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밖에 갈 곳이 없는 노인들
공원 밖에 갈 곳이 없는 노인들
  • 관리자
  • 승인 2006.09.0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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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서울 종로의 탑골공원(옛 파고다공원)과 종묘공원을 찾아간 것은 지난 8월 초순 어느 날 오후 2시 경이었다.

 

벌써부터 한번 가 본다는 것이 오늘, 내일 하고 시일을 끌다가 장마철까지 겹쳐 차일피일 늦어진 탓에 이날은 만사 제쳐놓고 가보기로 전날부터 마음을 먹었다.

 

필자가 노인문제에 관해 칼럼을 쓰고 있는 것을 아는 어떤 친구가 한국의 노인문제를 피부로 느끼려면 노인들이 많이 오는 탑골공원에 한 번 가보라고 강력히 권했기 때문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필자가 탑골공원을 찾은 날은 공교롭게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탑골공원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으며, 그 곳에 와있는 노인들 역시 그 수가 많지 않았다.

 

노인들은 공원 안 이 곳, 저 곳의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혼자서 팔각정 바닥에 드러누워 쉬고 있거나, 공원 안을 거닐고 있었다.

 

필자의 친구는 3000~4000명의 노인들이 이 곳에 몰려든다고 했지만, 필자가 세어보니 10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역시 소문은 부정확한 것이로구나 하고 씁쓸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관리사무실을 찾아가서 취재를 했다. 관리사무실 직원은 하루 평균 입장객 수는 3000명 정도로 대부분 노인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필자 친구는 하루 평균 입장객수를 말한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탑골공원을 나오면서 벤치에 앉아있는 한 노인에게 “오늘은 공원에 온 어르신들이 많지 않네요?” 하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 대신 근처의 종묘공원에 가보라고 했다.

 

필자는 종묘공원에 가기 전 탑골공원 부근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아주 이색적인 풍경에 약간 놀랐다. 낙원동으로 이어지는 탑골공원 옆 골목길에 빽빽이 들어선 대중식당들의 식사 값이 하나같이 평균 2000원 정도였다. 돈 없는 가난한 노인들을 주된 고객으로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내에서도 재래시장 골목에 있는 대중식당의 식사 값은 상당히 싸지만 그래도 탑골공원 부근보다는 비싼 편이다. 그런데 이 곳의 물가 중 아주 인상적인 것은 커피 자판기에서 파는 100원짜리 커피였다.

 

필자는 불볕더위 때문에 땀을 많이 흘려 잔뜩 갈증이 생긴 터여서 커피 한잔을 뽑아 마셔 보았는데, 그 맛은 지하철역 구내 자판기에서 파는 400원짜리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그래서 도대체 누가 이런 저가의 커피 자판기를 운영하는가를 알아보았더니 운영자는 바로 그 자판기 옆에 위치한 고물가게라고 했다.


필자는 탑골공원 주변 구경을 대충 마치고 인근의 종묘공원에 갔다. 그런데 이곳은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탑골공원 보다 훨씬 넓은 면적인데도 노인들로 가득 찼다.

 

자세히 살펴보니 탑골공원에 비해 나무 그늘이 많아 노인들이 대거 모여 든 것 같다. 공원 안에는 노인들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노점도 있어, 종묘공원은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와 비슷한 풍경이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모 기독교 선교단체에서 200여명의 노인들을 모아 놓고 선교회를 열고 있었다. 여자전도사가 열심히 강연을 하고 있었다.

 

필자는 바로 공원관리사무실로 가서 현재의 입장객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간부인 듯한 직원이 약 3000여명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매일 평균 입장객 수는 얼마나 되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는 1만명은 될 것이라면서 “어르신네들이 많이 오시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공원 관리하느라 죽을 지경입니다”라고 했다.

 

그 순간 어떤 노인이 사무실로 들어와 관리실 직원에게 “마이크 소리가 시끄러우니 당장 기독교 선교회를 중지시키라”고 소리를 질렀다.

 

직원의 대답은 간단했다. “저것도 문화활동이니 우리는 중지시킬 수가 없습니다. 듣기 싫으면 직접 이야기 하세요”라는 것이다.


탑골공원과 종묘공원에 왜 이처럼 많은 노인들이 찾아오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갈 데가 없는 것이다. 노인들은 여기로 나오면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근의 무료급식소에서 점심도 제공받는다.

 

조계사에서 운영하는 경운동 서울노인복지센터를 비롯해 많은 공공기관 및 민간단체들이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무료급식소에는 많은 자선단체 또는 개인이 자진해서 찾아와 노인들을 위한 급식비를 기부한다.


문제는 이들 노인들이 경제적 여유가 없어 피서여행은 고사하고, 시원하게 냉방이 되는 집 부근의 영화관 같은 곳에서도 여가를 즐길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일부 부유층 노인들은 알라스카로, 북해도로, 유럽으로 피서여행을 떠나지만 그런 이야기는 이들과는 무관하다.

 

지난 5월에 공포된 ‘문화훈장’ 관련법에는 불우한 환경의 여성, 노약자, 고아, 독거노인, 혼혈인, 소년소녀 가장 등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조건 속에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생활수준을 개선하고 삶의 품위를 높이기 위한 ‘문화복지’가 보장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 이들 가난한 노인들에게도 ‘문화복지’가 보장될 것인가.

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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