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壽 & 白首 - 늙은이가 주책이라고?
白壽 & 白首 - 늙은이가 주책이라고?
  • super
  • 승인 2006.08.17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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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아 사랑할 때 힘이 난다!

세상의 대가들이 거의 노인이 된다. 인류가 소홀히 할 수 없는 자산이다. 이에 「노년시대」는 ‘노인과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취지하에 성의학, 문화예술, 철학, 정치, 경제, 과학 등 제 분야의 노인 관련 뒷이야기들과 가십, 필자 고유의 해석 등 젊은이와 함께 생각해보는 장으로 ‘백수(白壽)&백수(白首)’ 칼럼을 싣는다.

낭만이라 할까. 난봉이라 할까. 흑백영화 ‘희랍인 조르바’에 나오는 안소니 퀸은 딱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희끗희끗한 수염에 해수를 앓는 것 같은 웃음소리로 덜렁대며 나대는 품이 딱 낭만이거나 난봉이다.

 

젊든 늙든 치마만 둘렀다면 가리지 않고 덤벼들면서, “하느님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 그것은 여자가 침대로 이끄는데 남자가 도망가는 것입니다” 라고 하는 사람이다.

원작인 소설에서보다 영화의 조르바(안소니 퀸)가 젊고 멋져 보이는 것이 흠이지만, 역시 ‘늙은’ 노동자인 그는 그렇게 뻔뻔스럽게 둘러대도 미워할 수 없는 협잡꾼이자 주책바가지다.

 
삼국유사 <수로부인> 조에 보면, 조르바 만큼 재미있지는 않으나 제법 근사한 노인 얘기가 있다. 신라 성덕왕 때의 일인데, 소를 끌고 가던 한 노인이 강릉태수 순정공의 아내 되는 수로부인에게 유혹적인 “헌화가(獻花歌)”를 지어 노래하며 꽃을 꺾어 바쳤다는 얘기다.

紫布岩乎(자포암호) 執音乎手母牛放敎遣(집음호수모우방교견) 吾兮不喩慙 兮伊賜等 (오혜불유참 혜이사등) 花 兮折叱可獻乎理音如 (화혜절질가헌호리음여).

양주동은 이것을 “딛배 바회 가에 자바온손 얌쇼 노히시고 나를 안디 븟하리샤단 곶을 것가 받자보리이다”라고 풀어냈다. 해석 여하에 따라서는 야한 성애 노래 같기도 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다시 꾸며 보자. 이영애나 이효리 같은 예쁜 젊은 여인이 남편과 설악산 등반을 하다 절벽 위에 사람을 현혹시키는 예쁜 꽃이 피어있는 것을 본다. 여인은 평소 꽃을 죽고 못 살게 좋아하여 남편에게 그것을 따다 달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오를 수 없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꽃이 피어있다. 아름다운 부인은 그 꽃이 탐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꽃을 꺾어다 준다면 뽀뽀라도 해주겠다고 투덜거린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그 소리를 듣고, “나같이 늙은이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 꽃을 꺾어다 바치겠소”라고 말한다.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이 귀신같이 꽃을 꺾어다 바치고 기회를 얻는다.


최근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한 실버타운에서 걸음을 걷기도 힘든 95세쯤 되는 노인과 휠체어에 앉아 지내는 78세 되는 할머니가 잠시 사라졌다. 타운 내 간호사들과 스탭들이 찾느라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이 실버타운의 휴게실에는 맘에 맞는 노인들끼리 언제든 스킨십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는데, 이 두 노인이 거기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대체 어떻게 95세 할아버지가 휠체어 할머니를 침대까지 들어다 옮겼는지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라고 한다. 시난고난 아프다고 늘 성화이던 휠체어 할머니는 그날 이후 아프다는 불평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헌화가의 소를 끄는 백수노인이 절벽의 꽃을 꺾은 것이 전설 같은 얘기만은 아닌 것 같다. 성애와 낭만적인 상황에 젊은이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는 모습이 그리스인 조라바보다 점잖고 멋지다.


<수로부인>조의 노인 얘기는 후일담이 더 있다.


 

현대적으로 이를 좀 더 번안해 보자.


 

노인이 꺾어준 꽃을 들고 돌아가던 여인이 이번에는 풍광 좋은 곳에 세워진 별장 근처를 지난다. 여기서 여인은 마침 별장에 와 쉬고 있던 서울의 별장주인의 유혹이 눈에 띈다.

 

여인은 쉬고 싶기도 하고 별장주인의 인품에 매력을 느껴 사랑에 빠져 버린다. 남편은 아내를 강탈당한 것 같이 되고 만다. 졸지에 부인을 잃어버린 남편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백수 노인이 사정을 알게 된다.


여기서 노인이 지혜를 빌려준다.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는 우리 토종 격언이 이때 나온다. 이에 남편이 사람들을 모아 별장 문 앞에서 몽둥이로 땅을 치면서, “내 마누라 돌리도!”라고 시위를 한다.


이것이 “龜乎龜乎出水路(구호구호출수로) 掠人婦女罪何極(약인부녀죄하극) 汝若悖逆不出獻(여약패역불출헌) 入網捕掠燔之喫(입망포략번지끽)”라고 노래 불리는 해가(海歌)다.


거북이에게 머리를 내놓으라며 노래 부르는 김수로왕 탄생설화인 구지가(龜旨歌: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와 가사가 거의 똑같다. 납치한 수로부인을 돌려보내라는 내용인 것도 같지만, 역시 남성기를 묘사하는 음사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노래 때문에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이 탄생하는 것으로 봐도 그렇다. 즉, 남성기의 성능력이 회복되어 자식을 수정하게 되고, 마침내 6개의 알을 낳을 수 있었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서의 노인을 주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기 보다는 당시 노인의 지위가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노인임에도 낭만적인 상황, 즉 여성과의 성애를 다투는 경쟁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지혜로운 선지자와 같은 역할을 맡기까지 했다. 수명이 그리 길지 않던 그 때에도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했다.


그 연장선상에 놓고 볼 수 있는 최근의 인터넷 유머가 있다.


아흔 아홉 살 된 노인의 생일잔치가 끝날 무렵이었다. 한 젊은 축하객이 노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년 백수 잔치에도 제가 꼭 다시 뵐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딴에는 노인에게 오래 살라고 좋은 뜻으로 인사를 한 것이었다.


그러자, “자네 어디 아픈 데라도 있었나? 내년에 또 못 올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노인은 이렇게 받아쳤다. 젊은이의 생각과 노인의 생각은 이렇게 다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조화롭게 어울려야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고령화에 대한 대책으로서만이 아니라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젊은 디지털 감각에 노인들과 기성세대의 아날로그적 경험을 접목하면 미래가 지금보다 더 밝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같은 작가가 나와 조르바 보다 미워할 수 없게 짓궂고 적극적인 노인을 주인공으로 다룬 드라마나 소설이 하나 나올 때쯤 됐을 법도 하다. 정만서나 봉이 김선달, 이춘풍을 닮은 우리 노인들을 발굴하는 즐거움이 얼마나 클까.

<박병로 작가 약력>
전북고창 출생. 소설가. 중편소설 ‘뱅에’로 1989년 계간 <세계의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장편소설 ‘님이 오시는가’(책세상), ‘숨어있는 神’(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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