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로 作 노수별곡(老手別曲) 제3화] 달을 보고 짖는 개(9)
[서문로 作 노수별곡(老手別曲) 제3화] 달을 보고 짖는 개(9)
  • 관리자
  • 승인 2011.03.18 16:15
  • 호수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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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은 짓고땡에서 섰다로 바뀌었다. 그제야 광팔은 본격적으로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짓고땡에서야 노잡이가 마음대로 판을 주무를 수는 없었으나 섰다는 선이 화투 패를 제 맘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었다. 광팔에게는 제 의도대로 움직이는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서너 판을 내주고 한판을 쓸어오는 방식으로 적당히 판을 주무르자 곧 판돈은 광팔의 앞으로 쌓이기 시작했다. 광팔은 무엇보다 감질맛 나게 패를 주무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런 기술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고수라야 판을 가지고 놀 수 있었다. 그보다 더 고수는 사람을 가지고 놀았다. 그러고 보면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타짜라 할 수 있었다. 광팔은 노름판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기술을 가졌지만, 정작 여자 앞에서는 제 감정을 이기지 못했다.

홍련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세상의 모든 패는 아쉬운 놈이 놓치게 돼 있다. 광팔이 홍련을 제대로 손에 넣으려 했다면, 홍련에게 매달리지 말았어야 했다. 홍련은 자신이 가진 패를 최대한 이용했고, 광팔은 그 때마다 홍련에게 놀아났다. 만난 지 석 달 만에 기껏해야 광팔은 홍련의 손목을 잡아봤을 뿐이었으나, 광팔이 홍련에게 들인 돈은 이런 저런 식사비만 해도 이백 가까운 돈이었다. 게다가 지난번 사건과 같이 된통 망신을 당하고 돈 오백이나 꼴아박았으니, 광팔은 그야말로 홍련 앞에서는 기도 못 편다고 해야 맞을 것이었다.
웬만하면 포기할 법도 한데, 광팔은 홍련을 품에 넣고 싶은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놓친 고기가 더 크다고 했던가. 항상 결정적인 찰나에 미끄덩거리며 빠져나가버리는 홍련을 생각할 때마다 환장하는 마음을 누르지 못했다.

광팔은 때때로 멍하니 앉아 홍련의 눈부신 나신을 떠올리곤 했다. 그날 널부러진 홍련의 몸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알맞게 도드라진 가슴은 누워도 탄력을 잃지 않고 쇄골 아래로 알맞게 자리를 잡고 있었고, 선홍빛 젖꼭지는 이른 봄 꽃눈처럼 봉긋 솟아 있었다. 잘록한 허리와 쭉 뻗은 다리는 이 사람이 과연 동양 여자가 맞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시원하게 보였다. 홍련이 몸을 뒤채자 흡사 복숭아 같은 엉덩이가 광팔의 시야에 정면으로 들어 왔었고, 광팔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복숭아를 깨물려고 하는 찰나에 방문이 벌컥 열리며 그 사단이 났던 것이다. 그 일 이후로 광팔은 홍련을 잊으려 애써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당첨된 복권을 강탈당한 것 마냥 그 미련을 버리기가 힘들었다.

광팔은 홍련이 어떻게든 자기에게 오게끔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만 있다면야 홍련은 광팔에게 오리라 확신했다. 이 한방을 통해 홍련을 갖고 중국으로 튈 생각이었다.

판이 무르익자 광팔은 ‘감질나게 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홍련을 상상하면서, 직접 냅다 꽂기 전에 한 시간이나 공을 들여 온몸 구석구석 훑는 것처럼 뜸을 들였다. 충분한 애무가 있어야만 안은 뜨거워지는 것이고, 한 번에 시원하게 들어가는 것이다.

광팔은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뜸을 들였다. 서너 끗으로 상대방 패를 죽여 돌리고 제 패를 오히려 망통이나 오지리 따위로 더 낮추어 과감하게 배팅을 시도하면 상대방은 제 패에 자신이 없어 죽기 마련이었다. 그리고는 슬쩍 더 낮은 제 패를 흘림으로써 상대를 더욱 감질나게 만들었다. 보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허술하게 보이는 세상의 요행이었다.

“아, 씨팔 정말 미치겠네. 아니 박씨. 대체 한끗 가지고 질러대는 배짱이 어디서 나오는 거야?”

몇 번씩 이렇게 약을 바짝 올리고 나면 낮은 패를 가지고 무모하게 배팅하는 치들이 꼭 있었다. 광팔은 속으로 혀를 찼다.

‘쯧쯧……. 세상에 요행으로 되는 일이 어디 있나? 그런 요행을 슬쩍 흘리면 개떼처럼 달려드는 네 놈들이 있기에 나 같은 놈들도 먹고 사는 법이지. 이 밥통들아. 차라리 국으로 나죽었네, 하고 엎드려 있으면 중간이나 갈 것을 그렇게 나대다가 쪽 빨리고 이 바닥을 옮겨 다니는 게 니들 인생인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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