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로 연재소설 노수별곡 (老手別曲) (22)
서문로 연재소설 노수별곡 (老手別曲) (22)
  • 관리자
  • 승인 2010.06.11 13:30
  • 호수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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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향해 쏴라
황씨의 마른 몸이었지만, 이날 보인 행동으로 인해 거인처럼 커 보였다. 아낙들은 황씨에게 일견 존경을 느꼈지만, 두려움도 동시에 느꼈다. 아무도 선뜻 나서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황씨는 그런 그들에게 다시 화가 나기도 했다.

자신들의 일인데, 누군가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도 나약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옛 일을 생각해 보고는 마음을 누그러트렸다. 남의 밑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더구나 자신의 나라에서 떠나 와 불법체류의 신분으로 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됐기 때문이었다.

그리 생각하면 저 여섯의 청년들이 더욱 괘씸하게 느껴졌다. 다 같이 어려운 처지에서 저희들만 조금 더 낫게 살겠다고 함께 있는 이들을 괴롭히고, 쥐꼬리만한 힘을 권력으로 이용했던 놈들이었다.
위엉이 조심스럽게 말을 뗐다.

“난…, 저들을 용서하기 싫어요.”

그럴만한 일이었다. 황씨도 충분히 수긍했다. 다른 베트남 사람들도 그들을 내쫒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황씨는 잠깐의 생각에 빠졌다.

“저 녀석들을 내쫒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만한 잘못도 했다. 하지만, 한번 저 녀석들에게 묻겠다. 너희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있느냐?”

벌써 네 시간째 꼼짝없이 무릎 꿇고 있던 녀석들이었다. 황씨의 벼락같은 노기에 서슬이 퍼래져서는 여태껏 자세한번 꼼지락거리지 못하고 있었다.

“…….”

“다시 한번 묻겠다. 잘못을 뉘우치고 있느냐?”

이번에도 대답이 없었다. 대신 한 녀석의 눈에서 철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떻게 한번 행동이 엇나가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었어요. 어디 가도 맨날 무시만 당하는데, 그래도 여기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으니까….”

고개를 떨군 청년의 눈에는 진실성이 담겨 있었다.

“황 아저씨는 우리에게 모두 인자한 분이셨는데, 우리는 아저씨가 ‘어른’이란 걸 깜빡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이렇게 좋은 공간을 만들어 주신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안 좋았지만, 한번 시작된 장난이 멈춰지지가 않았어요. 정말이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청년들 가운데 제일 어린 녀석이었다. 황씨는 그들을 지그시 내려다 보더니 말을 꺼냈다.

“너희들이 여기를 떠나 다른 곳에 가도 마찬가지란 걸 안다. 그냥 이 사회에서 멸시받다가 저보다 더 힘이 약한 상대를 골라 괴롭히는 양아치가 될 것인가, 제대로 사람으로 대접받고 살 것인가는 너희들 행동에 달렸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것은 여러 사람이 모인 가운데 염치를 알고, 서로가 보듬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걸 어겼어. 사람이 살면서 한번쯤 실수 안하고 사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너희는 죄질이 아주 나쁘다. 어떻게 그걸 갚겠는가?”

“얘기를 듣자하니 특히 위엉이 받은 상처는 너희를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만큼 큰 고통이었을 것이야. 얼굴도 보기 싫을 너희들을 모두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너희들은 어떤가?”

이야기를 들은 청년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본국으로 돌아가도 그들이 할 것은 없었다. 어떻게든 이 땅에 남아 살고 싶은 마음은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더 이야기 한 끝에 황씨는 자신의 처분대로 일을 마무리했다. 청년들 사이에서 그들의 맏형 역할을 맡았던 녀석은 황씨의 농장에서 내쳐졌다. 나중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역시 비슷한 또래들과 외국인 범죄단체를 만들다가 사법처리를 받고 본국으로 쫒겨났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나머지 세 청년은 그날의 사건 이후로 농장에 안착했다. 황씨의 인자한 얼굴뒤에 감춰져 있던 매서운 위엄을 느낀 이후로 농장은 하나의 구심을 갖고 더욱 잘 돌아갔다. 황씨는 그전처럼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농장 식구들이 느끼는 감정은 이전과는 달랐다. 그들은 든든한 ‘어른’으로 황씨를 다시 보았고, 황씨를 대하는 데는 물론 이전처럼 스스럼없이 대했지만, 황씨를 진정으로 존경했다. 황씨도 그들이 고마웠다. 사실 그들이 믿고 따라줬기 때문에 황씨의 연륜과 위엄은 빛을 낼 수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인 홀로의 삶이란 아무리 뛰어난 인품이나 위엄을 갖췄다 하더라도 쓸 데 없는 것이다.

한바탕 시련이 지나간 뒤의 농장은 더욱 풍요로워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경사가 찾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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