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재활용수거 노인, 하루 종일 일해도 월 40만원도 못 번다
[르포]재활용수거 노인, 하루 종일 일해도 월 40만원도 못 번다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0.11.25 19:22
  • 호수 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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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 큰 폐지 싣고 이동 ‘위험천만’…50%, 다른 일하고 싶다

▲ 정종철 어르신이 손수레에 수북이 쌓인 재활용품을 수거한 뒤 힘겹게 이동하고 있다. 사진=임근재 기자
11월 20일 오전 8시 서울 강서구 가양 7단지 한 임대아파트. 정종철(70·가명) 어르신은 오늘도 어김없이 낡은 손수레를 끌고 집밖으로 나선다. 폐지나 고철 등 재활용품을 수거하기 위해서다.

10여분 남짓 걸었을까. 상가 앞에 버려진 종이상자를 줍기 위해 체구보다 큰 손수레를 힘겹게 멈춰 세웠다. 부피를 줄이기 위해 상자를 뜯는 손놀림은 익숙했지만 힘겨워 보였다.

정 어르신의 재활용품 수거 지역은 강서구 전역. 한 달 중 휴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재활용품을 수거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7~8시간 버려진 종이상자나 신문지, 고철 등을 주워 되판다.

주로 대형 마트나 상가가 많은 건물에서 재활용품을 얻지만 유치원과 언론사 등 몇몇 곳은 단골삼아 한 달에 한 번 꼴로 방문하기도 한다.

정 어르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교통사고다. 재활용품을 모아 이동할 때는 위험천만하다. 손수레에 키보다 높게 부피가 큰 종이상자나 폐지를 쌓다보니 지나는 차가 보이지 않아 사고를 당할 뻔 한 적도 수차례. 하루 생활비를 벌기 위해 수차례 목숨을 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지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포기할 수 없는 '직업'이다.

아무리 먼 거리까지 나가더라도 점심식사는 자택에서 해결해야 한다. 수집한 재활용품을 되팔아 하루평균 1만원꼴 버는데 밦값으로 4000~5000원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아 모은 재활용품은 강서구 등촌동의 한 고물상에 내다 판다.

◇하루 일당, 적게는 5000원 많아야 2만원

정 어르신이 하루에 수거하는 재활용품의 종류와 무게는 그날그날 다르다. 평균 40~150kg. 고물상마다 다르지만 보통 1kg당 100~150원 정도를 받는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하루 종일 모아 적게는 5000원, 많게는 2만원의 돈을 번다. 한 달 20일 일하면 평균 40만원을 번다.

정 어르신이 재활용품 수거를 시작한 때는 7년 전부터다. 30대 초반부터 건설회사 일용직 근로자로 근무하던 정 어르신은 작업도중 미끄러져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로고 양쪽 다리가 산산 조각났다. 오른쪽 다리만 무려 17번의 수술을 받았고, 왼쪽 다리는 2번의 수술을 거쳤다. 오랜 수술 끝에 다행히 걸을 수는 있게 됐다.

걷는 것조차 힘겨운 정 어르신이 거리로 나선 까닭은 생계를 잇기 위해서다. 지금은 39m²(12평) 남짓한 임대 아파트에서 아내와 딸 내외 그리고 손자, 손녀 등 여섯 식구가 산다. 딸 내외 모두 일용직 근로자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고령에 몸 상태 나빠 노인일자리 ‘그림에 떡’

정 어르신은 몇 년 전 노인일자리사업에 이력서를 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채용을 거절당했다.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해 급한 마음에 재활용품 수거를 시작했다.

정 어르신의 한 달 수입은 50만원 남짓이 전부다. 재활용품을 모아 판매한 40만원과 기초노령연금 9만원뿐이다. 하지만 아파트 임대료, 세금, 생활비 등 한 달에 들어가는 돈만 100여만원. 자녀들이 보태는 비용이라고는 50만~60만원에 불과하다. 딸 내외도 벌이가 변변치 않아 오히려 도움을 줘야 하는 형편이다. 자녀가 있다 보니 기초생활수급자도 되지 못한다.

