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잘 살자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자
  • 박영선
  • 승인 2006.09.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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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창태 시사저널 사장

사람은 누구나 오래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인간생명에는 한계가 있다. 천하통일을 이룩한 진시황도 불로장생의 약초와 영약을 구하기 위해 소년소녀 3000명을 동해로 보내고, 신선이라 불리던 노생과 후생을 불러들여 영생의 비법을 써 보았지만 50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옛날에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40세에도 미치지 못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그러했다. 요즈음은 80세, 앞으로는 130세까지도 살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그래봤자 우주전체를 지배하는 시간의 총량에 비하면 인간이란 너무도 미미하고 하잘 것 없는 존재이다.

 

불교에는 겁(劫) 또는 억겁(億劫)이란 시간의 단위가 있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는 겁(劫)의 길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방과 상하로 1유순(由旬·약 15km)이나 되는 철성(鐵城)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00년마다 한 알씩 꺼낸다.

 

이렇게 겨자씨 전부를 다 꺼내어도 겁은 끝나지 않는다. 사방이 1유순이나 되는 큰 반석(盤石)을 100년마다 한번씩 흰 천으로 닦는다. 그렇게 해서 그 돌이 다 닳아도 겁은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천상의 선녀가 사방 40리의 돌산을 비단 옷자락으로 100년에 한번씩 스쳐서 그 돌산이 다 닳아 없어져도 그 겁은 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세계가 성립하고 존속하며 파멸하여 사라지는 하나하나의 시기를 말하는 측정할 수 없는 긴 시간의 한계를 가리킨다.

 

겁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보통의 시간과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라 현실감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오늘의 현실세계로 눈을 돌려보자. 무인우주선에 탑재한 허블망원경은 무려 65억 광년이나 멀리 떨어진 또 다른 은하계의 탄생과 소멸을 보여주는 영상을 실어 보내오고 있다.

 

겁(劫)이란 우주론적 시간, 그리고 65억 광년이란 멀고도 먼 곳에 존재하는 것들이 내 자신의 인생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하고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을 통해 새삼 우주의 극대함을 깨닫고 겸손을 배우며 인간존재의 한계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주의 긴 시간에 비추어 본다면 평균수명 80년이란 우리 인생은 아주 짧은 시간임에 틀림없다. 하루 24시간은 쉬지 않고 각각(刻刻)으로 흘러간다. 그것이 일곱 번 거듭되면 1주일, 30일이 쌓이면 한달이다. 달이 12번이면 1년, 그 1년이 몇십번만 되돌아오면 일생이 끝난다.

 

나이 들어보면 인생은 찰나(刹那)와 같이 흘러간다는 말이 실감난다. 찰나는 75분의 1초(약 0.013초)에 해당되는 짧은 순간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지극히 짧은 한 찰나에 구백의 생명이 생성하고 소멸한다고 했다. 참으로 무상하고 덧없는 것이 사람의 한평생이다. 우리는 이 짧고 덧없는 시간에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고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한다.

 

더 넓은 아파트를 장만하고, 더 큰 명예를 얻으려고, 더 많은 돈을 벌려고, 그리고 더 값비싼 물건을 가지려고 아옹다옹 하면서 이 짧은 시간을 다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육신의 세계를 떠날 때 이 세상의 어떤 것도 가져갈 수 없다.

 

고생해서 마련한 집도, 아껴서 모아둔 통장 속의 잔고도, 아귀다툼 끝에 얻은 권력과 지위도 모두 고스란히 놔두고 가야한다. 우리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신으로부터 또는 자연으로부터 임대 받은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잠시 빌려 쓰다가 두고 갈 뿐이다.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에 우리는 그렇게도 집착하고 그것을 갖기 위해, 또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서로 싸우고 시기하고 증오하고 초조해 하는 것이다.

 

이런 것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잃고 더 많은 것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끝없이 욕망만 쫓다가 건강도 명예도 형제간의 우애도, 부모와 자식간의 인륜도 다 저버리는 것을 우리는 너무 흔히 본다.

 

‘인생은 바람 앞의 등불이고, 풀끝에 맺힌 이슬 같다’는 선(禪)사상의 가르침은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경구이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먼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는 것이나 이미 가버린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노자(老子)는 “현재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 도달 할 수 있는 궁극의 경지”라고 했다. 어제는 지나가서 이미 없어졌고, 내일은 오지 않아서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년이 되면 건강에 유의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식사에 신경을 쓰게 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에는 생로병사의 인과율(因果律)을 면할 수는 없다.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행동이나 생각, 노력도 자신의 능력이 닿는 만큼만 하고 무슨 일이 닥쳐도 놀라거나 분노하거나 한탄하지 말아야 한다. 살아있는 한 하루하루를 ‘지금 이순간이 전부’라는 생각으로 즐기고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을 제대로 잘 사는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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