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로 연재소설 노수별곡(老手別曲)] 그대품에 잠들었으면(18)
[서문로 연재소설 노수별곡(老手別曲)] 그대품에 잠들었으면(18)
  • 관리자
  • 승인 2010.11.12 16:24
  • 호수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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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러니 결혼생활이 순탄할리 없었다. 사랑이 없는데 정마저 쌓이지 않으니 무슨 좋은 감정이 들겠는가. 게다가 잠자리마저 저 모양이니, 한 이불을 덮고 자도 점차 최씨의 남성이 반응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면 또 부인은 성질을 부렸다.

“구실도 못하면서 사내라고…. 쯧쯧.”

최씨는 젊은 날 자신이 한 선택이 영혼을 판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가혹했다. 결혼 후 5년이 지나지 않아 결국 최씨는 부인과 각방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함께 잠을 자는 게 고역이었다. 그러면서도 외형적으로는 탄탄한 집안이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회사에서는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승진도 빨랐다.

잠자리에서 이기적인 탓일까, 부인은 아이도 잘 가졌다. 결혼 삼년 만에 아이 둘을 낳았다. 아마도 각방을 쓰지 않았다면 부인은 아이를 대여섯 더 낳았을 것이다.

부인은 아이도 돌보지 않았다. 보모를 고용해 아이를 맡기고는 자신은 자신만의 삶을 살았다. 아들이 없었던 군수의 집안은 대단한 부자였다. 딸 셋 중 막내에게도 상당한 재산이 물려졌고, 그 경제권은 오로지 부인이 가지고 있었다. 남편도, 아이도 돌보지 않는 부인은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골프를 치러 나간다, 쇼핑을 한다, 친목계에 나간다 하며 일주일 중 하루를 제대로 집에 붙어있지 않는 부인은 최씨와 일주일에 한번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마주치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한 집에 사는 부부였지만, 이미 남남보다 못한 삶이었다. 남들은 여자가 나이가 들면 남자가 그렇게 꼴 보기 싫어진다고 하는데, 최씨는 그 기분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전혀 남을 배려하지 않는 못된 습성은 정말 넌덜머리가 났다.

게다가 최씨와 각방을 쓰면서부터 부인은 못된 습관이 붙었다. 확증은 없었지만, 주변의 그 나물에 그 밥인 친구들과 호스트바를 드나드는 것으로 생각됐다. 허탈했다. 영혼을 판 끝에 안정된 삶은 누릴 수 있게 됐다지만, 이건 사는 게 아니었다.

마누라가 보기 싫은 생각이 들어도 아이들 때문이라도 같이 사는 게 가족인데, 최씨 경우에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아이들은 제 어미 성품을 똑같이 물려받았고, 안하무인격이었다. 아이들이 그나마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하는 건 제 어미 지갑에서 돈이 나올 때 뿐이었다. 집에서는 마누라뿐 아니라 아이들 눈치까지 봐야했다. 가족 간에도 정치가 필요했다. 아이들은 경제력이 누구에게 있는지 영악하게 간파했고, 힘을 쥔 쪽에 잘 보여야지만 풍족하다는 걸 어려서부터 너무도 잘 알았다. 부인은 최씨를 대놓고 무시했다. 아이들이 최씨에게 대하는 태도도 좋을 리 없었다.

술을 즐기지도 않고, 남들처럼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성품도 아니었던 최씨는 가족과 융화하지 못한다는 게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최씨가 몸담을 곳은 없었다. 그저 일에만 죽도록 매달렸다. 남들은 볼멘소리를 하며 억지로 하는 야근이 최씨에게는 반가웠다.

유씨를 만난 건, 어쩌면 몸뚱이가 바싹 말라가는 지렁이가 습기를 찾아가는 것같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몰랐다. 

우연히 만난 유씨에게 음심이 있다던가 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물론 남녀관계라는 것이 편해지고 스스럼없어지면 자연히 그 생각도 나게 마련이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맹세코 최씨는 말 그대로 추운 겨울날 잠깐 몸 녹일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유씨는 어미 새가 새끼를 품듯이 꽁꽁 언 최씨의 마음을 녹여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최씨가 유씨에게 준 것이라고는 단지 몇 푼의 커피 값이 다였다.

그에 비해 최씨가 유씨에게 얻은 것은 너무도 컸다. 유씨의 다방은 세상에서 최씨가 유일하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부인과 함께 살 수도, 함께 살지 않을 수도 없었다. 회사를 나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최씨는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였는지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로소 최씨는 사람들이 왜 자살하는가 알 듯했다.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는 갑자기 닥친 불행이나 절망이 아니었다. 전쟁통에 자살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명확해졌다. 그것은 무기력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자살을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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