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노후준비, 하고 계십니까?
[금요칼럼] 노후준비, 하고 계십니까?
  • 관리자
  • 승인 2010.06.11 13:25
  • 호수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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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란 한서대학교 노인복지학과 교수
미국 명문대인 하버드대 학생 268명을 72년 동안 추적하며 그들의 노화과정과 적응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를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그 책이 바로 조지 베일런트가 쓴 ‘행복의 조건’(Aging Well)이란 책이다. 저자는 책에서 행복한 노후를 위한 조건을 일곱 가지로 밝히고 있다.

첫째 고난을 이겨내는 자기 나름의 성숙한 방어기제, 둘째 평생에 걸친 교육, 셋째 안정적인 결혼생활, 넷째 금연, 다섯째 적당한 음주, 여섯째 규칙적인 운동, 일곱째 적절한 체중 등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경제적인 풍요 즉 돈은 행복의 조건에 끼지 못했다.

2009년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통계조사에 따르면, 18세 이상 가구주 중 75.3%가 노후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각보다 꽤 높은 수치다. 이 수치만 보면, 이제 우리 사회도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노후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노후에 대한 준비의식도 높아졌구나 하고 오해할 만하다.

그런데, 그 결과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연령별로 노후준비를 하고 있는 비율을 살펴보면, 의외로 고연령층보다도 30세~39세의 집단이 87.5%로 가장 높고, 40세~49세 85.6%, 50세~59세 81.6%, 18세~29세 65.5%, 그리고 오히려 60세 이상에서는 50.6%로 나타났다.

왜 중노년층보다도 젊은 층에서 오히려 노후준비를 하는 비율이 높은지 좀 이상하겠지만, 그 궁금증은 노후준비의 내용을 보면 금방 풀린다.

노후준비 방법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국민연금으로, 노후준비를 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 중 42.6%가 국민연금을 주된 노후준비방법으로 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다음으로 예·적금이나 저축성 보험(21.0%), 사적 연금(17.8%), 부동산(6.1%), 퇴직금(3.9%)의 순이었다. 결국 노후준비라고 하는 것을 경제적인 준비만으로 한정시켰기 때문에, 근로소득이 있는 젊은 층에게는 거의 의무화되어있는 국민연금으로 인해 젊은 층의 노후준비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물론 노후준비를 이와 같이 좁은 시각에서 본 것도 문제지만, 우선 그 문제를 접어둔다고 해도 국민연금이 개인의 경제적 노후준비 수단으로 충분한 구실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얼마 전 부부가 함께 받는 국민연금 최고 수령액이 사상 처음으로 200만원을 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최고수령액 그것도 부부가 모두 연금가입자일 경우이며, 혼자 국민연금에 가입해 있을 경우에는 월 100만원을 넘기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급속한 고령화로 점차 수령 연금액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으로 노후준비가 끝났다고 믿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예·적금, 저축성 보험, 사적 연금, 부동산 역시 무조건 믿을 수만은 없다. 시중 예금 금리는 이미 2%대를 맴돌고 있고,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사적 연금의 보장율도 예전만 못한 형편이며, 부동산 역시 가격 하락을 지속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노후준비라는 게 경제적인 준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가장 중요한 생활의 도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돈만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다. 모든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진 실버타운의 카페테리아에서 매일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홀로 식사를 한다면, 누구나 부러워할 고급저택에서 화초에 물을 주며 하루 종일 한 번도 울리지 않는 전화기만 쓸쓸히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면, 함께 손잡고 장을 볼 배우자도 없고, 전화에 대고 속 후련히 자식 흉을 볼 친구도 없고, 바쁘게 서둘러야 할 약속도 없고, 오늘 꼭 해야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이 돈만 있다면 과연 행복하다고 느껴질까?

‘행복의 조건’을 통해 볼 수 있듯이 행복한 노후를 위한 준비에는 돈보다도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낙관적인 태도, 작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 끊임없이 배움으로써 자신을 계발하고자 하는 열정, 배우자를 배려하고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생활습관과 태도, 삶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와 원만한 인간관계 등이다.

노후준비는 경제적인 준비를 넘어 심리적인 태도와 마음가짐의 준비, 사회적인 부부관계 및 인간관계에 대한 준비,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준비, 그리고 항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배움에 대한 준비까지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자신이 원하는 노후의 모습을 정확히 그려내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며 그 계획이 실행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 나가는 태도일 것이다.

과거와 비교해볼 때 이 시대에 태어난 우리들에게는 살아가야 할 삶의 길이가 훨씬 더 길어졌다. 과거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아니 어쩌면 꿈도 꿀 수 없었을 노후가 지금 우리들에게는 당연한 현실이 되었다.

또한 결코 간과할 수 없을 만큼 길고 인생에서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노후를 어떻게 보내는가는 노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 전체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삶에 대한 최종 평가는 인생의 마지막 시점인 노년에 이르러 바로 그 노년의 시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삶에 지친 노년의 눈에는 지나온 삶이 모두 후회와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겠지만, 행복한 노년의 눈에 비친 인생은 어떤 고난이라도 아름다운 결말을 위한 서막으로 비쳐질 것이다.

따라서 노후준비는 결국 노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묻고 싶다. 그래도 당신은 지금 노후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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