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김영삼 前대통령 ⑤
[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김영삼 前대통령 ⑤
  • 관리자
  • 승인 2006.09.0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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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산테러 위협 불구, 웃음소재가 된 친근한 대통령

본지는 우리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대개 장수하는 데 주목하여 은퇴한 노인으로서 겪는 일상의 작은 행복과 세월의 무상함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지면을 마련했습니다. 공과 과가 있겠으나 어차피 전직 대통령들은 우리 역사입니다.
본지는 정치적 평가나 정파적 편향성을 지양하고 전직들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선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간적인 관심사와 삶의 즐거움, 건강생활, 원로로서의 자리 등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지는 나라와 민족에게 불의한 일이나 좋지 않은 역사에 대한 평가와 의의에 대해서는 다음 기획시리즈로 미뤄두고, 기왕의 기획시리즈를 계속하며 ①이승만 ②윤보선 ③박정희 ④전두환 ⑤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여섯 번째로 김영삼 전 대통령 편을 연속 게재합니다. 백세시대 독자 여러분의 ‘건강 노년·문화 노년’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병로 대기자(작가)〉
 ※사진출처:국가기록원


국민을 웃음 짓게 하기로 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구봉서와 같은 성격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3년 5월에 출간된 ‘YS는 못 말려’(장덕균 저)를 보면 아무래도 그 성격이 구봉서에 가깝다.


책에 나오는 개그 한 토막. 지방 출장을 떠났던 YS가 청학동을 방문했다. 청학동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비서관이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YS는 더 있다가 가자고 한다. 무슨 일이 있냐고 하니 YS 왈 “TV광고에서 보니까 여기 야쿠르트 아줌마가 오던데 있다가 좀 보고 가자. 그 아줌마 정말 미인이다. 올 시간이 됐을 낀데…”


이 대사와 함께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 김영삼 대통령을 상상하면 할수록 웃음이 난다. 재임중인 대통령이 이렇게 유머, 혹은 개그의 대상으로 희화화 된 것은 보통 사람은 허용하기 힘든 용단이다.


김기수 비서실장은 “어른이 농담 좋아하시고 대통령이라는 권위의식 없이 주민들과 잘 어울리는 것도 건강에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요즘도 상도동 주민들로 구성된 배드민턴 클럽에 가끔 들러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웃음이 나는 이야기를 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배드민턴을 나가면 보통 30분 정도 시합을 한다.

 

시합을 기다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경우 어떻게 지내는지 물으며 순간순간 애드립으로 사람들을 웃게 한다고 한다.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소탈하면서 유머러스한 것. 어느 전직 대통령보다 행복하게 퇴임 후를 보내는 것 같다는 것이 김기수 비서실장의 얘기다.

 

동네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운동

배드민턴 클럽 사람들을 상도동 집으로 불러 음식을 대접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경우도 많다. 김 비서실장은 “배드민턴클럽 여성 회원들과도 재미있게 지내십니다”며, “따님보다 나이가 어리니 애기엄마라는 식으로 부르지 말고 딸처럼 이름을 부르고 편하게 하시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비서들이나 측근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김 대통령을 보필한 사람들이나 인간관계를 맺었던 인사들은 한결같이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호의적인 평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한다. 온몸을 던져 김 대통령을 지키려는 이른바 ‘돌쇠’ 같은 충성파도 많다.

 

역대 대통령, 혹은 정치 지도자들 중에서 이점은 가장 복 받은 케이스에 해당한다. 동네 사람들에게 그렇듯이 비서나 측근들에 대한 오픈 마인드, 유머러스한 면이 이런 결과를 낳게 한 듯하다.


김기수 비서실장은 “어른이 곤경에 처할 정도로 큰 실수를 했을 때는 물론 불같이 화를 내십니다. 나한테도 ‘기수, 한강물에 빠져라!’고 호통 호통을 치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음날 가서 보면, ‘왔나?’하고 말하십니다.”

 

다시는 실수하지 말아야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하는 리더십이 있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정직할 것을 휘하 측근이나 비서들에게 요구한다. 보고해야 할 것을 시기를 놓쳤거나 실수한 것을 속이거나 감추는 경우 엄하게 꾸짖는다.

