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어느 양로원의 풍경
[금요칼럼] 어느 양로원의 풍경
  • 박영선
  • 승인 2006.10.27 14: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

지난 추석을 며칠 앞두고 가까운 친척 할머니가 들어가 있는 서울 교외의 어느 양로시설을 찾았다.

 

올해 87세의 이 할머니는 일찍이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가 되어 외동아들 키우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다 시피하고 한 평생을 보낸 분이다.

 

할머니는 미국 유학을 다녀와 남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취직한 아들과 며느리의 극진한 효도와 봉양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아들 내외에게 차례로 불행이 닥치면서 할머니 자신의 인생에도 큰 역경이 다가왔다. 며느리가 먼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 후 아들마저 뒤따라 병사하는 불운을 맞은 것이다.

 

할머니에게는 손녀와 손자가 하나 씩 있어서 아들 대신 이들 남매에 의지해 여생을 보내면서 시름을 달래려 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손녀가 대학을 나와 결혼을 하고 나중에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갔고, 손자는 군에 입대하자 그야말로 홀홀 단신이 되었다.

 

결국 할머니는 서울 근교의 양로시설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양로시설에 입주하자 손자는 군에서 제대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효성이 깊은 손녀와 손자는 할머니를 양로시설에 모시면서 눈물을 많이 흘렀다 한다. 약 2년 전의 일이다. 손녀는 현재 양로시설에 내는 월 회비를 미국에서 은행송금으로 꼬박꼬박 보내오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명절 때면 반드시 할머니를 찾아가 뵙기 때문에 그럭저럭 2년 동안 5~6회가 되었다. 처음 할머니를 찾아 갔을 때 나의 마음도 상당히 무거웠다.

 

그러나 행정구역으로 경기도 고양시에 속하는 어느 산기슭의 푸른 숲 속에 자리한 이 양로시설은 아주 깨끗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복지사들의 표정도 밝고 좋은 인상이었다.

 

나는 크게 안심이 되었다. 양로원에 온 것은 안 된 일이지만, 그나마 좋은 시설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설은 종합복지법인으로 산하에 여러 종류의 요양원과 시니어타운, 그리고 노인복지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할머니가 입주한 시설은 이곳의 시니어타운이다.

 

그런데 약 두 달 전에 사고가 생겼다. 할머니가 방안에서 침대에 걸터앉다가 방바닥에 떨어져 고관절이 부서졌다. 미국에 있는 손녀가 부랴부랴 일시 귀국해서 할머니를 외부의 종합병원으로 모시고 가 수술을 받게 했다.

 

나는 병원으로 할머니를 문병 갔기 때문에 지난 추석을 앞두고 양로시설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2개월 이상 지난 시점이었다. 부상당한 할머니의 고관절이 완쾌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침대에 누워계셨다.

 

이 때문에 나와 내 아내는 면회실이 아닌, 침실에서 할머니를 면회하게 되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가 본 할머니의 침실은 3인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작은 방이었지만 아주 환하고 깨끗한 편이었다.

 

그렇기는 하나, 2개월 만에 본 할머니는 그전보다 훨씬 노쇠한 모습이었다. 나의 마음이 무거웠다. 마치 미래의 나를 보는 듯해서 여간 침울하지 않았다. 동시에 노인문제의 긴박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할머니는 상당히 괜찮은 시설에 있으면서도 월 부담금은 불과 60만원 정도여서 다행스런 편이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노인들이 이런 혜택을 받고 있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내고 양로원이나 요양원에 들어가지만, 시설과 대우가 열악한 경우가 많다.

 

그 뿐만 아니라 많은 노인들은 월 60만원의 회비조차 부담할 경제적 능력이 없거나 아예 자녀들로부터 유기되는 경우도 있다.

 

통계청이 실시한 ‘2005년 사회통계조사’(3만3000가구 대상)에 따르면 우리나라 60세 이상의 노인 2명 가운데 1명, 즉 전체의 50%가 경제적인 문제를 가장 큰 고통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 다음이 건강문제(27.1%), 소일거리 없음(6.8%) 등인데 결국 건강을 잃고 돈이 없는 복합적인 경우가 압도적인 셈이다.

 

이 조사에 의하면 현재 자녀와 살지 않고 있는 노인이 10명 중 6명에 달하고 있으며, 따로 사는 이유로는 ‘각각 사는 것이 편하다’(38.3%)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앞으로도 자녀와 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2명 중 1명은 그렇다고 답했지만, 여자(51.6%)와 연령이 높을수록(80세 이상 67.4%) 자녀와 같이 살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자녀와 떨어져 사는 경향이 갑자기 늘어난 우리나라 노인들은 건강악화 등의 사유로 혼자 생활할 수 없게 되면, 결국에는 서양에서처럼 양로원 신세를 지는 경우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노인복지시설의 절대 부족이다.

 

작년 말 현재 전국의 양로시설, 요양시설 등 각종 노인요양시설은 1661개소로 불과 3만8000명의 노인들이 들어가 있다.

 

이런 열악한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1399개의 노인요양시설을 마련하고, 노인재가지원센터도 287개를 건립할 방침이다.

 

물론 이 계획이 차질 없이 집행된다 해서 노인복지시설의 부족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빨리 진행되는 만큼 노인 수가 급속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이다. 자주국방이다, 북핵 위협이다 해서 국방비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면 주름살이 생길 분야는 노인복지 분야가 아니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