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허공에 띄우는 추억의 소야곡
[독자기고] 허공에 띄우는 추억의 소야곡
  • 관리자
  • 승인 2010.10.08 11:15
  • 호수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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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방 기자/남양주
당신을 먼 곳으로 보낸 지 어언 60년. 문득 당신의 밝고 미소와 환한 얼굴이 떠오릅니다.
가슴 속에 간직한 그대를 생각하며 메아리 없는 편지를 허공에 띄어봅니다.

남들은 당신을 배우지도 못하고, 가진 것도 없는 몽매한 농사꾼으로 기억할지 모릅니다.
천애의 고아였고, 문맹자였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아는 당신은 욕심 없이, 거짓 없이 살았던 위인이었습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일념으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셨죠.
험한 일에는 항상 앞장서 있었습니다. 또 어찌나 착하고 부지런했던지.
게다가 인정마저 넘쳐서 항상 주위에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전 당신을 보며 부푼 꿈을 키워가는 작은 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순간 이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한민족이 서로에게 칼을 켜둔 비극의 6·25.
6·25전쟁은 국토와 민족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꿈과 미래도 모두 앗아갔습니다.
8·15의 감격은 곧이어 남북분단의 비극으로 고착됐고,
미국과 소련 열강들의 전횡은 그들의 국익을 위한 담합으로 조국을 동강냈죠.
국경 아닌 북위 38도선을 경계 삼아 국토는 남과 북으로,
민족은 좌와 우로 갈라서 결국은 6·25의 비극을 낳게 되었습니다.

당신을 떠나보냈지만 함께 나누었던 추억은 더 생생해집니다.
군것질할 것이 별로 없어 보리개떡으로 배고픔을 달래던 시절,
춘궁기에는 칡뿌리를 깨물고,
맥령기(보릿고개)에는 풋보리바심이 우리에겐 훌륭한 간식거리였죠.
밤을 지새우며 놀이기구를 만들어 우리에게 줬고,
산에서 캐온 칡뿌리, 더덕, 식용 버섯 등도 먼저 챙겨 주었죠.
초여름 보리 ‘풋바심’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던 때만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납니다.
얼마나 정신없이 퍼 먹었던지 입언저리가 먹칠한 것처럼 까매져서
마주보며 폭소를 연발했던 것 기억하시죠.

비록 비명에 가셨지만 참으로 아까운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천사였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용기 내어 말합니다.
당신을 진정으로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오고 눈물이 핑 도네요.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당신.
우리에게 많은 마음공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 거듭 당신을 그려봅니다.
고혼이나마 하늘나라 영원한 낙원에서 행복의 나래를 마음껏 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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