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품에 잠들었으면(12)
그대품에 잠들었으면(12)
  • 관리자
  • 승인 2010.10.01 13:14
  • 호수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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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로 연재소설 노수별곡(老手別曲)
“댁으로 들어가시나요?”
최씨는 불콰해진 얼굴로 물었다.
“뭐, 가야죠. 그나저나 조금만 먹는다는 술이 이렇게 올라버려서 전철 타기가 영 난감하네요.”

그제야 장씨는 자신의 수중에 만원짜리 한 장밖에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설렁탕 값을 뺀다면 사천원. 택시를 타고 싶어도 돈이 없었다. 그나마도 유씨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설렁탕 한 그릇도 못 얻어먹었을 것이다.
최씨는 장씨에게 마지막 잔을 따르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별일 없으시다면, 나랑 종삼이나 갑시다.”
“예? 어디요?”
“종로 삼가 말입니다.”
“아, 예….”

종로 삼가를 줄인 말이 종삼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들어보는 종삼이란 단어는 왠지 매우 외설적으로 들렸다. 지금이야 번듯한 서울의 중심부지만, 예전에는 줄임말로 종삼이라 불리던 종로 삼가 일대에 색주가(色酒家)가 있던 탓이었다. 일제시대부터 자리잡았던 종로삼가 일대 색주가들은 한국전쟁 이후 1950~1960년대까지 대표적인 서울의 슬럼가였다. 1967년 세운상가가 들어서면서 번듯한 도심으로 다시 탈바꿈하긴 했지만, 이전엔 부랑인들과 날품팔이 뜨내기들부터 모주꾼, 시대를 비탄하는 문화예술인들까지 드나드는 욕망의 분출구였다.

최씨는 아침부터 술이 좀 과하다 싶더니, 마지막 삼킨 술을 제어하지 못했다.
“남자란, 계단 오를 힘만 있어도 그 짓 생각부터 하는 법이거든. 갑시다! 종삼으루”
최씨는 비척이며 장씨가 먹은 음식값까지 계산했다. 장씨는 최씨가 말한 ‘종삼’이란 말이 지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장씨는 순간 갈등했다. 어쩌다 만난 사이인데, 이렇게 따라나서도 되는 걸까. 최씨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보였으나, 사람이란 술에 취한 사람 뒤치다꺼리 하느라 동행하기는 싫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니, 전 그냥….”
“갑시다, 우리 가서 젤루 예쁜 아짐씨 만나서 회포나 좀 풉시다.”

최씨는 장씨의 팔짱을 끼고 가게를 나섰다. 막무가내로 택시를 잡아타는 바람에 얼떨결에 같이 올라타기는 했지만, 찜찜한 마음을 거둘 수가 없었다.

종묘공원에 도착하고 보니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선선한 공기를 쐬러 나온 사람들인 듯 했다.

“우리 나이 사람들은 꽃집엘 가도 대우를 못 받아요. 지들은 안 늙을 줄 아나? 똑같은 돈 주는데도 대놓고 구박이란 말이지. 맘 편하게 여기 아줌마들이 잘해준다니깐.”
‘그렇다고 해도 이 아침부터 웬 여자란 말인가. 찾는 사람도 그렇지만, 여자들이 나와 있을리도 만무하지 않은가.’
그런데, 있었다. 최씨는 한쪽에 서 있는 서너 명의 여인들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참내…. 이 아침부터 여자를 찾는 늙은이들도 그렇지만, 나와 있는 여자들도 웃기는군.’
그러나 이내 생각이 달라졌다. 하기야 아침에 여인의 살결이 더 그리운 법이 아니었던가.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두어 발치 옆에 떨어져 있는 장씨의 시야에 최씨가 아줌마한테 돈을 건네는 것이 보였다. 아줌마는 최씨한테 눈웃음까지 치고 있었다. 아마도 최씨가 건네준 돈의 액수가 마음에 들었으리라.

아줌마의 뒤를 따라 골목을 돌아들어가니 허름한 여관이 보였다.
아줌마가 최씨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고는 골목 밖으로 사라졌다. 최씨는 자신의 입안에 뭔가를 털어넣고, 장씨에게 남은 한 알을 건넸다.

“뭐, 장형이야 팔팔하겠지만, 술을 먹어놨으니 먹어둬요.”
푸른색 알약. 아직 장씨는 먹어본 바 없지만, 그것이 뭔지는 대충 알만 했다. 장씨도 입안에 털어넣고 침을 모아 목구멍 속으로 꿀꺽 넘겼다.

장씨와 최씨는 방을 나눠 들어갔다. 허름한 방에 누워 있자니, 옆 방 문소리가 들렸다. 최씨의 방 안에 여자가 들어온 것이리라.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장씨의 방으로 중년의 여성이 들어왔다. 여자가 들어서자마자 화장품 냄새가 방에 진동했다.

“아유, 아저씨들 힘들도 좋으셔. 이런 아침부터 어디서들 약주까지 자시고, 찾아오셨엉.”
껌을 딱딱 씹으며 콧소리 섞인 애교 아닌 애교까지.
‘나, 싸구려 화냥년입네, 아주 광고를 하고 다녀라.’

장씨는 오히려 맘이 편했다. 최씨가 왜 이리로 오자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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