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나이 49세’ 고령화 가족이 사는 법
‘평균나이 49세’ 고령화 가족이 사는 법
  • 연합
  • 승인 2010.02.2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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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소설 ‘고령화 가족’ 출간

기존 소설의 문법을 보기 좋게 무너뜨린 낯선 소설 ‘고래’로 문단 안팎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던 소설가 천명관(46) 씨가 6년 만에 두 번째 장편소설 ‘고령화 가족’(문학동네 펴냄)을 들고 왔다.

‘고래’가 준 강렬한 이미지를 안고 있는 독자라면 ‘고령화 가족’이 다소 의외로 다가올 수 있다.

‘고래’가 장대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스케일 큰 소설이었다면 ‘고령화 가족’의 무대는 방 3개가 다닥다닥 들어차 있는 스물네 평 연립주택을 많이 벗어나지 않으며 ‘고래’가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면 ‘고령화 가족’은 징그럽도록 현실적이다.

그러나 독자들을 단숨에 휘어잡는 능수능란한 입담과 공들여 만든 흔적이 묻어나는 정교한 캐릭터는 여전하다.

소설의 화자는 데뷔 영화를 무참히 말아 먹고 빈털터리로 충무로의 낭인이 된 마흔여덟의 중년 남자다. 신용불량자가 된 지는 오래고 아내를 시작으로 주위 사람들도 모두 곁을 떠나 남은 것은 그야말로 늙은 몸뚱이뿐인 신세다.

낭떠러지에 몸을 날리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여길 즈음 엄마의 안부 전화가 걸려오고, 닭죽 먹으러 오라는 무심한 제안에 화자는 덜컥 ‘엄마의 집’으로 들어가 살기로 한다.

다 늙어 홀어머니의 품으로 슬그머니 기어들어간 자식이 그만은 아니었다.

전과 5범의 백수 형 ‘오함마’가 이미 3년째 집에 “눌러붙어” 있는 중이었고 여동생 미연도 바람 피우다 걸려 두 번째 이혼을 한 후 사춘기 딸 민경까지 데리고 들어온다.

작가는 늙은 자식들을 거둬 먹이며 알 수 없는 활기까지 띠게 된 일흔의 엄마를 중심으로 재구성된 평균 나이 사십구 세의 ‘고령화 가족’이 ‘복닥복닥’ 살아가는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정작 말해져야할 바는 이야기 속에 침잠되는 법”이라며 잘 짜여진 이야기 한 편으로 구구절절한 메시지를 대신하는 작가는 이 특별한 가족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넌지시 묻고 있다.

가족이란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힘이 쭉 빠지게 만드는, 평생 달고 사는 오래된 지병 같은 거”(141쪽)라고 여기던 화자는 배 다르고, 씨 다른 가족들과 부대끼며 사는 동안 그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그들은 나를 지지해줬지만 나는 고생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덕에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인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들을 무시하고 경멸했으며 그들을 부담스러워하기까지 했다. 나에 대한 기대가 부서져 산산조각 난 뒤에도 그들은 나를 버리지 않았고 나 자신이 나를 포기한 뒤에도 그들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253쪽)

작가는 “민족주의나 패거리주의에 대한 반성이 먼저 있어야할 것”이라는 단서를 붙이면서도 “가족주의라는 것이 촌스럽기도 하고 불합리한 점도 많지만 때로는 우리가 이 세계를 살아가고 견디는데 있어서 가족주의가 서구사회의 개인주의보다 더 유용한 방식이구나 느낄 때가 있다”고 말한다.

‘촌스럽지 않은 가족주의’에 대한 지향 덕분인지 소설은 입에 올리기만 해도 콧날이 시큰해진다는 ‘가족’이나 ‘엄마’를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도 끈적이지도, 식상하지도 않다.

시나리오 작가로 출발했던 작가는 지난해 희곡을 써서 ‘참치’라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고, 시나리오에 참여한 영화 ‘이웃집 남자’의 개봉도 앞두고 있다.

작가는 “이제는 나이로 보나 뭘로 보나 한눈을 팔면 안 되는 때라 소설에 집중할 생각”이라며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조금 스케일이 큰 장편소설을 집필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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