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가이드라인 무엇이 담겨있나
웰다잉, 가이드라인 무엇이 담겨있나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0.11.18 16:33
  • 호수 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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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사전의료의향서 등 죽음준비부터 망자 보내기까지

최근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제까지 이승과 저승으로 구분하며 금기시 되던 '죽음'에 대한 논의가 공론화되면서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계기로 '죽음'을 성찰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즉, 죽음은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  삶의 연장이란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경향에 부응해 최근 국내 최초로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대화문화아카데미 대화출판사·2만3000원)이 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국죽음학회(회장 최준식)와 대화문화아카데미(원장 강대인)는 11월 12일 서울 종로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내 어린이병원 임상 제2강의실에서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공표식과 유언장 서명식을 가졌다.

이날은 200개의 좌석을 가득 메우고도 자리가 부족할 만큼 많은 관객들이 찾았다. 특히 대다수의 관객들이 노년층이어서 죽음준비에 대한 어르신들의 뜨거운 관심을 증명했다.

최준식 한국죽음학회장은 “웰다잉 가이드라인은 2년 반 전부터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준비해온 학회의 결과물”이라며 “그동안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임종자는 물론 개인, 의료진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공표식'이 11월 12일 서울 종로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내 어린이병원 임상 제2강의실에서 열렸다. 이날은 200개의 좌석을 가득 메우고도 자리가 부족할 만큼 많은 관객들이 찾았다. 사진=임근재 기자

웰다잉 가이드라인은 죽음준비에 앞서 병의 말기 진단 전에 해야 할 일을 비롯해 △말기 질환을 알리는 바람직한 방법 △말기 질환 판정 후 환자의 대처요령 △말기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 해야 할 일 △임종 직전, 죽음이 가까웠을 때의 증상 △망자 보내기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웰다잉 가이드라인은 최준식 한국죽음학회장·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회 위원장(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을 비롯해 정현채 서울대의대 내과학교실 교수(의학분야), 박복순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한국장묘문화개혁 범국민협의회 사무총장(장묘분야), 이찬수 강남대 교수·종교문화연구원장(종교철학 분야), 홍진의 서울대병원 호스피스실 간호사(호스피스 분야), 전병술 전 건국대 철학과 학술연구교수(사도·애도 분야)가 참여했다.

◇유언장, 반드시 자필로 작성…공증 안 해도 효력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유언장 작성은 가능한 건강할 때 평소 생활 감각으로 쓰는 것은 물론 주기적으로 내용을 점검하고 필요할 때 보충하거나 바꿔야 한다.

유언장을 쓸 때는 지나치게 감상에 젖기보다는 남은 가족에게 필요한 정보를 빠뜨리지 않고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가족이 유언장의 소재를 알 수 있도록 반드시 보관 장소를 알려줘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유언장을 작성할 때 가장 유의할 점은 바로 ‘법적효력’이다. 개인 유언장의 경우 반드시 자필로 써야 하지만 별도의 공증 절차가 없어도 법적인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회사와 같은 공적인 단체에 관한 유언을 남기는 경우에는 반드시 유언장을 공증해야 법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개인의 유언장을 작성할 때는 반드시 자필로 써야 한다. 내용, 날짜, 주소, 성명, 날인 등 다섯 가지 요소는 필수요건. 날인은 타인이 찍어도 무방하고, 인감도장이 아니어도 된다. 엄지손가락 등으로 하는 무인(지장)도 가능하다.

이밖에 유언장에 임종방식이나 장례방식, 유산, 금융정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 등을 담아도 무방하다.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불필요한 연명치료 거부

한국죽음학회는 유언장 못지않게 사전의료의향서(지시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사전의료의향서는 병이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가 됐을 때 어떤 의료행위를 받을 것인지 등 환자의 의사를 기록한 문서다. 이 의향서를 작성해 놓으면 환자 자신은 고통을 줄여 존엄한 임종을 맞을 수 있고, 가족들은 임종자를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동시에 의료비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사전의료의향서는 주로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연명치료에 관한 내용을 담는다. 심폐소생술은 기능이 멈춘 심장과 폐를 다시 살리려는 응급조치를 말한다.

