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로 연재소설 노수별곡(老手別曲) 13
서문로 연재소설 노수별곡(老手別曲) 13
  • 관리자
  • 승인 2010.04.03 14:48
  • 호수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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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향해 쏴라(13)

황씨가 황급히 아잉을 일으켜 세웠지만, 아잉은 격심한 통증을 이기지 못해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놀란 황씨는 아잉을 일으켜 간신히 화장실에서 거실로 기어 나왔다. 황씨의 기력으로는 아이까지 가진 아잉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었다. 치마가 말려 올라간 아잉의 가랑이 사이로 피와 함께 양수가 흐르고 있었다.

황씨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는 움직여주질 않았다. 게다가 아잉은 무서운 힘으로 황씨의 다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황씨는 자신의 다리가 아픈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황씨는 떨리는 손으로 아잉의 치마를 걷어올렸다. 피범벅이 된 팬티를 벗겨내자 이미 산도가 열려 있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 마당에서는 흥겨운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음악으로 시끌시끌했다.

아잉은 간절한 눈빛으로 황씨를 쳐다봤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믿을 것은 황씨 밖에 없다는 듯한 간절함이 배 있는 눈빛이었다.

황씨는 아잉을 이끌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착하게 119 구급대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장롱에서 요를 꺼내 두껍게 쌓은 뒤 아잉을 비스듬히 앉혔다. 무명 옷감을 꼬아 두꺼운 동아줄같이 만든 다음 장롱의 윗부분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아잉의 손에 쥐어줬다. 혹시 구급대가 도착하기 전 출산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취한 조치였다.

아잉은 황씨가 묶어 준 무명을 손에 감아 말았다. 팔에 힘을 주고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출산의 고통을 알 리 없는 황씨였지만, 아잉의 표정만 보고도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일지는 짐작할 만 했다. 그러면서도 아잉은 그 고통을 온전히 다 받아내고 있었다. 나지막한 탄성만 간간이 뱉을 뿐, 큰 소리를 내지 않았던 것이다.

송아지를 분만하는 소의 출산과정을 몇 번 지켜봤던 황씨는 사람도 대충 그와 같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대부분의 초식동물들이 새끼를 낳을 때 소리 한번 내지 않는 것은 포식자의 위협을 피하기 위함일 것이다. 순간 황씨는 아잉의 모습이 소와 같다고 느꼈다.

어찌된 일인지 시간이 지나도 구급차는 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잉의 낯빛이 검게 변해갔다. 황씨는 초조했다. 그러나 황씨가 할 수 있는 일도, 알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다만 본능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잉도 마찬가지였다.

황씨 주방으로 가서 큰 양은 대야에 물을 올려놨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잉도 아이를 낳는 방법은 알지 못했지만, 몸이 시키는 대로 자신의 호흡을 조절해 가며 힘을 줬다 풀었다 반복하고 있었다. 통증의 주기는 점점 빨라졌고, 강도도 더욱 세졌으므로 아잉은 본능적으로 아이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씨는 다시 전화를 찾아 응급센터를 찾았다. 다급한 황씨의 다그침이 있었고, 응급센터 직원은 농로를 지나오던 구급차가 마주오는 차와 교행하면서 그만 바퀴가 농로에 빠지는 사고가 있었다며, 구급차가 새로 출발했다고 전했다.

황씨는 이제 자신이 아이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는 바는 없었지만, 일단 탯줄을 잘라야 했으므로 물을 끓여 스테인레스 가위를 삶았다.

아잉도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황씨가 물을 끓이고 이것 저것 준비를 하는 동안 아잉도 마지막 순간 단 번에 쏟아낼 힘을 위해 숨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황씨는 내내 낮은 탄성을 토하던 아잉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들었다. 허둥지둥 안방으로 향한 황씨는 아잉이 자신이 매준 무명을 잡고 엉거주춤 서서 활처럼 허리가 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아이의 머리가 비어져 나오는 순간 황씨는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순간의 감동을 맛봤다. 머리가 빠져나온 아이는 공처럼 몸을 감싼 채 순식간에 빠져나왔다. 황씨는 물 온도를 알맞게 맞춘 뒤 아이를 조심스레 씼고는 들어올려 엉덩이를 탁 쳤다. 그러자 아이의 막혔던 기도가 열리며 우렁찬 첫 울음이 터져 나왔다. 사내아이였다. 황씨는 이 모든 과정이 꿈만 같았다. 마당에선 흥겨운 베트남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고, 풍성한 만월이 따뜻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었으며, 황씨의 손에 들려 이제 막 세상에 첫 발을 내딛은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세상의 모든 것이 이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듯 싶었다.

황씨는 나지막히 아이를 불렀다.

“한월아.”

이름을 정해 놓은 것도 아니었건만 자연스레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때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응급차가 황씨 집의 마당으로 들어섰고, 마당에서 춤을 추고 있던 베트남 사람들이 황씨 집 안을 기웃거렷다. 황씨는 아이를 아잉의 배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구급대원들이 아잉과 아이, 그리고 황씨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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