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찬 노년생활] 폐암 선고 6개월 시한부 인생… 만 7년째 건강하게 사는 정미자씨
[활기찬 노년생활] 폐암 선고 6개월 시한부 인생… 만 7년째 건강하게 사는 정미자씨
  • 박영선
  • 승인 2006.09.29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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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된장 직접 담그고 건강식 실천해요”

모든걸 접고나니 세상이 편안하고 즐거워져
6가지 잡곡밥 등 식습관 철저히 자연식 위주로
매일같이 등산하며 새생활 3개월만에 활기

 

정미자(64)씨는 1998년 여름 소세포 폐암을 진단받았다. 진행된 암이라 수술을 받지 못하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아 오히려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 남은 생명이 6개월 정도라는 소리를 듣고 백방으로 수소문, 식이요법과 생활요법을 철저히 지키며 만 7년 동안 생존해 있다.

 

“인생관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악착을 떨며 살았지요. 그런데 아프고 나서는 마음을 비웠어요.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자, 모든 일을 되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아등바등 신경을 쓰지 말기로 했지요.”

 

정미자씨가 폐암 선고를 받은 것은 1998년 여름이 끝나가던 시기였다.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거주하며 버스터미널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해 큰 물난리가 났다.

 

수해로 집이며 가게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물난리 뒤에는 한 달 간을 밤낮없이 수해 복구에 매달렸다. 그런데 그 즈음 몸이 계속 피곤하고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기침이 심하게 나왔다.

 

“특히 어느 한쪽으로 누우면 마치 천식환자처럼 기침이 끊이지를 않았어요. 그런데 감기나 기관지 염증이 오면 열이나 오한 같은 증상도 있을 텐데 그런 증상은 없고 그냥 밭은기침만 계속되는 거예요.”

 

심상치 않은 기침으로 밤에 잠을 잘 못 이루자, 남편도 병원에 가보라고 재촉을 했다. 동네 개인 병원을 찾아 X레이부터 찍었다. 의사는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혹시 폐렴일지 모르니 한 3일간 치료를 해보고 그래도 차도가 없으면 소견서를 써 줄 테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3일 뒤에도 기침이 그치지 않았다.

 

대학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하니 소세포 폐암이라고 했다.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주치의는 “초기도 아니고 꽤 많이 진행됐다”고 했다.

 

모래사막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정씨는 병원 문을 나서는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그때의 캄캄한 심정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버스터미널에서 물건 팔며 마신 담배연기가 문제

 

“한 푼 두 푼 모으며 참 악착같이 살았어요. 아이들 셋을 다 서울로 보내 공부를 시켰지요. 매일 새벽 4시경에 일어나 서울로 아이들 밥을 해주러 갔어요. 도시락까지 다 싸서 보낸 후에는 다시 동두천으로 와서 남편 밥상을 차려주고 집안 일 후다닥하고 가게로 나갔어요. 그리고 가게 일 정리하고 집에 들어오면 늘 자정을 넘겼어요.”

 

정미자씨는 그때부터 눈 붙이고 네 시면 일어나 다시 서울로 나가는 생활을 20년간 했다고 한다. 정씨는 피곤에 절며 신체의 저항력이 떨어졌고 또 자신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간접흡연이 문제가 되어 암에 걸렸다는 분석을 한다.

 

담배연기 자욱한 터미널에서 하루 열대여섯 시간 이상을 보내다 오니 그 피해가 쌓여 결국 폐암이 되었던 것.

 

절망의 터널 앞에서 ‘못 해본 것들을 해 보고 죽으려면 어떡해서 든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싹텄다. 항암주사를 여섯 번 맞고 그 뒤 방사선 치료를 30회 받았다.

 

항암제가 얼마나 독하던지 같이 치료를 받던 환자 중에는 두어 번 맞고 쓰러지는 사람도 많았다.

 

정씨 역시 머리가 빠지고 심한 구토에 시달렸다. 두 번째 항암주사를 맞은 뒤에는 백혈구 수치가 너무 떨어져서 주치의가 이런 상태로는 치료를 계속할 수 없다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살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항암제를 하도 독하게 맞아 서서 걷지를 못하고 앉아서 기어 다닐 정도였어요. 그렇게 어렵게 항암주사를 다 맞고 방사선 치료를 받았습니다.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도 항암제 못지않아서 유방이 돌처럼 단단해졌고 등은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암처럼 변했지요. 그런데 결과는 더 악화된 걸로 나타났어요.”

 

정씨에게 주치의는 “치료효과가 좋지 않아 암 세포가 상당부분 남아있다. 어느 때라도 재발하면 다시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살고 절망하면 못 산다”며 위로는 했지만 많이 살아야 6개월이라는 소리가 의료진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지요. 그 전까지는 많이 울었는데 이후부터 눈물이 나지 않았어요. ‘죽고 사는 건 하늘에 달렸다. 성한 사람도 오늘 길가다 죽기도 한다. 사는 데까지 살아보자’ 생각하니 마음이 비워졌어요.”

 

신앙에 의지하며 ‘죽게 할 생각이라면 더 이상 고통 없이 죽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그런데 아들이 “어머니를 이대로 죽게 할 수는 없다”며 다른 방법들을 수소문해보자고 나섰다. 퇴원한 정씨는 1999년 4월부터 식이요법과 생활요법을 시작했다.

