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김대중 前대통령 ①
[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김대중 前대통령 ①
  • 장한형
  • 승인 2006.09.04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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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보이는 언덕 위 아담한 기와집서 살고 싶은 꿈

본지는 우리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대개 장수하는 데 주목하여 은퇴한 노인으로서 겪는 일상의 작은 행복과 세월의 무상함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지면을 마련했습니다. 공과 과가 있겠으나 어차피 전직 대통령들은 우리 역사입니다.
본지는 정치적 평가나 정파적 편향성을 지양하고 전직들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선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간적인 관심사와 삶의 즐거움, 건강생활, 원로로서의 자리 등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지는 나라와 민족에게 불의한 일이나 좋지 않은 역사에 대한 평가와 의의에 대해서는 다음 기획시리즈로 미뤄두고, 기왕의 기획시리즈를 계속하며 ①이승만 ②윤보선 ③박정희 ④전두환 ⑤노태우 ⑥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일곱 번째로 김대중 전 대통령 편을 연속 게재합니다. 백세시대 독자 여러분의 ‘건강 노년·문화 노년’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병로 대기자(작가)〉
 ※사진출처:국가기록원


생존한 전직 대통령 중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가장 연장자다.

 

그러니 아무래도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건강 관련 뉴스가 많은 편이다.

 

최근의 근황 보도에 따르면 김 대통령은 여전히 건강하고, 전직으로서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8월 20일에는 ‘세계도서관정보대회’ 2006 서울대회(조직위원장 신기남)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했고, 21일부터는 휴양차 제주도를 방문하기도 했다.


민간단체 ‘한국애서가 클럽’이 제정한 제3회 애서가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독서를 많이 한 김 대통령이니 세계도서관정보대회 개막식 기조연설자로 적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애서가상 수상소감에서 “책을 읽고 싶어 차라리 다시 감옥에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는 말을 한 적도 있을 만큼 공부하고 책 읽는 대통령으로 정평이 났다.

 

게다가 김 대통령 재임 중에 우리나라가 ‘IT강국’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이번 도서관 대회에 우리나라 정보화산업 기술이 세계적으로 크게 홍보될 것이라고도 한다.


연합뉴스는 세계도서관정보대회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김 대통령이 “한국은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 있어서 세계의 선두대열에 서 있다”고 강조하고,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지적 저력과 교육전통, 민주주의를 쟁취해낸 국민적 힘이 한국사회의 역동적 전진을 이끌어 가고 있다”고 자부심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휴양을 위해 제주도를 방문하여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는 뉴스도 국민들과 함께 반갑게 접한다.

 

본 시리즈, 김영삼 대통령편 마지막회에서 필자는 김영삼 대통령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만으로도 국가적으로 이득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렇게 건강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의 가치가 있다.

 

다섯 번 죽을 고비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검색하면 생년월일이 1926년 1월 6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일본 NHK특별취재반이 구성한 인동출판사(1999년)의 ‘김대중 자서전’(역사와 함께 시대와 함께)에 따르면 양력으로 1924년 1월 6일에 태어났다고 한다.

 

 

올해 우리 나이로 81세이거나 83세가 되는 셈이다. 어느 쪽이 진실이냐의 문제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삶을 살고서도 81세(혹은 83세)인 지금까지 건강하게 활동한다는 것을 상기하고 싶은 것이다.


자서전이나 심층 취재한 책들에 따르면 김 대통령은 다섯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극심한 죽음의 공포,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를 겪었을 것을 생각하면 백수 이상 수를 해도 성에 차지 않을 것 같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쓴 것은 차치하고도 그 엄청난 스트레스를 이겨냈다는 것만으로도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할만하다. 그리고 그것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우리 국민과 역사 모두에게 복이다.


물론 김 대통령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을 심정적으로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도 한편에 있을 수 있다. 김 대통령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영웅적으로 그려질수록 반대쪽 당사자들에게는 상기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통령이 장수하여 동시대에 함께 숨쉬고 있기 때문에 그 반대쪽도 마음이 가벼운 측면이 있다. 반대를 했건 시비를 걸었건 간에 김대중 대통령이 뜻을 이루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함께 역사를 만든 사람으로서 뜻 깊은 역사에의 동참이다.