◇재활용품 수거 노인 90%…월 수입 40만원 미만

정 어르신처럼 재활용품을 수집해 판매하는 어르신 대부분의 한 달 수입이 4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등 생활고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악정책연구소 ‘오늘’(소장 이봉화)은 9월 29일부터 한 달 동안 관악구에서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어르신 12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월 평균 재활용품 판매 수입이 40만원 미만이라는 응답자가 115명, 90.5%나 됐다.

10만원 미만도 32.3%(41명), 10만~20만원 36.2%(46명), 20만~30만원 15.7%(20명), 30만~40만원 6.3%(8명)였다. 응답자들의 월평균 가계 총수입은 50만원 미만이 54.3%(69명), 50만원 이상~100만원 미만이 22.8%(29명)로 100만원 이하가 77.2%에 달했다.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이유는 ‘생계유지’(58.3%)가 가장 많았다. 또 용돈마련(25.2%)이나 소일거리(11.8%)로 거리를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70세 이상 고령자 78%…절반 이상 근골격계질환 앓아

팔순을 앞둔 75~79세(30.7%) 어르신들이 가장 많았고, 80대 어르신들(16.5%)도 재활용품에 생계를 의지하고 있었다. 노동력이 저하된 70세 이상 어르신들이 관악구에서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인원의 78%를 차지했다.

10명 중 6명은 눈이나 비가 오는 날, 명절을 제외하면 하루도 쉬지 않았고, 하루 8시간 이상(36.2%) 거리를 배회하며 일해야 했다.

또 절반 이상(62.2%)이 근육통이나 관절염, 골다공증 등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었다. 식사장소는 대부분(95%)이 집에서 해결하고 있었고, 교통사고 경험자도 14.9%나 됐다.

하루 수거량은 25kg 미만이 26.8%(34명)로 가장 많았고, 이어 25~50kg(24.4%), 50~75kg(21.3kg) 순이었다.

재활용품 수거일의 어려움으로는 재활용품 무게, 재활용품 감소, 날씨 등을 꼽았다. 이들 가운데 절반(50.4%) 정도가 다른 일자리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하는 일자리로는 공공근로 84.4%(54명)가 대체적으로 많았다.

◇대다수 저소득층이지만 수급자는 11.8% 불과

대다수가 저소득층에 속해 있었지만 수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조사결과 기초생활수급자는 11.8(15명)에 불과했고, 87.4%(111명)가 수급을 받지 못했다.

이들 중 48.0%(61명)는 복지서비스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오랜 세월 복지사각지대에서 생활해 온 탓에 복지서비스에 대한 기대가 약하고 정부기관에 대한 불신도 많기 때문인 것으로 연구소 측은 분석했다. 

당연히 직장을 갖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이밖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고 싶거나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싶은 어르신들도 많았다. 혼자 살고 있는 경우가 40.2%로 가장 많았고, 배우자 26.8%, 자녀와 손자손녀 22.0% 수니었다.

그동안 기초생활수급자보다 생활이 열악한데도 부양의무자가 등재돼 있거나 재산기준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돼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노인들의 문제는 주요 쟁점으로 지적돼 왔다.

‘오늘’ 연구소 이봉화 소장은 “재활용품 수거 어르신들이 대다수가 생계가 어려운 것은 물론 과중한 노동, 안전 사각지대 등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지만 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고작 11.8%에 불과하다”며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 기준을 고수하며 직계가족에게 부양의무를 맡기고 있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시 또한 어르신들의 주요한 수입원인 폐소형가전제품의 수거를 시 차원에서 독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어르신들의 시름을 더하고 있다”며 “폐소형가전제품 수거 독점 조치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양질의 노인일자리 창출을 강조했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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