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로 연재소설 노수별곡 (老手別曲) - 내일을 향해 쏴라 (21)
서문로 연재소설 노수별곡 (老手別曲) - 내일을 향해 쏴라 (21)
  • 관리자
  • 승인 2010.06.04 13:37
  • 호수 2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씨의 노기가 농장 가득 채워졌다. 음성 뿐 아니라 온몸에서 분노가 화르르 타오르고 있었다. 그 서슬에 청년들이 주춤거리며 유복에게서 떨어져 쭈뼛거렸다. 누구도 말리지 못할 것 같았지만, 황씨의 등장은 그들을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황씨가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서자 그들은 몸을 돌려 황씨의 시선을 외면했다. 물론 젊었을 때 한가닥 했던 황씨였으나 지금 환갑이 훨씬 더 넘은 나이로 한창 나이의 여섯이나 되는 청년을 상대하는 것은 아니 될 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감히 황씨와 대적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배워먹은 것이 없는 놈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대낮에, 그것도 한 식구같은 아낙들을 희롱하고 몸이 불편한 사람을 괴롭힌단 말이냐!”

황씨는 일렬로 늘어서 있는 그들 앞으로 다가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우레와 같은 소리를 질렀다. ‘사자후’란 이런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일 것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그들은 황씨의 위세에 눌려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기세는 그들이 당해낼 것이 아니었다. 물론 힘으로 한다면야 여섯이나 되는 팔팔한 그들이 황씨에게 꿀릴 것은 없었다. 게다가 이미 최근에 방약무인한 행동을 일삼아 간이 커질 대로 커지고, 사람 대하기를 함부로 했던 그들이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황씨는 그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뺨을 한 대씩 후려갈겼다. 삭정이처럼 마른 몸이었지만, 황씨의 손매는 매웠다.

젊은 청년들이 매운 따귀를 한 대씩 얻어맞고 맥없이 쓰러졌다.

“에이씨, 진짜”

그들 중 대장역할을 하고 있던 녀석이 비칠대다가 그래도 동료들 앞에서 위신을 세워보고 싶었던지 벌떡 일어나 황씨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나 불처럼 쏘아보는 황씨의 매운 눈매를 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웅얼웅얼하는 소리로 알아듣지 못할 말을 지껄일 뿐이었다. 황씨는 다가서는 그 녀석을 향해 다시 불처럼 노기를 내뿜었다.

“이 개 망나니같은 놈!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더냐!”
황씨의 손이 다시 하늘 위로 올랐으나, 이번에는 따귀를 후려치기도 전에 지레 겁을 집어먹은 녀석이 그만 어깨를 움츠리는 바람에 목덜미만 세차게 얻어맞고 말았다.

위풍당당. 기세등등.

황씨는 한 마리 호랑이처럼 그들을 순식간에 제압해 버렸다. 흡사 몇 마리 승냥이가 제 세상인양 순한 양들을 희롱하다가,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난 셈이었다.

마침내 청년들은 밭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리고 그간의 죄상들이 낱낱이 파헤쳐 졌다. 위엉의 남모를 아픔과, 그동안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앓이를 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조차 할 수 없던가에 대해 이야기가 오갔다.

황씨는 그래도 분이 삭지 않아 씩씩대다가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자 서글픈 마음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자신도 전쟁이 끝난 후 공장과 날품을 전전하면서 그 안에서 힘깨나 쓴다는 패거리에게서 얼마나 많은 설움을 받았던가.

아잉을 만나 많은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일궈온 ‘한월농장’에서 똑같은 서러움을 받는 사람들이 생겨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황씨였다.

그동안 자신이 어른 행세를 하면서 거드름 피우는 꼴이 될까봐 가급적이면 농장일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이런 결과를 낳을 줄은 몰랐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에 유복이 한마디 거들었다.

“아저씨께서 우리를 편하게 해 주시려고 농장일에 간섭하지 않으셨다는 것 압니다. 그러나 농장에는 어른이 필요해요. 우리들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누군가 중재하고, 서로의 일을 조율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다시 누군가의 위에 서려고 할 거에요. 아저씨께서 이왕 우리를 돌봐 주시는 거, 우리에게 좋은 어른이 돼 주셨으면 합니다.”

밭 한가운데서 즉석으로 회의가 열렸다. 여러 사람들이 눈물을 훔치면서 그동안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까지 꼬박 네 시간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밭에 꿇어앉아 있어야 했다.

황씨의 위엄을 느끼는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절대 넘봐서는 안 될 권위에 도전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잘못을 했다고 느낀 순간 벼락처럼 뭔가를 느꼈던 것이다.

황씨는 일부러 그들을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황씨는 사람들에게 그들에 대한 처분을 물었다.

“저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