 

앙금이야 없지 않겠지만 결자해지라고 이렇게라도 정리하니 양쪽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만가지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모진 고초와 스트레스가 건강에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고초와 스트레스를 벌충하고도 남을 만큼 큰 기쁨(열렬한 지지, 대의를 위한 충심 등)이 있었을 터이지만 아무래도 범상하지 않다.

 

그런데, 앞서 다루었던 6명의 전직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김대중 대통령도 어려서부터 화목한 가정에서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점은 비슷하다.

 

부모에 대한 마음이 지금도 애틋하다. 이것이 모진 고초를 겪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옥중서신 같은 데서도 그 점은 잘 드러나고 있다.


김 대통령의 그런 정서가 잘 드러난 한 대목을 위의 ‘김대중 자서전’에서 보자.


“나는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인 하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유년시절과 소년기를 보낸 탓인지 지금도 바다를 좋아한다. 만약 나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준다면 나는 넓고 넓은 바다가 보이는 작은 언덕에 아담한 기와집 한 채를 짓고 거기서 사는 것이다. 나는 물욕이 없는 편이지만, 이 소박한 꿈 한가지만은 아직껏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대통령 재임 중에 발간됐다. 대통령 당선 뒤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가져볼만한 소박한 꿈이었을 것 같다. 섬마을에서 태어난 김 대통령의 동심이엿보인다.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김 대통령의 부친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자서전에서 김 대통령은 “아버지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그 때문에 정치에 관심 있는 분들이 아버지를 찾아오셨다”며 “소작 반대투쟁에 앞장선 지도자 중 한 분이었다”고도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길을 걷게 되는 것도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예인적 기질의 자상한 아버지

 

그런데 김 대통령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배경은 그보다는 ‘예능에 재주가 많은’ 부친의 기질에서 연유하는 것 같다.

 

자서전에서 “정이 많고 예인적 기질이 농후했던 아버지는 어떤 면에서는 놀기를 좋아하는 분이셨다. 그런 분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아버지는 아주 자상한 일면도 갖고 계셨다”고 했다.

 

어느 날 장난감 배를 만들고 있는데, 부친이 보고는 외출하다 말고 함께 나무를 깎으며 장난감 배를 만들어 준 일도 있다고 한다.

 

김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이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듯이 묘사하고 있다. 이런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면이 내재해 있어 모진 고초를 겪고도 이겨냈을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어머니도 못지않았다. “어머니가 안 계셨다면 우리 집은 제대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가 열심히 일하신 덕택에 집안이 일어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어머니에 대한 정이 김영삼 전 대통령과 아주 비슷하다. 두 대통령 모두 비슷한 시대에 섬에서 자란 탓인가. 엿장수 에피소드는 두 대통령 중 어느 한쪽이 모방하는 것처럼 완전히 같다(본지 30호 8월 4일자).


김 대통령이 예닐곱 살 때였다.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동네에 들어온 엿장수가 길에 누워 자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엿장수들은 엿만 파는 것이 아니라 화장품이나 머리빗, 담뱃대는 물론 일용잡화들도 팔았다.

 

잠든 엿장수의 물건에 몰래 손을 대던 중에 한번은 부친에게 담뱃대를 가져다 준 적이 있었다. 부친의 담뱃대가 낡을 대로 낡아서 볼품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노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 이거 어디서 났느냐?’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나의 소행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어린 것이 벌써부터 도둑질을 시작해? 가서 너의 손으로 직접 회초리를 잘라 오너라.”


그날 싸리나무 회초리로 장단지에서 피가 배어날 정도로 맞았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는 어머니가 그토록 매섭게 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 어머니의 올바른 가르침으로 훗날 대통령까지 올라갔을까. 두 경우 모두 어머니의 사랑의 힘은 위대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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