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 어버이날 효행자 부문 수상자
제38회 어버이날 효행자 부문 수상자
  • 관리자
  • 승인 2010.05.14 14:36
  • 호수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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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버이날을 맞아 7일 효행자 부문 대통령 표창을 받는 충북 단양군 어상천면 임현1리 이광수(49·오른쪽)씨 부자.
구순 노모·장모 봉양 김영대(69)씨
어버이날 국민포장 수상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나 아내를 낳아주신 장모나 똑같이 내 부모 아닙니까. 함께 모시고 사는 것은 자식 된 도리로 당연합니다.”

천도교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선생을 교조로 모신 수운교의 용흥법당을 맡고 있는 김영대(69·서귀포시 대천동)씨는 어머니(93)와 장모(90)를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는 소문난 효자다.

5년 전 일어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지팡이 없이는 걷기도 힘들만큼 거동이 불편한 아내 강신자(68)씨를 대신해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고, 3년 전부터 치매가 찾아온 장모를 모시고 집 앞 공원을 산책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법당을 직접 지어 대천동에 정착한 1969년부터 장모를 모셨고, 1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혼자 계신 어머니도 집으로 모셔왔다.

어머니 역시 둘째 며느리를 특별히 아끼고 마음을 주셨기에 자연스레 모시게 됐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부부가 한마음으로 효도하는 부창부수(夫唱婦隨)인 셈이다.

유난히 커피를 좋아하신다는 그의 두 노모(老母)는 함께 식사를 하고 나란히 앉아 TV도 보며 친구처럼 자매처럼 정을 나누고 있다.

아들 셋, 딸 둘 5남매를 둔 김씨의 집은 큰아들 창규(43)씨 내외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자, 손녀까지 4대가 늘 북적거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효도가 별거 있습니까. 부모님 속상하지 않게 하고, 하시고 싶은 거 하시도록 하는 거지요. 어르신들은 밤새 안녕이란 말처럼 아침저녁 혹시 불편하신 게 없는지 편찮으시진 않는지 수시로 들여다보고 돌봐 드리는 거 말고는 특별히 하는 일도 없습니다.”

“일하러 나갈 때도 집에 어머니들이 계시다는 생각에 늘 든든하다”는 그는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살 뿐인데 상을 받으러 오라고 해서 얼떨떨하다”며 웃었다.

5월 8일 제38회 어버이날을 맞아 효행자로 선정된 김씨는 정부로부터 국민포장을 받았다.


▲ 어버이날을 맞아 효행자 부문 국민 포장을 받는 서귀포시 대천동 김영대씨가 장모(왼쪽), 어머니(오른쪽)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치매 노부 7년째 모시는 이광수(49)씨
어버이날 대통령 표창 수상

“부모님을 정성껏 모시는 것은 자식 된 당연한 도리인데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니 쑥스럽습니다.”
어버이날을 맞아 대통령 표창을 받는 이광수(49·충북 단양군 어상천면 임현1리)씨의 수상소감이다.

이씨는 올해 86세로 치매에 걸린 아버지 이형원씨를 7년간 극진히 봉양해온 공적을 인정받았다.

평안북도 맹산군이 고향인 아버지는 6·25동란때 징병 돼 전쟁터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홀로 남쪽에서 생활하다 1965년 경기도 이천에서 김순녀(2005년 사망)씨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 않자 그는 여주 보육원에서 3살짜리 광수씨를 입양해 단양으로 이사했다.

아버지가 시키는 농사일이 지겨워 초등학교 6학년 가을 기차를 타고 서울로 무작정 가출을 했던 광수씨는 동대문 염색공장, 선반·밀링공장, 신문배달, 연탄배달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명절 때는 새벽같이 단양 집으로 내려와 제사만 지내고 아버지의 호통에 다시 서울로 쫓겨나기 일쑤였다.

2003년 10월 장가도 안 가고 수원의 한 공업사에서 일하던 광수씨는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에 10여년 이상 모아둔 전 재산 6000만원을 들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씨는 상태가 심각한 어머니를 제천의 한 병원에 입원시키고 3년여동안 극진히 간호했지만 2005년 봄 끝내 돌아가셨다.

