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수별곡(老手別曲)- 그대품에 잠들었으면(10)
노수별곡(老手別曲)- 그대품에 잠들었으면(10)
  • 관리자
  • 승인 2010.09.10 14:08
  • 호수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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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로 연재소설
‘왜 나에게 한마디도 도와달란 말을 하지 않았을까?’
아니, 어찌 보면 그건 유씨의 소심함이라기 보다는 최씨의 무신경함이었다. 자신은 스스로 다방을 찾아 안락함을 즐겨왔지만, 유씨의 상황이나 배경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알지 못했다. 다방을 찾는 손님으로 특별한 관계도 아니었지만, 최씨는 새삼 자신이 이렇게 무신경한 사람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지경에까지 몰렸다면, 한마디라도 상의를 할 법한 일이기는 했다. 별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1년 가까이 ‘특별한’ 감정을 가지기는 했지 않은가.

어쨌든, 이런 저런 상황을 떠나서 다방이 없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최씨는 미칠 지경이 됐다. 이 서울 한복판에서 단 한 곳 있던 자신의 쉼터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최씨가 유씨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이태가 지난 후였다. 우연히 북한산을 찾았다가 산 머리에서 남정네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던 유씨를 발견한 것이었다. 애써 모른 척을 하고는 있었지만, 유씨는 최씨를 알아본 것이 확실했다. 최씨는 식당 앞에서 기다렸다. 술자리가 파하고 나오길 기다렸지만, 좀체 술자리는 끝나지 않았다. 늦은 시각 술자리가 파하고 나온 유씨와 남자들은 식장 앞에서 유씨를 잡아끌고 실갱이를 하고 있었다.

최씨는 유씨 앞으로 걸어갔다.
“나, 알아보지요?”
유씨는 깜짝 놀랐지만, 애써 무덤덤한 얼굴로 최씨를 바라봤다.
일행은 이미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그중 한 중늙은이가 유씨의 팔을 잡아 끌었다.
“아줌마, 우리 어디 조용한데서 한잔 더 해야지?”
“아유, 아저씨 너무 많이 자셨어요. 이만 가봐야겠어요.”

유씨가 팔을 빼며 중늙은이를 만류하자 남자는 갑자기 인상을 쓰며 목소리가 커졌다.
“가긴 어딜 가! 술먹여놓고, 잘 놀아줬더니 이제 와서 꽁무니를 빼려고? 아, 돈 더 주면 될 거 아냐!”

순간 유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최씨는 그제야 이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북한산이나 도봉산 같은 등산로 어귀에서 돈을 받고 남자들과 어울려 놀아준다는 아줌마들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실제 마주친 적은 없었다. 게다가 아는 사람이, 다시 한 번 꼭 만나고 싶던 사람이 그런 일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유, 좀 전까지 점잖던 양반이 갑자기 왜 이러실까. 그러지 말고 오늘은 일찍 들어가세요. 술을 너무 많이 자셨네.”

“어라, 이거 봐라? 누가 술에 취했다고 그래? 내가 아무리 술을 먹어도 당신 같은 여편네 얼마든지 홍콩 보내줄 수 있다고!”

만취한 남자는 소리를 지르면서 뒤에서 유씨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유씨의 귓불에 자신의 입술을 마구 문질러댔다.

남자의 갑작스런 행동에 최씨는 순간 속에서 불이 일었다.

“이보시오! 이 여자가 싫다지 않소!”
그제야 최씨의 존재를 인식한 남자가 최씨를 꼬나봤다.
“이건 또 뭐야. 아까부터 웬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옆에 서 있나 했더니…. 여봐, 차례 지키쇼! 나부터 먼저 왔잖아. 공중변소도 순서가 있는 법이라구!”

순간 최씨는 이성을 잃었다. 제 힘으로도 중심을 잡지 못해 끄덕거리고 있던 남자를 밀치자 남자는 힘없이 땅바닥으로 메다 꽂혔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남자의 친구들이 주위를 둘러쌌다.

“이 자식 봐라?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몇 번의 드잡이가 오가고 옥신각신 고성이 오고 갔다. 그 와중에 결국 유씨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만들 좀 해요!”

결국 술에 취한 남자는 친구들이 부축해서 산 아래로 내려갔고, 싸움은 일단락됐다.
유씨와 최씨는 식당 옆 벤치에 앉아 말없이 잠시 앉아 있었다. 최씨는 멱살잡이 끝에 셔츠의 단추가 떨어져 나가고, 목 밑이 쓸려 빨갛게 일어나 있었다.

최씨는 말없이 앉아서 담배만 태워 물었다. 유씨도 아무 말 없이 앉아만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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