 

“‘깜박 잊고 지금 말씀드립니다’라고 하면, ‘내일 이야기하지 그래’하며 농담식으로 용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라고 김 실장은 경험을 이야기했다. 같은 차를 타고 가면서 졸다가 김 대통령이 지시하는 것을 못 들어도 인도 숲에서 나왔냐며 웃고 넘어가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 대통령의 과거 정치역정을 보면 이렇게 낙천적이고 열린 마음을 갖게 된 것이 여간 무모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김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생활을 오래 했으나 투옥된 적은 없다. 2차례에 걸쳐 가택연금을 당한 것이 인신구속의 전부였다고 해도 크게 그르지 않다. 하지만 어두운 권위주의 시절, 야당 지도자였으니 갇혀 있거나, 사형선고를 받은 것 못지않은 위험하고 두려운 상황이 많았다.


테러 위협은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 실제로 1969년 신민당 원내총무시절 초산 테러를 당한 적이 있었다. 김기수 비서실장은 “당시 고흥문 사무총장이 ‘YS 배때기에는 철판을 깔았나?’라고 하는 김형욱 정보부장 얘기를 어디서 듣고 귀뜸해 준 적이 있다고 합니다”라고 당시 테러 위협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전했다. 그날로 되돌아가보자.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는 상도동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밤 아홉시가 넘어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으니 열시 무렵이었다. 상도동 집으로 가는 골목길은 기역자로 두 번 꺾인다. 두 번째 꺾이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내 셋이 앉아 있다가, 차가 들어서자 갑자기 두 놈이 싸움을 시작했다.

 

키가 작은 사내가 키가 커다란 놈을 개 패듯이 패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싸움 구경 중에서도 작은 놈이 큰 놈을 때리는 것은 흥미 만점. 저절로 차가 멈춰 섰다. 그런데 그 셋 중 한 놈이 차로 슬며시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차문이 덜컥 소리가 나서 보니 문을 잡고 열려고 했다.

 

총을 맞고도 살아남아

 

차에 다가온 사내는 손에 뭔가를 쥐고 있었다. 김 대통령은 그것이 테러를 위한 도구라는 것을 직감했다. “용수(운전기사)야, 폭탄이다”라고 소리쳤다. 다가온 놈이 다급한지 초산이 든 유리병을 차를 향해 집어던졌다.

 

운전기사가 싸우던 사람들을 깔아뭉갤 기세로 차를 급발진했다. 싸우던 자들이 물러서고 동네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중에 알아보니 테러범들이 던진 초산은 시멘트가 폭 파일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김기수 비서실장은 “그때 어른은 차에 오르면 문을 잠그는 습관이 있었답니다. 미국 국무성에 갔을 때 의전팀이 그러는 것을 보고 습관화 했다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테러범이나 그 배후에서 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었지만, 차 타는 습관까지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테러범들이 제미니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이 훗날 이부영(열린우리당 상임고문)기자의 특종보도로 밝혀졌다.


사실 청년시절의 김 대통령은 사선을 넘은 적도 있었다. ‘인간 김영삼’ 책에 의하면, 6.25 때 공산군 보초에게 살해당하는 직전까지 몰렸다.


“김영삼 청년은 총부리를 들이댄 공산군 보초가 시키는 대로 시체더미 곁에 서 있었다. 그러자 공산군 보초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방아쇠를 당겼고, 방아쇠를 당겼다고 느낀 간발의 그 순간 김영삼 청년은 시체더미 위로 냅다 몸을 날렸다…중략… 김영삼 청년은 아찔했던 정신을 가다듬어 그제서야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총을 맞고서도 이렇게 살아 있다니, 그것은 기적 중에도 이만저만한 기적이 아니었다.”


그런가 하면 김대통령 스스로 죽음을 각오하고 단식을 하기도 했다. 1983년 5.18을 기해 무려 23일 동안 단식을 하며 민주화를 요구하고 5.18의 비극을 세계에 알렸다. 김 비서실장은 “어른은 내일 당장 죽더라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결기, 신념으로 싸우십니다. 그래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는 말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방북 계획을 짤 때도 김 대통령은 누구보다 위험 앞에 초연했다. 철의 장막, 혹은 동토의 땅이라는 북한에 한국의 최고 지도자가 방문하는 만큼 바늘 끝만큼이라도 위험요소가 있으면 조심해야 할 상황이었다.

 

김 비서실장은 “이후락 전 정보부장이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할 때, 염산을 소지했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도 그런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웠습니다”고 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무슨 걱정을 그리 하느냐’고 했다고 한다.

 

우리 기자들은 물론이고 세계의 기자들이 다 보고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것이었다. 위험 요소가 많은 인생을 살았으면서도 이렇게 낙천적인 발상을 하는 것이 신기해 보인다. 방북 2주 전 김주석으로 방북이 무산된 것은 김 대통령 일생에서 아쉬움일 듯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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