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벌초(伐草)
[독자기고] 벌초(伐草)
  • 관리자
  • 승인 2010.09.03 11:23
  • 호수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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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석 대한노인회 상주시지회 외남면분회회장
24절기 중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추(立秋)가 지나면 처서(處暑)의 절기가 온다. 처서는 더위가 한 풀 꺾이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기다. 우리 선조들은 처서가 되면 당연한 듯 벌초(伐草)를 준비한다. 추석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선조들 무덤에 자란 풀들을 말끔히 깎는 것이다.

벌초는 민족명절 추석을 맞아 조상들의 은덕을 기리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다. 단순히 풀이나 뽑으며 허비하는 시간이 아니다. 효심을 일깨우고, 자손 된 도리를 다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벌초라는 아름다운 풍습이 점차 쇠퇴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께서는 벌초 때 마다 나를 꼭 데리고 가셨다. 반복해서 산소의 위치와 신분, 관직, 심지어 묘 자리의 형국까지 소상히 일러주셨다. 그 때는 몰랐지만 장손으로서 책임감을 심어주시려는 할아버지의 깊은 뜻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지금의 내 손자들과는 이 같은 대화를 하지 못한다. 벌초에 대한 얘기는 둘째 치더라도 일상의 대화마저 쉽지 않다. 세월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크다. 뉴스에서 남의 조상 묘를 찾아가 엉뚱한 곳에서 차례를 지내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수십 년 후 내 자손들의 모습이 그와 같지 않을까 걱정마저 든다. 벌초 할 시기가 다가오자 마음이 무거워지고, 허무하기까지 하다.

30여년 전만해도 교통이 불편하고 예초기(잔디깎는 기계)마저 없어 낫으로 벌초를 했다. 작업이 고된 것은 물론이고, 벌초를 하다가 낫에 손가락을 베이는 일은 다반사였다. 참나무 잎에 잘못 스치면 풀쐐기에 쏘여 며칠을 고생했던 기억도 있다.

우리세대라면 벌초에 대한 추억이 한가지씩은 있을 것이다. 한번은 아내가 벌에 쏘여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다. 예초기를 처음 사용하다 크게 다칠 뻔한 아찔한 추억도 있다.

또 일이 너무 바빠서 벌초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웃에게 벌초 대행을 부탁한 적도 있었다. 시골 단위농협에서 벌초 대행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시초가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

벌초는 내게 여유와 쉼을 제공하는 낭만의 시간이다. 힘겨우면 짙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면서 높은 하늘을 쳐다본다. 파란 쪽빛 하늘에는 하얗게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을 보면 감회가 새롭고 희망도 피어난다. 고향에 함께 살던 일가친척들이 모두 객지로 나가면서 20여년 동안 19개의 산소를 홀로 돌봤지만 그 시간이 지금은 더욱 그립고 아득하기만 하다.

필자는 지금도 종종 어머님의 산소의 벌초를 할 때면 옛 어머니 생각에 잠긴다. 그리운 마음과 함께 어머니의 추억과 사랑에 잠기곤 한다. 이제 황혼의 길을 홀로 걷는 나의 모습을 뒤 돌아 보기도 한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 홀로 벌초를 할 수가 없다. 대신 장성한 집안의 조카들과 날을 하루 정해 공동 작업으로 벌초를 한다. 푸짐한 음식도 마련해 함께 나눠 먹고, 우애도 다지며 즐거운 벌초를 실천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600년이 넘도록 일부로 벌초를 하지 않는 왕릉이 있다.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建元陵)은 왕명에 의해서 봉분의 풀이 갈대로 돼 있다. 갈대는 가을에 깎으면 말라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 보아도 풀이 수북한 모습이지만 내겐 위용도 없고 서글퍼 보인다.

벌초를 하지 않는다고 죽은 조상이 야단을 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벌초는 천륜의 도리로 여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풀을 깎는 행위로서가 아니라 내 뿌리를 가꾸는 기쁨과 효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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