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선택은 부모가 아닌 자녀의 몫
진로선택은 부모가 아닌 자녀의 몫
  • 이미정
  • 승인 2006.09.15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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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변심한 애인 이영애에게 유지태가 했던 대사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변함없이 변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예외가 있으니 바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좋은 것만 먹이고, 원하는 것은 모두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마음이다. 자식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며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자식에게 퍼준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사랑일까 


진로나 취업 현장에서 마주치는 모성애(母性愛)나 부성애(父性愛)는 가끔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한다. 최근 대입 수시 모집 전형이 시작되며, 진학 자기소개서 컨설팅에 대한 문의가 부쩍 많아졌다. 물론 문의 당사자는 학생이 아닌 학부모다.


공부만 신경 써야 하는 자녀들을 위해 자녀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부모가 대신 해준다. 진학도 모자라 취업서류 작성문의까지 부모가 직접 하는 경우도 있다. 도와주는 것과 대신하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도와주는 것은 도움을 주는 이가 객(客)이 되지만 대신하는 것은 주(主)가 된다. 자식이 본인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 돼버린다.


진학과 취업이라는 삶을 크게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일을 가치관이나 판단 능력이 다소 미흡한 자녀의 선택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판단 이외의 것까지 모두 부모가 하는 것은 지나치다.


공부 이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자녀는 부모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하기보다 부모를 찾는다. 그리고 이러한 습관은 사회에 진출할 때도, 사회에 나가서도 계속되는 경향이 짙다.


1~2년 진학이 늦는다고 인생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더 오랜 시간을 방황하는 이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고 준비해서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 성장하는 이에게는 더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기도 한다.


에베레스트와 같이 높은 산을 오를 때 길 안내와 짐을 들어주며 등반을 도와주는 이를 ‘헬파’라 한다. 그 곳 지형에도 익숙하며 등반 경험도 많아 등반 대원들이 사고나 실수 없이 산을 오르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정상에 오르지는 않는다.


부모는 자식에게 헬파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자식이 넘어졌을 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혼자 일어날 수 있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고 격려하는 것이다.


아기 코끼리일 때 쇠말뚝에 묶인 코끼리는 커서도 똑같은 쇠말뚝에 그대로 묶여있다. 몸집이 커지고 힘도 세져서 충분히 말뚝을 뽑아 버릴 수 있음에도 도망가지 않는다. 아기 때 말뚝을 벗어나려고 했다가 벗어나지 못한 기억 때문이다.

 

 혹시 우리의 부모들은 자녀의 가능성을 가두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랑이라는 말뚝으로 말이다.

 

안시우  비즈레쥬메 선임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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