설상가상 2004년 가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인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있으며 “아버지를 끝까지 잘 부탁한다”는 어머니의 유언으로 그는 단양에 눌러앉아 현재까지 아버지를 모시고 생활하고 있다.

배우지 못해 변변한 직장에 취직도 못하고 치매에 걸린 아버지 때문에 장시간 외출도 못한다는 광수씨는 “지난 3월부터 면 소재지에서 공공근로를 하고 있다”며 “돈을 모아 아버지께 좋은 틀니를 선물해 드리고 싶은 게 제일 큰 소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올해부터 군에서 요양사를 지원받아 1주일에 4일, 4시간씩 아버지를 돌봐주고 있다”면서 “요양사가 없는 날이면 아버지가 집에서 2km 떨어진 마을까지 걸어 나와 집을 못 찾고 할 때 마을 분들이 전화로 연락을 줘 찾곤 한다”며 마을 주민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이씨는 마을에서 ‘큰 일꾼’으로 통한다. 마을의 애경사는 물론 7년 전부터 이 마을 자율방범대, 의용소방대원으로 일하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10여년째 구순 조모 봉양 이상덕(40)씨
어버이날 국무총리 표창 수상

“우리 마을에서는 흔한 일인데 다들 과분하게 좋게 봐주시네유.”

충청남도 서산시 신장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이상덕(40)씨는 일흔 가구가 사는 마을에서 할머니(91), 어머니(70), 아들(2)과 함께 유일하게 4대 가정을 꾸리고 있다.

이씨는 1992년 제대 후 서울로 상경했지만 12년 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몸져눕자 어머니 홀로 농사일에 병간호까지 맡고 계신 것이 마음에 걸려 귀향했다.

또 5년 뒤에는 고혈압 합병증이 심화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6남매 중 외동아들인 이씨는 자연스레 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시게 됐다.

누나와 여동생들이 모두 외지로 시집을 갔으니 어렸을 때부터 함께 살아온 두 여인을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도시에서 건설노동 등 일거리를 찾아 전전했지만, 어머니를 고생시키고 마음 쓰느니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심심하지 않도록 트럭에 태워 2km 떨어진 경로당까지 모시고 가서 다시 할머니를 등에 업고 어르신들 옆에 앉혀드린다.

할머니를 등에 업고, 때로는 가슴에 안고 다니는 그의 효심이 마을에서는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본인은 “집에서 경로당까지 내내 업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유”라며 몸둘 바를 모른다.

일주일에 한번 보건소를 찾아 할머니 약과 영양제도 꼬박꼬박 찾아드린다.

할머니 뿐 아니라 동네 어르신에 대한 봉사활동도 지극하다. 4년간 청년회 총무를 맡아 40명의 젊은 회원으로부터 매달 20만원의 회비를 거둬 경로당 어르신 효도관광을 보내드리고 잔치비용을 댔다.

벼농사와 파, 감자를 키우는 밭일로 생계가 넉넉지 않아 화물운송도 부업으로 하고 있지만 어르신들이 깎두기를 안주로 삼을까 마음이 안쓰러워 소주 한상자, 통닭 안주거리 대접하는 여유를 잊지 않는다.

서산시 대표효자라는 칭찬을 전해듣자 “제가 하는 것은 별로 없는데 할머니를 모시다 보니 이웃사람들이 더 도와주려고 하고 좋은 일이 계속 생겨서 되려 덕만 봤다”며 쑥스러워했다.

3년 전에는 마음씨 착한 필리핀 처녀 메리안(25)씨를 아내로 맞아 노총각 딱지를 뗐고 올해 3월 할머니 생신에는 서산시가 이씨의 효심을 높이 사서 생신상까지 차려줬다.

이씨는 “시골이라 그런지 이곳 청년들은 어르신 공경이 몸에 배어 있다”며 “간혹 자식 있는 독거노인들이 외로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보면 상상하기 어렵다”며 현세태를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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