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진리 ‘노화와 통증’
건강의 진리 ‘노화와 통증’
  • 박영선
  • 승인 2006.09.1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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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소장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지역의료센터에 신체 여러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며 찾아오는 노인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면서 모두 노화·고령화를 탓하곤 한다. 늙었기 때문에 아프다고 체념한다. 아픔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자신만의 고통이다.

 

장기간의 투병생활을 하는 환자의 곁에서 괴로워하는 가족과 친지도 그 아픔을 대신할 수 없다. 인간으로서 또는 생명체로서 가장 독립된 고독한 존재임을 체감하게 하는 것이 바로 아픔이다.

 

그러나 이런 아픔은 본인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울지라도 생체의 측면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생명보호수단이기도 하다. 생체가 외부 또는 내부로부터 오는 나쁜 자극이나, 공격 또는 병적 상황에 대해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경고의 수단이 바로 통증이라는 감각이다.

 

그러나 일반 노인들의 경우 다양한 통증을 호소하는데도 분명한 이유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특정부위가 아닌 “아이고, 팔·다리·머리·허리야!” 하는 식의 전신적인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노인들의 동통호소를 분석해보면 신체적 요인도 크지만 정서적 요인도 개재되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통증은 신체적인 감각이면서도 사실은 경험에 의한 주관적 정서가 깊이 관여하고 있다. 따라서 일정한 유해자극에 대해 사람들이 같은 정도의 통증을 느끼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경험과 학습에 따라 아픔의 정도가 크게 다르다. 전쟁터에서 부상당해 후송된 군인의 경우 비슷한 부상을 당한 민간인보다 통증의 정도가 낮다. 전쟁터에서의 부상은 안전한 장소로의 후송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결과도 흥미롭다. 개의 발바닥에 전기충격을 주면 통증이 유발되나, 전기충격과 더불어 동시에 먹이를 주는 훈련을 하면 통증 반응은 없어지고 침을 흘리고 꼬리를 치는 반응을 보인다.

 

어린아이의 경우에도 목욕탕에서 넘어져 다치게 되면 그곳으로 가지 않으려하는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에서, 생명체에게 통증은 사회적 학습과 경험이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통증도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생리적통증은 유해한 자극에 대해 척수반사를 유발하고 자율신경반응과 각성 및 정서반응을 유발하여 위험으로부터 회피토록 한다.

 

염증성통증은 더 이상의 손상을 방지하고자 조직을 제거하고 치유 회복시키는 생체방어반응이다. 신경성통증은 신경조직 자체에 손상이 가해져서 저절로 또는 가벼운 촉각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운 통증이 초래되는 것이다.

 

이는 신경세포 손상에 의한 새로운 신경연결망이 생성되기 때문. 뿐만 아니라 통증에는 위치적으로 보면 체표통증과 심부통증이 있다. 체표통증은 비교적 그 원인을 파악하기 쉬우나 심부통증은 둔하고 경계가 분명치 않다. 그 예로 원인이 불명확한 두통이나 근육통이 있다.

 

한편 장기통증은 내부 장기 근육의 이완, 수축, 혈류 이상에 의해 초래되어 원래의 장기와 동떨어진 피부부위로 통증이 연관되는 연관통(referred pain)을 야기한다. 통증에는 직접적 원인 발생부위가 아닌 다른 부위로 투사 또는 연관되는 예가 많기 때문에 진단에 조심을 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유령통(phantom pain)과 같이 잘려나가 없어진 다리의 발가락 통증을 수년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아픔은 몸과 마음의 균형을 파괴하고 질병의 내도를 경고하는 중요한 감각이다. 이런 아픔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으로 종래에는 미생물에 의한 감염을 크게 중시해 왔다. 병원체에 감염되었을 때 이들이 생성해내는 각종 독소가 체열을 높이고 여러 가지 염증성 반응을 초래하여 통증을 유발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암·관절염·심장질환 등과 같은 생활·습관성 질환에 의한 생체조직의 이상에 의해서도 다양한 통증과 불편함이 초래된다. 그러나 이런 통증에 주관적 정서가 추가되었을 때 개인별 차이가 확대되어 느끼는 정도가 크게 다르게 된다.

 

아프다는 것은 본디 본인만의 것이다.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아프면 누구나 괴로워하고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먹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어진다. 아프게 되면 온통 세상이 나 혼자임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사람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아픔과 괴로움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통증의 정도가 경험과 학습에 의해 정서적으로 조절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노력여하, 생활 태도여하에 따라 통증의 경감과 극복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일반노인층의 통증호소가 급증함에도 분명한 이유를 지적할 수 없는 모호한 경우가 많다. 사회적 고립에 따른 반사적 행태로서 여러 가지 신체적·심적 불편함을 통증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흥미롭게도 백세 장수인들을 만났을 때 본인들의 건강상태 인지도를 비교해보면 70% 이상이 몸이 건강하고 질병이 없다고 자신하는데 반해, 70~80대 일반노인들의 70% 이상이 몸이 불편하고 아픈 데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실을 볼 때, 동통에 대한 주관적 태도가 매우 중요함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생을 자신 있게 살아온 사람들은 여러 가지 신체적 부자유함과 불편함이 있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살아가나, 일반인들의 경우는 고령화되면서 마주치는 사회·문화적 고립의 현실에서 정서적 심리적으로 더욱 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또한 신체가 노화됨에 따라 초래되는 여러 가지 생리적 기능의 저하가 부분적으로는 내재적인 조직의 노화현상에 기인하지만, 상당부분은 제대로 사용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불용성위축(disuse atrophy)에 의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조직의 위축은 사용시 불편함을 초래하면서 결과적으로 통증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늙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사용하려는 노력을 줄이면 그만큼 불편함이 초래되고 그것이 불특정한 아픔으로 연계되어 불평과 괴로움을 가져온다. 즉 단순히 늙었다는 이유로 몸의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느끼거나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이런 아픔의 상당 부분은 자신의 노력에 의해 생활습관 패턴을 개선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고령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한다면 노인들의 아픔은 크게 경감할 것이다. 또한 고령인으로서 겪게 되는 신체의 불편함과 아픔을 새로운 각도에서 분석해 진정으로 병적 현상인가 아니면, 내 자신의 생활패턴의 잘못 때문인가를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조건이 ‘몸이 아파야 한다’는 결과를 빚을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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