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 자리를 살펴라’
‘앉은 자리를 살펴라’
  • 박영선
  • 승인 2006.09.0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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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영 밝은빛웃음치유연구소 소장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신이 왜 생길까? 의리의 균형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내세우기를 좋아하고 실속만 차리면 그만이라는 속셈을 감추고 살기 때문이다. 쉽게 표현하면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면 되는데 남들은 자리가 좁아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나만 편하자고 억지로 발을 뻗는 고집이다.

 

예전에는 이렇게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처신하면 남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네 사회는 그렇지 않다. 나만 편하면 된다는 식이다. ‘얄밉다. 어쩜 그럴 수 있냐’고 반문하고 싶지만 다들 눈치만 보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는 식이다.

 

앉은 자리를 살피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필자는 태극권을 지도하는 사람으로서 태극권 지도를 받기도 하는데, 2005년에는 진가태극권의 장문인인 진소왕 노사가 방한해 진가태극권을 지도받은 적이 있다. 진소왕 노사는 태극권을 지도하기 전에 자리를 잡아 준다.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자리를 잡아 주었다.

 

태극권을 배우겠다고 참석한 사람은 대학교수, 한의사, 지도자 등 하나같이 사회에서 최고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벗은 신발을 제 자리에 놓지 않았다. 나의 자리가 어디인지 모르고 아무데나 앉으면 된다는 식이다.

 

우리는 태극권을 배울 때도 그랬고 삶에서 자기 자리를 잊어버리고 앞만 보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앉은 자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마음을 긴장하게 하기도 하고 마음을 이완시키기도 한다.

 

자기 자리를 찾을 때 내면적인 삶을 영글게 한다. 자기 자리를 찾을 때 평안을 맛 볼 수 있다. 당신의 자리는 어디인가?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자기 자리는 마음을 비우게 하고 자신을 살피게 한다.

 

마음의 위기에서 나의 자리를 찾을 때 정체성의 위기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욕심의 불길을 잡으려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삶의 답은 뻔하다. 욕심의 덫에 걸려 날마다 신음하고 살 수밖에 없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곳에서 새롭게 영글어 가는 삶을 위해 다짐하고, 세상이 준 은혜를 생각해야 한다.

 

공자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통해 앉은 자리를 살피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즉 ‘온고’는 과거의 것을 살피는 것으로 지난 시간을 반성하는 것이고, ‘지신’은 내일의 삶을 예견하고 성취할 수 있다는 입지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 과거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희망적이고 진취적으로 내일을 향해 가야 한다.

 

앉은 자리를 살피는 것은 새롭게 변화하고 발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나의 자리는 왠지 어머니의 품처럼 편하다. 나의 자리가 아니면 불편하다. 나의 자리가 아닌 곳에서 타성에 젖어 불편한 줄 모르고 앞만 보고 살아왔던 내가 아니던가? 그렇다. 지신(知新)을 위하여 온고(溫故) 해 나를 새롭게 살찌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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