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찬 노년생활] 낙엽 떨어지는 고독의 계절, 어르신들의 현명한 가을나기
[활기찬 노년생활] 낙엽 떨어지는 고독의 계절, 어르신들의 현명한 가을나기
  • 박영선
  • 승인 2006.10.27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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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 위한 밑거름, 긍정적 생각 필요해요”

“해 놓은것 없이 또 한 해가 갔다” 허전하고 두려워
여친과 대화·봉사·애완동물 기르며 즐겁게 살자

 

봄에는 파릇파릇 새싹이 돋으며 대지에 양기가 가득 찬다. 음(陰)으로 상징되는 여자들은 양(陽) 기운을 보고 마음이 출렁거리며 봄바람이 난다.

 

가을이 되면 찬바람이 불며 우수수 나뭇잎이 진다. 대지에 숙살지기인 음 기운이 가득 차며 양으로 상징되는 남자들은 가을바람이 난다. 그래서 흔히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김모(69) 할아버지는 여기에 더해 가을을 할아버지의 계절이라고 부른다.

 

젊었을 때도 가로수의 은행잎이 색깔이 변해가고 공원의 나뭇 잎이 하나둘 떨어지는 것을 보면 쓸쓸했는데 노년이 되고 보니 그 쓸쓸함이 더욱 커지기 때문. ‘조락하는 나뭇잎들처럼 나도 곧 저렇게 떨어지겠지…’ 생각하면 쓸쓸하다 못해 스산함이 스친다고 한다.

 

양모(66) 할아버지 역시 요즘의 계절이 즐겁지가 않다. 달력을 보면 11, 12월이 동시에 인쇄된 종이 한 장만 달랑 남겨 놓고 있다. 2006년 병술년도 어느새 열 달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이다.

 

‘해 놓은 것 없이 또 한 해가 갔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는데, 그 끝에 ‘땅 밑에 묻힐 날이 가까워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허전하기가 이를 데 없어진다고 한다.

 

가을이 외로운 건 할아버지들만의 일은 아니다. 강모(67) 할머니는 올 가을을 지내기가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올 여름 여섯 살 위의 남편이 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기 때문이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향후 몇 년간은 안심할 수 없는 상태라 불안하기 그지없다.

 

‘돈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남편의 치료비가 모자라면 어쩌나’ ‘만일 남편이 먼저 죽으면 나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있을까 ’ ‘혼자 남게 되면 자식들에게 짐스런 존재는 되지 않을까 ’

 

강 할머니는 남편이 몸 움직이는 것을 싫어해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만 보낸다. 환자 수발을 들며 창밖의 나뭇잎에 눈길을 주게 되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떠오른다. 문득 외로움이 묻어나고 가슴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해지며 두려움이 솟구친다고 한다.

 

제천 정신병원 전문의 송병근씨는 “한껏 팽창하며 푸르름을 자랑했던 자연이 축소되는 계절은 노년층들에게는 혹독하게 느껴지는 계절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은퇴 후의 생활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노인일수록 바닥에 뒹구는 낙엽처럼 무용지물이 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게 되며, 우울증으로 발전하고 증상이 심해지면 자살충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뭇잎처럼 퇴락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하게 열매를 맺는 것이며, 그 열매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후 세대를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생각에 초점을 맞춰야 평화로운 마음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다음은 고독의 계절로 비춰지기 쉬운 가을에 적극적으로 고독을 탈피하려는 노인들의 사례를 모아 보았다.

 

사례1> 옆구리가 시리면 월동준비를 하라

 

강서구에 사는 염모(68) 할아버지는 한창 연애 중이다. 재작년 겨울 상처를 하고 작년 가을에는 혹독하게 고독과 싸우며 체중이 5kg이나 빠져 자식들을 염려하게 만들기도 했다.

 

‘함께 이야기 하고 정을 나눌 아내도 없고 삶이 우울하다’는 생각에 먹기도 싫고 움직이기도 싫어지며 기력을 찾지 못했다.

