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학대 근절 사회가 함께 모색해야
노인학대 근절 사회가 함께 모색해야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0.06.18 14:41
  • 호수 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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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7명 중 1명 학대 받아… 가해자 대부분 가족
전문가 중심 보고 체계 수립·예방교육 의무화 시급

노인학대가 해마다 늘고 있다. 무엇보다 학대의 가해자 대부분이 자녀라는 점이 충격적이다. 학대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핵가족화와 물질만능주의, 전통적 효사상 약화 등 사회적 환경 변화와 부양에 대한 경제적 부담 등이 노인학대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시간이 갈수록 노인학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6월 14일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을 맞아 노인학대 예방을 위한 근본적 방안을 모색해본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 서울시노인보호전문기관은 6월 15일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을 맞아 서울 명동 일대에서 가두행진을 비롯해 노인학대 사진전, 노인학대 상담전화 인지도 조사, 효 서약서 작성 및 학대 피해노인에게 사랑의 엽서 쓰기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사진=임근재 기자

◇노인 13.8% 학대 받아… 가해자 절반 자녀
우리나라 노인 7명 중 1명이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대 가해자의 대부분은 자녀나 며느리·사위였다. 유형별로는 정서적 학대가 가장 많았다.

보건복지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지난해 4월부터 1년간 전국 노인 6745명과 일반인 2000명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 노인학대 실태’조사 결과, 전체 노인의 13.8%가 ‘학대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학대유형으로는 정서적 학대가 67%로 가장 많았고, 이어 방임(22%), 경제적 학대(4.3%), 신체적 학대(3.6%) 순이었다.

특히 학대 가해자는 자녀가 50.6%, 배우자가 23.4%, 자녀의 배우자가 21.3% 등으로 자녀에 의한 학대가 전체의 71.9%를 차지했다.

가해자의 54.9%는 40〜59세 연령대였으며, 학력별로는 초등학교 졸업자가 40%로 가장 많았으나 대학 및 대학원 졸업인 고학력 학대행위자도 14.8%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학대를 받고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학대를 경험한 노인의 2.5%만이 전문기관이나 경찰에 전문적인 도움을 요청했을 뿐 65.7%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42.5%), ‘부끄러워서’(21.7%) 등의 답변이 나왔다.

◇노(老)-노(老)학대·시설학대 등 새로운 유형도
노인학대 유형도 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평균수명이 증가하면서 노인이 된 자녀가 고령의 부모를 학대하는 이른바 ‘노(老)-노(老)학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서울시노인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2009년 사업운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0대 이상 학대 가해자의 비율은 30.7%로 2008년 26.1% 보다 4.6% 증가했다.

노인학대 행위자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주 부양계층인 40~50대가 전체 학대행위자의 51.5%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학대행위자 가운데 60대 이상이 30.7%를 차지해 10명 중 3명이 ‘노-노 학대’ 가해자였다.

고령 학대행위자가 증가한 대표적인 이유는 수명연장과 과거 학대경험 등을 꼽았다. 수명연장에 따른 고령화는 60대 이상의 자녀가 고령의 부모를 모셔야 하는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가중시켜 학대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또 학대를 받는 노인이 과거 가정폭력의 가해자였던 경우 고령으로 인한 신체적 질환 등으로 가족의 수발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도 가족들이 돌봄을 기피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최근엔 부양의무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학대 행위자도 아들은 감소한 반면 딸은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서울시노인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학대행위자 유형 가운데 아들이 50% 이상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나 지난해에는 44.9%로 소폭 감소한 반면 딸의 경우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는 과거 아들에게 전적으로 부양부담과 재산권 등을 주어졌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자녀가 동등하게 부양의무를 갖게 되면서 딸도 권리행사를 주장, 이에 따른 학대가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된 이후 요양시설에 입소하는 어르신들이 늘면서 시설학대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사이버대 권금주 교수(복지시설경영학과)는 “아직까지 노인요양시설을 대상으로 한 공식적인 노인학대 실태조사 결과는 없다”며 “하지만 노인요양시설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증가하면서 시설학대도 적지 않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요양시설 종사자들을 위한 체계적인 노인학대 예방교육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권 교수의 지적이다.

◇경제부담 덜고자 부모부양 수당금제안… 혁신적 대안 안돼
전문가들은 학대의 원인에 대해 “한가지로 꼬집어 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혀있다”고 설명한다. 개인적 특성은 물론 핵가족화와 물질 만능주의, 전통적 가치관인 효사상 약화 등 사회적 환경 변한데다 부모부양에 대한 경제적 부담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일수록 노인학대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충청북도노인보호전문기관이 지난해 접수된 노인학대 사례 피해자 102명 가운데 75명(73.5%)이 저소득이거나 기초생활수급 지원을 받는 빈곤가정에 속했다. 지난 2008년에도 노인학대 피해자의 66.1%가 빈곤가정이었다.

지난 2007년 효사상을 고취하고, 노인을 공경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효행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최근 각계에서는 효행장려지원법을 근거로 일부 지자체가 시행하고 있는 효도수당제도를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물론 의료비 혜택, 주거시설 공급 및 지원 등을 강화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부모부양 수당이 노인학대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금주 교수는 “경제적 부담이 노인학대의 주요 원인이라기보다는 학대위험 상태에서 경제적 요인이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부모부양 수당금을 지급한다고 해서 노인학대의 근본적인 요인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부, 학대 행위자 처벌수준 강화 추진
정부는 노인학대 예방을 위한 방안으로 처벌수준을 보다 강화하는 것은 물론 노인학대 신고의무자 범위 확대, 신고기관 확대 등을 실시할 방침이다.

보건복지부는 우선 노인복지법상 노인에게 폭력을 휘둘러 다치게 한 사람에 대한 처벌수준을 현행 7년 이하 징역에서 형법상 존속상해 처벌수준과 같은 10년 이하 징역으로 높일 계획이다.

또 그간 부모나 조부모 등 존속 폭행에 대해,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반의사 불벌죄’를 적용하던 것에서, 법무부와 협의를 거쳐 노인학대의 경우 이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법률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아울러 의료인, 노인·장애인복지시설 종사자 등으로 한정됐던 노인학대 신고의무자 범위를 119소방대원, 전체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등으로 확대하고 이들이 신고를 등한시할 땐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학대현장에 대한 조사를 방해하는 경우에도 벌칙이 부과된다.

복지부는 이밖에 내년 중 학대피해노인을 위한 전용 쉼터를 각 시·도별로 1개소씩 16개소를 설치하고 일시보호, 치유프로그램 및 가족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노인학대 신고번호(1577-1389)를 적극 알리고 전국 노인복지관 237개소를 노인학대 신고기관으로 활용해나가기로 했다.

◇학대 예방, 노인학대 외부로 알려야 지원 가능
전문가들은 노인학대 문제를 예방하기위해서는 전문가 중심의 보고체계를 수립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노인학대 예방교육이 의무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이수한 교수는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강제 보고체계 수립이 시급하다”며 “노인학대를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로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노인학대 문제가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으면서 사회적 지원과 개입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일반노인이나 가족들을 항상 접하는 사회복지사를 비롯해 의사, 간호사, 약사 등의 전문가들이 노인학대를 공식적으로 보고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며 “궁극적으로는 국가 단위의 보고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종숙(요수아 수녀) 서울시노인보호전문기관장은 “노인학대의 원인은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노인학대 예방교육 의무화가 시급하다”며 “현재 노인학대 예방교육은 대부분 사회복지종사자만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노인을 부양하는 주 부양계층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예방교육이 실시돼야 한다”며 “주민자치센터나 지역단위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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