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황비홍 정경교
한국의 황비홍 정경교
  • 관리자
  • 승인 2006.09.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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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정기 타고 무술연마 오가피 웰빙마을 이룩

마이산으로 유명한 전북 진안군 백운면 동창리 ‘백운 나들목마을.’ 해발 500m 진안고원 첩첩산중에 자리한 고즈넉한 마을에 이 시대의 기인(奇人), 정경교(50)씨가 도시를 멀리한 채 자연을 벗 삼아 멋들어진 삶을 살고 있다. 품이 넉넉한 개량한복, 긴 생머리를 뒤로 묶은 모습부터 범상치 않았다. 정경교씨의 주특기는 중국무술. 이 마을 일대에서는 ‘황비홍’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정씨는 이미 수차례 텔레비전에도 출연해 전국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부친을 위해 가야금을 뜯고 있는 정경교 씨.

 

정경교씨가 무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자체가 기이했다.


“어릴 적 검을 타고 하늘을 날거나 매화나무 숲에서 칼을 휘두르며 도인처럼 무술을 연마하는 꿈을 많이 꾸었어요. 특별한 계기도 없었는데 무술이 늘 머릿속에 맴돌았지요.”


그가 지금까지 읽은 무협지만 모두 3만여 권. 무술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대학 졸업 때까지 태권도장과 유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중

국무술에 빠져든 것은 해군을 제대한 뒤 화물선 항해사로 배를 타면서부터다.


“1982년이었지요. 화물선을 타고 오대양을 누비는 외항선원이 됐어요. 일이 끝난 뒤 중국 선원들이 무술연습을 하더라고요. 보고만 있을 수 없었지요. 술을 사주고 어르고 달래서 함께 무술을 하게 됐어요. 제 인생을 바꾼 중요한 전기를 만난 것이지요.”


그는 광동성 남소림 출신 중국 선원들로부터 정통 중국무술을 전수받았다. 중국무술을 익히면서 정경교씨는 스스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동작 하나하나를 따라갔기 때문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우연히 만난 몇몇 무속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당신은 전생에 중국 대륙에서 알아주는 무예 대가였을 것”이라고 귀띔했다고 한다.

 

외항선 타며 중국 선원들에게 중국무예 배워

1994년까지 10여년 배를 타는 동안 바다는 그에게 인생을 가르쳤고, 무술이라는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었다. 일등항해사로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정경교씨는 아내 김미경(48)씨에게 자신의 간절한 꿈이 담긴 편지를 썼다.


“나는 지금 당신과 부부검객이 되어 백마를 타고 달리는 꿈을 꾸고 있소. 청산(靑山)에 들어가 당신과 함께 땅을 일구며 무술을 익힐 수 있는 날을 그리며 오늘도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오….”


아내 김미경씨는 남편의 뜬금없는 편지에 장난인줄 알고 코웃음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1994년 배에서 내린 정경교씨와 아내는 의민(23), 유빈(17) 남매를 데리고 실제로 ‘청산’을 찾았다. 그의 가족이 둥지를 튼 곳이 지금 살고 있는 진안군 백운면 덕태산 자락이다.


“우선 생계를 위해 식당을 운영하기로 했지요. 집터를 잡고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강행군으로 작업을 계속해 6개월 만에 ‘청산가든’이라는 식당을 마련했지요. 1999년까지는 식당을 운영하며 냇가에서 바위를 주워와 뜰을 꾸미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터를 잡으니 무술에 대한 애착도 더욱 심해졌다. 오죽했으면 식당 실내 인테리어를 영화 ‘동방불패’에 나오는 중국 식당과 똑같이 했을까.

 

게다가 인근에 자리한 백운계곡은 무술에 대한 갈증을 더욱 깊게 했다. 시원하게 계곡물이 흐르는 넓은 바위에 올라 검과 창을 잡으면 온갖 상념이 잦아들고 기가 뻗어올라 무아지경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이 즈음 아들 의민이가 대학공부까지 포기한 채 무술연마에 동참하겠다며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아내의 반대와 연일 계속되는 싫은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부자는 중국 무술에 심취해 백운계곡을 드나들었다.


“마이산 정기를 머금고 흐르는 백운계곡은 자연 그대로의 도장(道場)입니다. 섬진강의 시원(始原) ‘데미샘’도 지척에 자리하고 있으니 기를 모으기에는 더할 나위 없지요. 하지만 몸을 단련하는 데는 무술만으로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정경교씨가 무술과 곁들인 것이 음률(音律)과 약초술이다. 우선 음률을 갖추기 위해 왕복 3시간이나 걸리는 전주를 매일 오가며 가야금과 대금을 배웠다.

 

지금은 가야금과 대금 모두 수준급. 그는 지금도 오전 6시만 되면 어김없이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나 20분씩 가야금을 뜯고 대금을 분다. 그리고 30분 동안 계속되는 무술 연습이 아침 일과다.