만약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못했다면 의식이 있을 때 가족과 충분한 의사소통을 통해 본인의 의사를 전한다.

사전의료의향서에는 심폐소생술에 관한 여부를 본인의 희망에 따라 적는다. 이밖에 진통제 치료나 인공 투석과 같은 연명치료에서 자신이 어떤 항목을 원하는지, 또는 원하지 않는지 적을 수 있다. 이 의향서는 본인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다.

◇환자에 말기질환 사실 알려야…“인생 마무리 의미있게 원해”

가족 중 누군가가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면 환자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 할까 숨겨야 할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환자를 위한다는 이유로 사실을 숨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말기질환 사실을 환자에게 알릴 것을 권한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예상외로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싶어 했다. 실제로 국립암센터가 시행한 연구에서도 환자의 96%가 정확한 사실을 알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죽음학회는 “환자들의 경우 자신이 말기질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초기에는 매우 혼란스러워한다”며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의료진과 가족의 도움을 받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인생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 환자에게 알리느냐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실제로 대부분의 환자들은 진단이 내려진 즉시 담당 주치의에게 사실을 듣고 싶어 한다.

또 가이드라인은 의료진이 환자와 가족에게 말기 질환을 알릴 때는 우선 환자를 안정시킬 것을 강조한다. 환자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까지 설명하고, 환자나 가족이 보이는 격렬한 반응이 정상적이라는 것을 당사자들에게 알줄 것도 덧붙였다.

◇임종 전 큰 소리로 울거나 몸 흔드는 행위 ‘금물’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임종이 가까워지면 음료나 음식 섭취가 눈에 띄게 줄거나 잠자는 시간이 많아지고, 불안한 행동을 반복한다. 또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한다거나 소변의 양이 줄면서 색이 진해지고, 피부가 검거나 퍼렇게 변하는 증상을 보인다.

임종을 앞둔 사람은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임종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이때 가족들은 임종자에게 “이제 우리 걱정은 하지 마세요.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떠나셔도 된다”고 안심시켜 편안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임종을 앞두고 옆에서 큰 소리로 울거나 몸을 흔들면서 부르는 등 시끄럽게 하는 것은 금물. 대신 마지막 순간까지 임종자의 손이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사랑한다’ 혹은 ‘미안하다’ 등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조용히 건네면서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사별 후 이상증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 겪는 후유증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상실의 슬픔은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 이와 같은 슬픔과 아픔은 일시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쳐 오랫동안 지속된다.

사별의 초기 단계는 보통 몇 주에서 1~2개월 정도 이어진다. 이 기간에는 큰 충격을 받아 고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는 상태다. 이 단계에서는 감정조절이 안되고 매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현실망각이나 집중력 저하, 무감각, 멍한 상태 같은 증상도 나타난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증상들을 부정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첫 번째 단계가 지나면 고독과 우울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고독을 느끼고 하염없는 슬픔에 휩싸인다.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때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지 말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평소 믿고 지내는 가까운 친구를 불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가사 문제나 유품 정리 등 구체적인 문제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거나 이해와 교감을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마음 갖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 조용히 떠올려본다.
-자신이 떠난 다음 남은 가족에게 누가 안 되도록 주변을 잘 정리한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마무리가 안 된 인간관계가 있다면 그 사람과 화해한다.
-종교가 있다면 신앙생활에 더 충실하게 임한다.
-유언장을 작성한 후에는 유산 상속과 같은 세속적인 일에서 관심을 털어낸다.
-죽음 이후 삶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그 주제를 공부하면서 사후를 적극적으로 준비한다.
-아직 남은 능력으로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실천에 옮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집착하지 않는다.
-가족이나 의료진을 비롯한 주위 사람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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