 

며느리의 권유로 집 근처의 복지회관을 찾게 되었고 또래 노인들과 어울리며 약간의 활력을 찾았다. 그런데 올 여름에 한 할머니가 이사를 왔다며 복지관 멤버로 등록을 했는데 그 할머니와 마음이 잘 맞았다.

 

아담하고 참해 염 할아버지의 스타일인데다, 대화가 되고 자상한 마음까지 갖춰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반해 버렸다. 두 노인네가 공원 벤치에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나뭇잎을 봐도 전혀 쓸쓸하지 않다는 것.

 

쓸쓸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연을 노래하고픈 시심이 우러나온다고 한다. 염 할아버지는 옆구리가 시린 노인들에게는 연애가 최고라며 가을을 타는 할아버지들일수록 연애를 하라고 권한다.

 

사례2> 봉사활동을 하며 젊은 세대들과 교제하라

 

조모 할아버지는 올 봄부터 자치구에서 관내 주민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교양강좌 프로그램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다.

 

국어교사로 은퇴한 조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두 번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어린이 한문을 강의하고 있는데 개구쟁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여간 즐겁지가 않다.

 

한문을 가르치는 것도 가르치는 것이지만, 한 시간 동안 아이들과 소통을 하며 인생의 지혜, 꿈, 웃음, 유머들을 나눌 수 있어 좋다고 한다.

 

강의가 없는 날에는 인터넷을 뒤지며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머리에 쏙쏙 들게 한문을 가르칠 것인가 연구를 하다보면 시간이 알토란같이 여무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사례3> 애완동물을 길러보자

 

예순 아홉 동갑 부부인 박모 할아버지와 이모 할머니는 최근 자식을 얻었다.

 

그 자식은 다름 아닌 ‘못난이’라고 이름 붙인 퍼그 종의 강아지. 납작 눌린 듯한 얼굴에 깊은 주름이 진 ‘못난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면 노부부는 저절로 터지려는 웃음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한다.

 

외출을 할 때도 옷을 입혀 데려 가는데 ‘못난이’의 표정이 재미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은 말을 붙인다. 덕분에 외출이 재미있고 심심할 겨를이 없다고 한다. 노부부는 못난이를 키우며 웃을 일도 많아지고, 이웃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동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애완동물을 쓰다듬는 행동은 혈압을 낮춰 줄 수 있으며, 동물들의 재롱을 보며 건강한 웃음, 안정감을 되찾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노부부는 가을이 외로운 노인 분들은 고슴도치도 좋고, 고양이도 좋고 원하는 애완동물을 키워 볼 것을 권유한다.

 

사례4> 경험들을 기록해 보자

 

아침이 되면 백모(65) 할아버지는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선다. 공원에 가기도 하고 산을 오르기도 한다. 주말에는 딸네 집이나 아들 집을 찾기도 한다.

 

만나는 사람들을 촬영하고 이야기를 녹음하고 집에 와서는 비디오테이프에 담은 인물이나, 풍경 등을 편집한다. 다양한 곳을 다니며 다양한 것들을 비디오카메라로 기록하지만, 무작정은 아니다. 할아버지 나름의 대본이 있다.

 

대본에 의해 화면에 들어갈 내용을 촬영하고 촬영해온 테이프들을 연결시켜 생생하고 재미있는 화면들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테이프는 가족들의 생일이나 기념일 등에 선물로 보내지기도 한다.

 

백 할아버지는 자신의 재능과 경험을 살려 만들어 놓은 테이프들이 먼 훗날 자신을 추억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며 활짝 웃는다.

 

백 할아버지가 비디오카메라를 통해 기록을 한다면, 정모(67) 할머니는 노트에 아들이나 며느리, 손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기록한다.

 

만년필을 들고 일기를 쓰듯 정기적으로 정성껏 생각을 가다듬어 기록을 하는데 나중에 이것들을 묶어 한 편씩 나누어줄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정 할머니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더라도 자식들은 자신이 남긴 글을 읽으며 어머니, 할머니를 추억하게 될 것이고 이런 모습을 상상하면 외로움에 부대끼며 가을을 탈 시간이 없다고 한다.

 

장옥경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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