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경로효친 윤리문화에 대한 고찰
[독자기고]경로효친 윤리문화에 대한 고찰
  • 관리자
  • 승인 2010.06.11 13:23
  • 호수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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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휘조 독자(안양시 만안구)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충효정신(忠孝精神)을 강조하며 경로효친(敬老孝親)의 윤리문화를 실천하는 것을 큰 명예이자 덕목으로 생각해 왔다.

나라에서도 민족정기의 함양과 유교문화의 계승을 위해 경로효친과 진충보국(盡忠報國)사상을 국가 중흥(中興)의 동력으로 삼으며, 충효를 실천하는 자에게는 상을 내리고 불충한 자에게는 형벌로 다스려 왔다.

조선의 제19대 숙종 임금이 야간 순행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밤, 성내의 한 마을에 다 쓰러져 가는 삼간초옥(三間草屋)에서 곡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 노인 앞에 음식물을 차려놓고, 그 앞에 삭발을 한 두 남녀가 춤을 추고 있었다. 집이 가난하여 노모의 생일을 접대할 수 없자 부부가 삭발을 하고, 그 모발의 대전(代錢)으로 노모의 생일상을 차린 것이다.

어머니의 흥을 돋우려고 삭발한 부부가 춤을 추자 노모는 감격한 나머지 대성통곡(大聲痛哭)을 했던 것이다. 임금은 대궐로 돌아와 신하에게 명하여 과방(科榜)을 관리하는 작은 벼슬을 내렸다. 지극한 효를 실천한 부부가 노모와 함께 가난을 탈피할 수 있도록 상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시대가 크게 달라졌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도 꺼리고, 심지어 여러 가지 이유로 부모를 버리거나 요양원에 맡기는 일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부모를 공경하고, 정성을 다해 모시는 모습은 역사 속으로 사려진지 오래다.

더욱이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고, 과학 기술이 발달되면서 충과 효를 숭상하는 정신은 어느새 고리타분한 가치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판 고려장을 운운할 정도로 부모봉양을 기피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민족고유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의 소실에 한탄할 따름이다.

그래도 아직 효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아 다소나마 마음이 놓인다. 충남아산의 작은 마을에 사는 이득선씨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부친상을 당했다.

전통 방식대로 삼년상의 시묘(侍墓)살이를 했던 그는, 아버지의 채취를 잊지 않으려고 수 년 동안 도배조차 하지 않고 아버지의 방을 그대로 보존했다고 한다. 아비를 그리는 마음이 전해지는 듯 하다.

또 지난 2000년, 한 신문기사로 접하게 된 이군익씨의 사연은 놀랍기까지 하다. 그는 거동이 불편한 91세의 아버지를 위해 알루미늄 의자를 개조해 지게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지게에 아버지를 모시고, 무주 덕유산의 정상까지 올랐다. 또 아버지의 고독함을 덜어드리기 위해 집 앞마당에 조그마한 정자까지 손수 만들었다고 한다.

2006년에는 평소 아버지가 그토록 소망하셨던 금강산 관광을 함께 했다. 물론 지게에 아버지를 모시고, 험준한 산맥을 오르내리며 관광명소를 구경시켜드리는 것은 이군익씨의 몫이었다. 지게효자의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한 중국교포는 그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아 중국 산동성의 자신의 집으로 이씨의 가족 모두를 초대했다.

산동성은 공자의 고향이자 출생지로, 공자의 묘사를 비롯한 다양한 관광지가 있었고, 태산이 있는 곳이었다. 그 곳을 찾은 효자의 소문을 그 지방의 언론사들이 듣고는 앞 다투어 방송과 신문보도를 냈다 한다.
그 뿐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은 지게효자의 사진을 찍어 자신의 벽에 걸어놓기까지 했다고.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이러한 효에 대한 관심이 중국에서만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금강산과 산동성의 유명관광지에서 만난 수많은 내국인 관광객들은 지게효자의 모습을 보고도 무관심하게 지나쳐 가지 않았겠는가.

효 문화를 경시여기는 듯 느껴지는 우리 국민들의 모습에 대경실색(大驚失色)하지 않을 수 없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자처하고, 효 문화의 종주국이라 불리던 우리나라. 조상들이 이 모습을 보고 있다면 땅을 치며 한탄할지도 모를 일이다.

경로효친문화의 퇴색이 독거노인의 증가와 자결노인의 확산이라는 사회의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성을 다해 맹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효녀심청에 버금가는 지게효자의 모습을 마음에 새기면서 더욱 착잡한 심정이다.

이제는 효의 실천을 장려하고 교육할 수 있는 정부의 적절한 노력과 정책마련이 요구되는 때이다. 2009년 의원입법으로 계정 공포된 ‘효행장려지원법’을 토대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경로효친 윤리문화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실시해야만 한다.

그리고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예의' 교과목을 만들어 어릴 적부터 예의범절을 몸에 익힐 수 있는 교육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세대들이 단순 지식을 습득하기 이전에 먼저 효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경로효친 사상은 전쟁을 겪으면서 먹고 사는 것조차 힘들었던 나라를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루게 한 귀중한 초석(礎石)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고령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지금, 효 실천운동을 범국가적 차원에서 전개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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