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세대’의 비애
‘샌드위치 세대’의 비애
  • 박영선
  • 승인 2006.09.2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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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

현재의 한국 노년층, 즉 60대 이상의 실버세대는 여러 면에서 ‘샌드위치 세대’이다. 이들은 구세대인 앞 세대와 신세대인 다음 세대의 중간에 낀 신세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연령층은 젊은 시절 피땀을 흘려가며 부지런히 일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한 ‘공로세대’지만, 이들 대부분이 노후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했다.

 

이 때문에 극소수의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된 노년기를 맞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정치적·사회적으로도 소외되어 있다.

 

한국의 노년층은 어릴 때부터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엄격한 유교적 윤리를 최고 가치로 알고 자라나 어른들을 공경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알았다. 그런데 막상 자신들이 어른이 되고 보니 세상이 변해 그런 유교적 사회가 사라지고 말았다.

 

요즘 미국으로부터의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문제 논란에서 나타나듯 노년층이 아무리 이를 반대해도 마이동풍(馬耳東風)일 뿐이다.

 

오히려 이들은 시대의 변화를 모르는, 또는 자주정신을 모르는 외세 의존적인 낡은 세대 내지 수구꼴통 취급을 당하고 있다. 경험이니 경륜이니 하는 말은 옛말이 되고 말았다.

 

한국의 노년층은 가정적으로도 샌드위치 세대다. 이들은 부모를 모시고 산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들로부터는 그런 대접을 기대할 수 없는 첫 번째 세대이다.

 

이들 노년층의 부모는 대부분 세상을 떴지만 예외적으로 생존한 경우 80대 후반에서 90대의 초고령층이다.

 

이들은 대가족시대에 태어나 성장했기 때문에 부모를 공양하는 것을 자식의 당연한 도리로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부모를 양로원에 보내는 것을 막심한 ‘불효’라고 생각하며, 아무리 힘들더라도 아버지, 어머니를 끝까지 모시고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다.

 

친자식의 경우는 말 할 것도 없고, 며느리들도 시부모를 모시는 것과 시부모가 병석에 누웠을 때 수발을 드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의 자식세대는 대개 40~50대로 말하자면 신세대에 속한다. 이들 신세대는 대체로 1950년대에서 1960년대의 핵가족시대에 태어난 연령층이다.

 

그들은 결혼 후에는 부모를 직접 모시고 살지 않는 습관에 젖어 노부모를 양로원에 보내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필자는 주변에서 샌드위치 세대가 겪는 비애를 많이 보고 듣는다.

 

필자가 아는 정치인 S씨는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살게 되자 2남3녀나 되는 자식들이 차츰 자신을 성의껏 돌보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자신보다 20세나 연하인 여성을 간병사 겸 내연의 부인으로 맞아 새로운 가정을 꾸미고 살다가 최근에 세상을 떠났다.

 

이 여성은 너무도 헌신적이어서 S씨는 자식보다 이 여성에게 정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세상을 뜨기 전에 이 여성에게 15억원 이상 호가하던 대지 200평짜리 저택을 넘긴다는 유언장을 작성해 변호사 공증을 받아 자신의 금고 속에 보관해 두었다.

 

자식들에게 유산을 물려줄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식들이 하도 서운하게 대하니 이를 괘씸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S씨가 별세한 다음 문제의 유언장이 금고에 보관된 것을 알게 된 자식들은 이를 그 여성에게 넘겨주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나, 소송으로 번져 결국 여성의 승소로 끝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S씨는 사후에까지도 자식들과의 정신적 관계가 소원해 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실업가 M씨의 이야기는 더욱 안타깝다. 돈을 많이 모은 M씨는 부인이 죽은 다음 3남1녀의 자식들에게 고루고루 재산을 물러 준 다음 누가 자기와 같이 살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미 상속을 받은 터라 그 어느 자식도 선뜻 그를 모시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실망한 M씨는 살던 집을 처분하고 혼자 교외로 나가 살았다. 말하자면 ‘독거노인’이 된 셈이다. 그런데 M씨가 세상을 뜨자 그에게 70여억원의 저축이 있는 것이 밝혀졌고, M씨의 자식들은 크게 놀랐다.

 

M씨가 그 많은 돈을 자식들에게 한 푼도 주지 않고 자선단체에 기부하도록 유언장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제야 자식들은 모두 아버지를 모시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많은 샌드위치 세대들은 이 같은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자 스스로 ‘자구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이 죽기 전에 함부로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러주지 않는 방법이다.

 

부모가 재산을 미리 상속해 주지 않으면 자식들은 그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서라도 ‘효도’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풍조는 샌드위치 세대의 비애 일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의 씁쓸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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