 

우선 세상사는 마음과 생활부터 고쳤다. 예전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몸이 고단해도 뭐든지 자신의 손길이 가야 안심했는데, 걸레가 시커매져도 지나치고 설거지가 쌓여 있어도 그냥 두기로 했다. 졸리면 늘어지게 자기로 했다. 가족들을 먼저 생각했던 태도에서 모든 걸 자신 위주로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 집에 내가 없으면 큰 일 날 줄 알았는데 아니데요. 내가 없어도 별 문제없이 돌아갔어요. 예부터 ‘만병의 근원은 마음에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성격이 결벽한 사람, 완벽주의자, 내 고집으로 사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껴안고 사니, 그만큼 암 같은 질병에 잘 걸린다고 봐요.”

 

된장, 고추장 유기농으로 직접 담가 먹고 하루에 한번 커피 관장

 

따지고 판단하는 것을 그만 두자 세상이 훨씬 편안하고 즐거워졌다는 정씨.

 

식습관도 철저히 자연식 위주로 확 뜯어 고쳤다. 백미 밥 대신 현미, 좁쌀, 수수, 콩, 보리, 쌀 등의 6가지를 넣은 잡곡밥을 지었다. 모든 요리의 기본이 되는 된장, 고추장, 간장도 우리나라에서 재배된 무농약 유기농산품으로 직접 담갔다.

 

소금 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1000도 이상에서 여러 차례 구워 불순물을 제거한 특수 소금으로 장류를 담갔고 김치나 젓갈류를 담글 때도 이 소금을 사용했다.

 

몸이 나른할 때 먹을 사과식초도 직접 만들었다. 유기농 사과를 사다가 껍질을 벗기고 씨를 제거한 후 강판에 가는데 이때도 금속제 강판은 피했다. 꿀과 생수를 넣고 2주간 발효를 시키는 과정에서도 산소공급을 위해 하루 한 번씩 흔들어주는 수고를 잊지 않았다.

 

텃밭에 상추, 깻잎, 치커리, 부추 같은 채소들을 종류대로 다 심었다. 매끼 식사 전에 밭에서 바로 따 된장으로 쌈장을 만들어 쌈밥을 해서 먹었다. 어찌나 자연식 위주의 식이요법에 철저했는지 외출을 하게 되는 날에도 꼭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갈 정도였다.

 

외식을 하고 싶은 마음도 많았지만, 한두 번 사먹다 보면 습관이 되어 자연식을 실천하가기 힘들어질 것 같아 눌러 참았다. 고기도 금했다. 어쩌다 오리고기만 먹는 정도로 원칙을 세웠다.

 

몸에 노폐물이 쌓이면 일산화탄소와 같은 독소를 유발하게 되어 세포의 돌연변이를 가져오게 된다. 암이 싫어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암이 더 이상 자라거나 생겨날 수 없다는 생각에 커피 관장으로 독소제거를 했다.

 

“생수 3컵에 잘게 부순 유기농 원두커피 2큰 술을 넣고 3분간 끓였어요. 그리고 약한 불에서 2분 정도를 더 끓이고 여과지에 걸러 체온만큼 식혀 관장기에 넣고 사용했는데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 힘들었어요. 하지만 커피의 카페인이 간과 연결된 담관을 팽창시켜 담즙기능을 촉진시키고, 무엇보다 통증을 빨리 줄여주어 진통제의 양을 줄이거나 먹지 않아도 되어 거르지 않고 매일 열심히 했습니다.”

 

왕복 2시간 코스 등산하며 약수도 길어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며 3개월 간격으로 병원에 가서 X레이 촬영을 했다. 담당의사도 깜짝 놀랄 정도로 차도를 보였다. 자신도 현저하게 달라진 몸의 회복 속도를 느꼈다. 실 날같이 가늘었던 희망의 끈이 점차 굵어지자 그녀는 더욱 용기를 냈다.

 

가급적 화학약품도 끊었다. 약물의 오남용은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인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되기 때문. 그녀는 약 복용을 자제하면 우리 몸은 자기 면역력을 높여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운동도 절대 게을리 하지 않았다. 꾸준한 운동은 면역력을 키워 암을 억제하고 재발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 그녀는 일주일에 닷새는 집 뒤의 산을 찾아 등산을 하는 걸로 일과를 삼았다.

 

“성당에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아침식사 후에 산에 오르는데 물통을 메고 가 약수도 떠옵니다. 등산을 하면 최소 1~2시간 정도 걷게 돼서 몸 안에 쌓인 독소가 땀으로 배출됩니다. 또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몸 안으로 받아들여 심신을 정화시키는 효과도 크지요.”

 

만일 비가 오거나 일기가 좋지 않은 날에는 등산대신 실내운동을 통해 하루의 운동량을 채우며 될수록 몸을 움직였다.

 

6개월 운운했던 시일은 훌쩍 지나갔고 거의 생존 일 년이 되어가는 2000년 3월 X레이 촬영을 했는데 의사는 “이제 죽을 단계는 지났다”는 말을 했다. 정미자씨는 이것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X레이 촬영을 하지 않았다.

 

“검사결과에 너무 신경 쓰고 연연해하는 것도 일종의 집착이 아니겠나 싶어지데요. 우리 나이로 육십까지 살았으면 살만큼 살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언제고 사는 날까지 웃으며 살다가 하느님이 부르시면 ‘감사합니다’ 하고 가야지 했어요.”

 

그런데 벌써 8년째 생존하고 있다는 정미자씨. 요즘 남편은 “잠잘 때 당신 얼굴을 보면 평화 그 자체야”라는 말을 하는데, 자신이 봐도 예전과는 정말 얼굴이 달라졌다며 환하게 웃는다.

 

장옥경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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