 

  부친 정연의(88) 옹(오른쪽)은 의지가 굳은 아들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가야금과 대금 연주, 몸을 깨우는 음률 즐겨

“가야금을 뜯으면 현에서 울리는 진동이 전신의 막힌 혈을 뚫고 오장에 생기를 불어 넣지요. 그런 뒤 대금을 불며 호흡을 조절해 단전을 가다듬습니다. 이렇게 음률을 통해 밤새 굳어진 몸을 추스르고 무술을 연마하면 날아갈 듯 가볍지요.”


소림권, 우슈를 비롯해 황하강 이북에서 주로 행해지던 장창술에 심취해 있던 그에게 태극권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태극권은 부드럽고 고요하며 느릿한 몸짓 운동을 통해 기혈의 순환과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데 그만이었다.

 

온몸에 생기를 불어넣고 각 기관을 활성화시켜 건강을 지키는데 최고의 운동이라는 것이 태극권 공인 5단의 고수 정경교씨의 설명이다.

 

특히 내면의 정신수련을 도와 사고력과 집중력도 높이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긍정적인 생활태도를 갖게 하니 청정자연에 묻혀 사는 그에게는 양식과도 같다. 무술은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키우는 것이라는 믿음도 태극권에서 얻은 교훈이다.


무술을 연마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먹거리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가장 먼저 챙긴 것이 오가피였다. 외항선원 시절 중국인 선원들로부터 무술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접한 것이 오가피다.

 

중국인 선원들은 무술 연습이 끝나면 오가피 차와 술을 즐겨마시곤 했다. 그 자신도 오가피 차와 술을 마시면 기운이 돋고 관절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중국 선원들에게 배운 남소림파 무술은 발로 바닥을 ‘탁탁’ 치는 동작이 많아 관절에 무리가 많이 가지요. 그런데 오가피 차나 술을 마시면 관절도 튼튼해지고 힘든 동작을 반복해도 팔다리가 아프지 않았어요.”


그는 지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오가피를 심기 시작했다. 그가 살고 있는 백운면 동창리는 해발 500m 고산지대인 데다 섬진강이 발원하고 밤낮 기온차가 커 오가피를 재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정경교씨는 자료를 모으고, 오가피 농가를 찾아다니며 재배기술을 익혔다. 오가피는 병충해에 강해 농약을 치지 않아도 됐다. 풀만 잘 뽑아주면 제초제도 필요 없으니 무공해 약초를 재배할 수 있었다.

 

오가피 신비한 효능에 5만여 평 약초밭 가꿔

“오가피를 재배해 먹으면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식당일을 하면서 몸이 무척 약해진 저도 효험을 봤지만 만성기관지염을 앓던 부친께서도 오가피를 다려드시고 3~4개월 만에 완치됐습니다. 비염과 생리통 등 7개나 되는 질병을 앓던 아내도 오가피 액을 마시고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뿐만 아니었다. 정경교씨를 통해 오가피를 먹게 된 마을사람들도 종양이며 신경통 등 저마다 가지고 있던 질병을 훌훌 털어냈다고 한다.

 

주민 가운데 일부는 오가피를 수확하며 가시에 찔리기만 했을 뿐인데 몸이 좋아졌다고 한다. 이쯤 되니 오가피 예찬론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정경교씨의 부친 정연의(88) 옹이 79세의 고령에 ‘아내의 초상화’라는 수필로 문단에 등단한 데도 오가피의 신비한 힘이 뒷받침됐다.


“오가피 줄기와 뿌리를 일일이 잘라 가마솥에 넣고 장작불로 하루 이상 달입니다. 그 다음 중탕기에서 즙을 짜내 다시 솥에 넣고 5시간 이상 달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방즙을 만들려면 꼬박 이틀이 걸리지요. 텔레비전을 통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주문이 쇄도했습니다. 어쩔 수 없었지요. 건강을 잃고 사경을 헤매는 분들의 간절한 소망이 전해졌습니다. 밤을 지새우더라도 오가피 한방즙을 만들어드렸지요.”


뜻하지 않게 오가피 농사와 한방즙 판매를 시작한 정경교씨. 오가피에 이어 한발 더 나아가 덕태산 자락을 비롯해 백마산, 삼각산 일대 5만평에 멸종위기에 놓인 10여 가지 약초를 심어 가꾸고 있다.

 

진안군 으뜸마을 위원장과 농협 ‘팜스테이’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동방무예체험과 오가피를 통해 이 고장을 웰빙체험마을로 일궈보자는 계획을 갖고 있다. 정경교씨가 마지막으로 밝힌 포부도 ‘신선마을’ 건설이었다.


“지난 3월에는 백운나들목 체험관을 완공해 손님맞이 준비를 끝냈습니다. 마을을 찾는 손님들은 태극권을 통해 동방무예를 체험하고, 오가피를 맛보면서 천연의 건강비법에 놀라워합니다. 앞으로 신선이 사는 곳처럼 국악과 무예, 약초로 상징되는 ‘신선마을’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오가피 및 백운나들목마을 체험 문의 : 063-432-0145/011-9640-6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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