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책임지는 시니어리더] 한산모시 인간문화재 된 방연옥(66)씨
[사회를 책임지는 시니어리더] 한산모시 인간문화재 된 방연옥(66)씨
  • 관리자
  • 승인 2010.10.29 15:31
  • 호수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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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모시 세계적 명품과 비교해도 손색없어”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건지산 기슭에 자리한 한산모시관. 모시의 우수성과 역사성, 문화적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이곳에서 한산모시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가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 모시짜기 기능보유자인 방연옥(66·사진)씨다.

 

방씨는 “모시는 몸에도 좋고 부드러우며 통풍이 잘 된다”며 “모시옷의 멋과 실용성을 아는 사람은 다른 옷은 못 입는다”고 모시자랑부터 늘어놓는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짙게 묻어난다. 예부터 ‘한산모시장’으로 이름을 떨쳐 온 충남 서천군에는 지금도 100여명의 아낙들이 가내수공업으로 모시를 짜며 모시 고장의 명맥을 잇고 있다.

방씨의 모시짜기 인생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철없던 여섯 살 소녀의 모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거의 모든 집에서 모시를 짰기 때문에 코흘리개 시절부터 자연스레 모시를 접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서양의 값싼 천들이 몰려오면서 굳이 고생스럽게 모시를 짤 필요가 없게 됐다.

무엇보다 어머니들은 딸들의 몸을 상하게 하는 작업을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모시 속껍질을 이빨로 째다보면 이빨이 닳고 입술이 갈라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또 모시실을 무릎으로 비벼 잇는 모시삼기를 하면 무릎이 남아나질 않았다고.

이러한 이유로 한동안 모시와 연을 끊고 지내던 방씨가 본격적으로 모시짜기를 배운 것은 지난 1980년의 일이다. 당시 모시짜기 중요무형문화재였던 문정옥(80) 선생을 만나면서 그는 다시 모시와의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한 마을에 살며 평소 찬찬한 품성의 방씨를 눈여겨 봐 왔던 문 선생은 방씨를 중요무형문화재 전수장학생으로 추천했다. 이후 그는 전수조교와 보유자후보 등을 거쳐 2000년 8월 문 선생에 이어 한산모시짜기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선생님은 평소엔 조용한 성품이지만 모시 일 만큼은 혹독하게 가르치셨어요.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죠.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느니까 그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죠. 그렇게 10여년을 하니까 모시 일을 깨닫게 되더군요. 모두 문 선생님 덕입니다.”

방씨는 자신이 인간문화재가 된 것을 스승의 공으로 돌렸다.

한산모시는 올의 가늘기와 품질에 따라 한필에 보통 60만~80만원에 거래된다. 한 달에 두필 남짓 나오는 방씨의 모시는 품질이 좋아 시장에 낼 새도 없이 모두 단골들에게 예약 판매될 정도다.

“품질로 보나 들인 공력으로 보나, 모시는 서양에서 들여온 천과는 비교가 안 되죠. 수 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옷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질게 없다고 생각해요. 모시는 대물림해서 입는 옷입니다.”

방씨에게는 더 큰 목표가 있다. 모시옷을 찾는 젊은이들이 늘어나 모시산업이 한산이라는 경계를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 그래서 그는 최고의 모시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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