 정상까지 올라왔다는 성취감에 도취돼 맨 꼭대기 계단에 이어져 있는 하얀 벽에 그곳을 방문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의 이름 ‘장만기’를 썼다.

 

낙서를 했던 부끄러운 기억을 떠오르면서 70세가 넘은 할머니들이 그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자기를 찾고자 하는 순례자의 정신이 아니었을까 회상한다.


우리 인간은 저마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서 태어났는가?’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고민한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살아야 할 것인가, 죽어야 할 것인가’라는 인생에 대한 의문을 토로하듯 삶에 관한 많은 의문을 갖고 살아간다.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자기가 마땅히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줄 사람은 자기밖에 없음을, 인생을 깊이 터득한 현인들은 말하고 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란 말이 있듯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동행자들 즉, 부모형제, 친구, 아내와 남편, 동업자와 경쟁자, 적과 동지들이 있지만 언젠가는 헤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끝까지 헤어질 수 없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자기의 진실한 인생문제에 정답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오직 자기밖에 없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자기와 꼭 같은 사람은 아무도 태어나지 않았고 앞으로 영원히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이 오늘을 살아가면서 부딪치며 깨닫는 많은 인생의 비극들은 옳지 않은 방법으로 자기를 찾으려는 데서 일어난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자기의 존재 밖에서 자기를 찾으려는 데서 인생의 불행은 일어난다.

 

권력, 부, 명예, 유행, 쾌락 등 대중적 가치들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체험하듯 자기 밖의 외형적 가치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없어지거나 변질되고 마침내는 그것을 소유하고 누리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어 버린다.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가짜의 자신을 더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한다. 더 큰 권력, 더 많은 재산, 더 유명한 자기 이름, 더 화려한 유행, 더 짜릿한 쾌락을 추구하며 경쟁을 거듭한다. 끝내는 정상을 잃고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조각예술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속에 묻혀 있었던 베드로상과 다윗상을 조각예술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구현해냈듯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존재 속에 깊이 묻혀있는 자화상을 생생하게 구현해내야 한다. 이것이 자기실현이라는 인생의 최고 가치를 찾는 길이다.


성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권력, 부, 명예, 유행, 쾌락 등 세속적 가치들을 통틀어 말하는 ‘온 천하’를 얻어 누렸던 솔로몬이 “모든 것이 헛되고 무가치하며 의미가 없으니 아무 것도 소중한 것이 없구나.

 

사람이 평생 동안 수고하며 얻은 것이 무엇인가”라고 그가 추구해 온 세속적인 삶의 가치들이 허무함을 고백하고 있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 부처님은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왕국에서 누릴 수 있었던 모든 세속적 가치들을 내던지고 구도의 길을 찾아 출가했다. 보리수나무 밑에 찾아가 6년이란 세월을 고행하면서 양파껍질을 벗겨내듯 허무한 인생욕망의 껍질들을 벗기고 벗기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았다.

 

진정한 자신을 찾은(見性)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온 우주 속에 ‘나’보다 더 귀한 존재는 없다는 진리를 찾는 기쁨의 세계(法悅)를 찾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담겨 있다. 기독교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예수의 탄생과 생애 그리고 죽음과 부활이 보여주는 ‘인간의 가치’는 참으로 존귀한 것이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 도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나’를 따르려는 자는 마땅히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부모나 형제, 아내나 남편 그리고 자녀 등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한다.


예수님이 말하는 ‘나’는 누구일까. 현재 지구 위에 살고 있는 65억의 인구는 말할 것도 없고, 인류역사에 등장한 억조창생 가운데 똑같은 사람이 단 하나도 없는 존엄한 ‘나’가 창조주의 뜻을 따라(順天) ‘나’의 근원을 향해 육체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정진해 나아갈 때 진정한 자신의 가치실현이라는 구도의 길을 걷게 된다. 이른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길이다.


자기를 버려야 진정한 자신을 만난다는 말이 있다.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하고 사는 사람이 참 생명을 얻게 된다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세속적 가치에 노예가 된 자신을 버리지 않고는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나’라는 생명의 가치를 살릴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침울한 세계에 광명의 빛줄기와 같은 화젯거리가 있다. 세계의 최고부자 빌게이츠와 워렌 버핏의 기부 이야기가 암울하기 그지없는 인류의 미래를 환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300억 달러에 가까운 자신의 재산을 인류 빈곤과 질병을 퇴치하는데 쓰고자 만든 미린다·빌게이츠 재단에 제2의 세계최고 부자인 워렌 버핏이 380억 달러의 개인 재산을 자선사업기관에 헌납하고자 결단했고 이 가운데 320억불을 빌게이츠 재단에 헌납했다.

 

최강국인 미국과 세계의 앞날을 비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빌게이츠와 버핏 같은 위대한 인물들을 키워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미국과 세계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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